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는 사람이 음식점 메뉴판을 보고 ‘말랑말랑 계란 오므라이스’ 달라고 긴 메뉴 이름을 전부 읽는 바람에 개구리화 됐습니다. 그냥 오므라이스 달라고 하면 될걸. 정 떨어져서 헤어졌습니다.”
혹시 연인이 예상치 못한 사소한 행동을 해서 정 떨어진 적이 있으신가요?
일본에서는 요즘 이런 상황을 부르는 ‘개구리화 현상(蛙化現象)’이 유행어로 등극했습니다. 호감을 갖고 있다가도 상대방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 순식간에 마음이 식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인데요.
일본에서 Z세대를 대상으로 연구하는 싱크탱크 Z총합연구소가 지난달 8일부터 14일 온라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행어 부문에서 ‘개구리화 현상’이 랭킹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Z총합연구소는 개구리화 현상을 ‘연애 대상의 볼품없는 부분을 보고 마음이 식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는데요. 원래 이 단어는 2021년대 초반부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사용되던 것입니다. 사실 밀레니얼 세대(M세대)들도 자주 쓰는 단어라, MZ세대의 유행어라고 봐도 무방한 단어입니다.
개구리화의 사례는 다양합니다. 아사히신문은 개구리화의 사례로 소개팅을 언급했습니다. 상대의 외모가 마음에 들고 이야기도 잘 통해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하고 있던 순간. 상대가 계산대 앞에서 할인 쿠폰을 쓰려고 스마트폰을 켰는데 웹페이지가 열리지 않아 허둥대는 모습을 보고 개구리화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TBS는 푸드코트에서 식판을 들고 두리번거리며 자리를 찾는 모습, 옷가게에서 시착을 해보는데 피팅룸에 한 번에 여러 벌을 가져와 개구리화가 됐다는 이야기를 소개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호감이 갑자기 사그라드는 현상을 개구리에 빗댄걸까요?
원래 이 단어는 심리학 용어입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 ‘개구리 왕자’에서 유래한 것인데요. 공주가 공을 가지고 놀다가 이를 물에 떨어뜨렸는데, 개구리가 공을 주워줄 테니 소원을 들어달라고 하죠. 바로 공주가 사는 성에 자신을 살게 해주고, 공주 옆에서 자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 공주는 막상 공을 받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데요. 이에 개구리는 공주가 사는 성을 찾아갑니다. 왕은 이야기를 듣고 약속을 한 바를 지켜야 한다고 공주와 개구리를 같이 지내게 합니다. 개구리랑 지내라는 말에 화가 난 공주가 개구리를 벽에 던지는 순간, 잘생긴 왕자로 변하죠. 둘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이 때문에 원래 심리학 용어로 개구리화 현상은 ‘좋아하는 상대에게 호의를 받으면 반대로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느끼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실생활에서는 ‘내가 짝사랑하던 사람이 나 좋다고 하면 도리어 싫어지는 현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죠.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이 언젠가 상대에게 미움을 받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미리 마음을 닫아버리는 심리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사실 지금 쓰이는 개구리화 현상은 호의적인 마음이 혐오감으로 바뀌는 것이라 정반대 이야기이긴 하지만, 어쨌든 상대방에 대한 평가가 단숨에 바뀐다는 의미 때문에 쓰고 있다고 하네요.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MZ세대의 특수성이 반영된 현상이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SNS를 자주 사용하는 세대인 만큼 지나치게 이상적인 사람으로 보이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인데요. 내가 완벽하게 보여야 하는 만큼, 상대도 완벽해야 한다는 과도한 이상을 부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아주 사소한 것에서 상대에 대한 마음이 급격히 변하는 현상을 겪게 된다고 합니다.
MZ세대의 유행어라고 하지만, 사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고민해야 하는 현대인의 슬픈 모습이 담겨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실망한 대상은 사소한 실수를 한 상대가 아니라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걱정하며 자책하는 스스로의 모습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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