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업계가 코로나19를 거치며 디지털 헬스케어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디지털 의료기기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스타트업과 손잡고 시장에 진입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제약사는 기존의 영업망을 활용하는 만큼 시장 개척의 부담은 적은 반면 추가 매출을 일으킬 수 있어 이득이다.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 역시 신제품을 조기에 시장에 안착시킬 수 있어 ‘윈-윈(WIN-WIN)’이란 평가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대웅제약은 이달 초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스카이랩스와 반지형 연속혈압측정기 ‘카트원BP’의 국내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3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획득한 카트원BP는 광용적 맥파(빛을 이용한 맥 측정방식)를 통해 반지만 끼면 24시간 혈압을 측정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반지형 혈압계’다. 방수기능을 탑재해 운동·샤워 등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작다. 스마트폰 앱으로 혈압 변화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 음주·혈압약 복용 등 생활 습관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카트원BP는 병원에 우선 출시된 이후 올 하반기에는 온라인을 통한 B2C(Business to Consumer, 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로 판매 영역이 확장될 예정이다. 향후 3년간 국내에서 7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업체는 내다보고 있다. 이병환 스카이랩스 대표는 “수면 중 야간 고혈압까지 관리 범위를 넓혀 병원 밖 환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웅제약은 고혈압 치료제 올메텍과 세비카, 항응고제 릭시아나, 고지혈증치료제 크레스토 등 순환기계 의약품 시장 점유율 1위의 강력한 영업망을 토대로 카트원BP의 시장 확대에 매진한다. 이창재 대웅제약 대표는 “카트원BP의 기술력과 대웅제약의 우수하고 탄탄한 영업·마케팅 역량이 함께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불면증 디지털 치료기기 ‘웰트아이'(WELT-I)의 국내 판권을 가진 한독도 본격적인 영업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 식약처로부터 국내 2호 디지털 치료기기 품목 허가를 획득한 웰트아이는 인지행동치료를 기반으로 약 대신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불면증을 치료한다. 처방받은 불면증 환자가 스마트폰에 앱을 설치하면 수면 패턴에 따라 △수면 제한 요법 △수면위생 교육 △자극조절 치료 △인지재구성 △이완 요법 등을 8주 동안 정밀하게 전달해 불면증 증상을 개선한다.
한독은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의 일환으로 지난 2021년 웰트아이를 개발한 웰트에 30억원의 지분을 투자하면서 디지털 치료기기 공동개발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었다. 불면증 전문의약품 시장 점유율 1위 스틸녹스(졸피뎀)를 보유한 만큼 약과 앱의 결합이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한독은 기대하고 있다.
김영진 한독 회장은 “디지털 치료기기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뿐 아니라 학회와 의료진과의 협업, 사업화에 대한 경험과 역량도 매우 중요하다”며 “웰트 아이가 환자에게 실질적이 도움이 되고 성공적인 상용화 모델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국내 주요 제약사와 의료기기 스타트업의 판권 계약 소식은 꾸준히 들리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해 4월 의료기기 스타트업 휴이노와 심전도 모니터링 인공지능(AI) 솔루션인 ‘메모패치’에 대한 국내 판권 계약을 맺었다. 메모패치는 최대 2주간 측정한 심전도를 AI로 분석해 부정맥을 비롯한 심혈관 질환의 조기 진단을 돕는 의료기기다. 유한양행은 앞서 2020년 2월, 휴이노에 50억원을 투자해 2대 주주로 등극하며 파트너십을 강화해왔다. 조욱제 유한양행 사장은 “오랜 기간 준비한 만큼 유한의 영업력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심전도 분석 시장을 리딩하는 성과를 이루어 낼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ST도 같은 해 7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 메쥬와 심전도 원격 모니터링 플랫폼 ‘하이카디’와 ‘하이카디플러스’ 등의 국내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하이카디는 웨어러블 패치와 스마트폰을 활용해 실시간으로 환자의 심전도·심박수·호흡 등을 확인할 수 있는 모바일 생체신호 모니터링 시스템으로, 양사는 올 1월 동일 제품에 대한 해외 판권 계약까지 연이어 체결했다. 나아가 동아ST는 이달 초 전자약 연구개발 전문 기업 뉴아인과 편두통 완화 의료기기의 국내 독점 판매 공급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디지털 헬스케어는 제약사에게는 미래 먹거리”라며 “아직 시장이 영글지 않아 직접 연구개발(R&D)에 나서는 것은 다소 위험 부담이 있는 만큼, 스타트업과 협업을 통한 제약사의 ‘간접적인’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 진출 사례는 당분간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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