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김유진 기자]제7광구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공개됐다.
13일 방영된 MBC ‘PD수첩’ 1378회는 ‘제7광구 JDZ(Joint Development Zone)의 신화와 진실’을 주제로 우리나라가 산유국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진실을 추적했다.
1970년대 박정희 정부는 제주도 남쪽바다 제7광구에서 유전을 찾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언론은 제7광구에서 석유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제7광구라는 제목의 노래가 나온 것도 그 무렵이다. 해당 노래를 부른 정난이는 “분명히 (석유가) 나올 거라고 생각핬다. 온 국민이 염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불렀다”고 회상했다.
이승대 작곡가도 MBC 뉴스데스크를 보던 중 영감을 얻어 이 노래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승대는 “9시 뉴스를 보고 있는데 JDZ조약에 대해서 나왔다. (당시 뉴스는) ‘제7광구에 석유 매장량이 상당할 것이다. 근데 우리가 시추하려고 하니까 일본에서 태클을 걸었다’라고 했다. 화가 났다”고 말했다.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난이 옆에서 동력자원부 장관을 불러 제7광구 탐사 상황을 설명하게 했다. 정난이는 “어마어마한 양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에서 2위 정도 되는 매장량이 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또 이날 전두환은 제7광구 붐을 일으킨 정난이를 칭찬하며 금일봉을 전해줬다고도 전했다. 정난이는 “100만원 금일봉을 받았다. (전두환이)’내 전용 비행기가 있다. 세계 일주 하자. 집도 새로 지어주겠다’고 하셨다”며 당시 전두환한테 들은 이야기를 되뇌었다.
제7광구 신화의 시작은 1969년에 나온 ‘에머리 보고서’다. 에머리 보고서는 지질학적 개념에서 의미가 있는 보고서로 보고서 안에는 ‘대만과 일본 사이의 대륙붕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석유가 매장된 곳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고 명시되어 있다.
보고서가 나오자 정부는 즉각 대륙붕 석유 탐사를 시작했다. 한국 뿐 아니라 중국, 대만 등이 대륙붕 탐사에 나섰다.
한국이 제7광구를 설정하자 일본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제7광구 때문에 경제협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시사하는 가 하면 제7광구 설정이 한국의 일방적인 처사라며 정부 차원의 협상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안도준코 후쿠오카대학 교수는 “1958년 체결된 대륙붕 협약에서 대륙붕의 경계는 그 국가 간의 합의에 의해 결정한다고 규정되어 있고 만약 합의되지 않는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에 의해 다른 경계선이 정당하다고 인정되지 않는 한 그 경계는 중간선과 등거리로 경계를 확정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제7광구를 한국력에 편입시킨 것으로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양국 관계가 경색되자 민간단체 한인협력회를 이끌던 야쓰기씨가 김종필 국무총리에게 한일공동개발 방안을 제안했다. 이때 김 총리는 ‘그럼 해보자’ 식으로 쉽게 대답을 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어서 김 총리가 쉽게 답을 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1974년 한국과 일본은 결국 공동개발에 합의했다. 언론에서도 시추 과정에서 가스가 발견됐다는 희망적인 보도가 이어졌다. 당시 MBC 엄효섭 기자는 현장을 취재하며 “그 동안 가스가 여러 번 분출됐다고 알고 있다”고 한 작업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작업자는 “실제 지금 안나오고 있다. 꼭 나오리라고 믿지만 아직 그런 징조가 안보인다”고 솔직하게 대답했다.
또 제작진은 한국석유공사가 25주년을 맞이해 개발한 책에 ‘석유발견에 실패했으며 이후 조광권도 소멸됐다’는 문구를 발견했다. 일본 정부의 탐사 결과를 검색해보니 당시 스즈키 내각총리대신은 “상업화 가능한 양의 석유, 천연가스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제7광구 신화의 또 다른 근거로 제시되는 우드로 윌슨 보고서도 에머리 보고서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석유공사의 자문을 맡아온 유인창 경북대 교수는 “기술적인 백데이터가 전혀 없이 그냥 중국 측에서 얘기한 거를 몇 개 곱하게 몇 개 해서 만들어낸 자료다. 신빙성, 신뢰도에 있어서 굉장히 떨어지는 보고서라고 저는 봅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유진 기자 eugene0120@naver.com / 사진=MBC ‘PD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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