한국 레즈비언 부부가 임신에 성공해 국내서 처음으로 출산을 앞뒀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내만 두 명인 이들은 4년 전 생소한 동성 결혼식에도 불구하고 신혼여행 휴가를 받기 위해 회사에 청첩장을 제출하며 화제를 일으켰던 부부다.
한겨레는 30일 레즈비언 부부 김규진 씨(31)와 김세연 씨(34)의 임신과 관련된 인터뷰를 공개했다. 두 사람은 지난 2019년 5월 미국 뉴욕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같은 해 11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특히 규진 씨는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과정을 SNS와 책 ‘언니, 나랑 결혼할래요’로 상세하게 풀어내 동성애자 부부의 고충을 솔직하게 털어놔 주목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벨기에의 한 난임병원에 기증된 정자로 인공수정을 해 임신한 규진 씨는 출산을 두 달 정도 남긴 상태다. 그동안 임신과 출산을 생각해 본 적 없다던 그는 2021년 프랑스 주재원으로 일하면서 조금 달라졌다.
규진 씨는 “원래 아이를 가질 생각이 없었다. 이성애자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다. 좋은 부모 되는 게 쉽지 않다”라며 “프랑스에서 만난 여성 상사에게 ‘난 와이프가 있다’고 말했더니 ‘그렇구나. 근데 애는 낳을 거지?’라고 묻더라. 제가 레즈비언이란 것에 놀라지 않았다는 점과 동성 커플에게 출산을 추천한다는 점에서 놀랐다”라고 회상했다.
이어 “불행은 내 대에서 끊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선택한 가정에서 행복을 느꼈다. 제가 행복하니까 자녀도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가 나보다 더 좋은 엄마가 돼 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이에 세연 씨는 “저는 낳을 자신이 없었는데 규진이가 낳겠다고 하니 말릴 이유가 없었다”라며 웃었다.
이들은 당초 프랑스에서 인공수정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자가 없다는 이유로 불가능했다. 한국에서 시술받는 것도 고려했으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국 병원에서는 법적 부부나 사실혼 이성애 부부에게만 정자를 제공한다. 동성 부부가 아니라 미혼 여성도 불가능하다.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병원 측은 대부분 거절한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기증자를 찾는 방법밖에 없지만,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벨기에 난임센터에서 시술을 받기로 한 이들은 필수 상담 과정에서 “아이에게 엄마가 두 명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할 건가”, “아이에게 소개해 줄 만한 좋은 남성 어른이 주변에 있나”, “(커밍아웃을 받아들이지 못한) 부모님에게 아이를 소개할 생각인가”, “자녀가 학교에서 엄마가 두 명이라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할 것 같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과 같은 질문에 답을 주고받기도 했다.
규진 씨는 “저희는 성인이고 선택해서 내린 결정이지만 아이는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게 아니니까 걱정은 된다. 우리가 미리 단속해야 하는 건 아닐지 걱정했더니 상담사가 ‘영원히 아이를 보호할 수는 없다’라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규진 씨가 임신에 성공한 이후로는 무거운 짐들기와 집안일 등은 세연 씨가 맡게 됐다. 세연 씨는 규진 씨와 가정을 위해 이성애자 친구들에게 육아 정보를 묻는 등 적극적인 ‘부모’이자 ‘임신부 배우자’로 활약 중이다. 이에 세연 씨는 “의사고 여성이라 임신에 대한 이해가 높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혀 아니더라. 남편들이 왜 헤매는지 이해할 것 같더라”라고 설명했다. 규진 씨는 세연 씨가 일하는 병원에서 출산할 계획이다.
또한 이들은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도 평범하게 입소할 예정이다. 한 조리원은 남편이 아닌 아내 출입이 가능하냐고 묻자 “저는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존중합니다”라는 말로 두 사람을 안심시키기도 했다.
다음 달에는 이성애자 부부들이 많이 하는 임신과 출산을 축하하는 베이비샤워도 연다. PPT를 만들어 초대장을 보내고 국회의원과 초대 가수까지 부르는 떠들썩하고 화려한 파티를 구상하고 있다. 이 비용은 이들 결혼 기사 악플러들에게 받은 합의금으로 충당한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이런 두 사람은 한국에서는 법적 부부가 아니기 때문에 부부로서도, 부모로서도 법의 보호나 혜택은 전혀 누릴 수 없다. 세연 씨는 아이가 태어나도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를 쓸 수 없다. 언젠가 있을 증여와 상속 문제도 걸림돌이다. 혹시 규진 씨가 잘못된다면 세연 씨는 입양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지만 아이의 양육권을 겨우 가져올 수 있다.
부부는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 유예기간을 가질 예정이다. 만약 아이가 아빠가 없다는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면 이민까지 고려 중이다. 하지만 규진 씨는 “여전히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에 희망을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세연 씨도 “‘아이의 미래가 걱정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러면 당신이 도와주면 되겠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분들이 도와주면 더 좋은 사회가 빨리 올 수 있을 거다”라고 긍정적인 시선을 보였다.
한편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최근 생활동반자법을 대표발의했다.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돌보며 사는 이들을 가족으로 인정하자는 내용이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국내서 법적 부부가 될 수 없는 동성 부부뿐만 아니라 사실혼 관계의 이성애자, 미혼 인구 등이 법의 혜택과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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