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다 싶은 충전 주행거리를 압도적 운전재미로 지워버리다
사진 송정남 포토그래퍼
이번에도 전기차다. 전기차 시승은 이제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시대가 바뀌었다. 이전까지 내연기관차와 전기차를 비교했다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다른 전기차와 가치를 비교하게 된다.
한 가지 은근한 염려는 어쩔 수 없이 ‘내 차’와 비교하게 된다는 점. 그러므로 전기차 오너로서 미리 양해를 구하겠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럴 필요가 있다. 매일 타는 차를 시승차와 비교하다 보면 지극히 개인적 감상이 개입될 소지가 크다는 점, 그리고 내 차가 출시된 지 3년이 넘은, 그러니까 비교적 올드한 스펙을 지닌 베이직한 전기차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니 감정 과잉에 휩쓸려 새끈한 전기차에 필요 이상으로 호들갑 떨지 않기로 미리 다짐한다.
최근 전기차를 여러 대 시승했는데, 결론은 단순하다. 전기차로서 당연한 특성을 공통으로 가졌더라는 것. 그러면서 브랜드 고유의 차별점을 저마다 지녔다는 것이다. BMW 전기차 역시 마찬가지. 전기차 기본에 충실하면서 운전의 즐거움을 극한까지 끌어올린다는 브랜드 철학이 흥건하다.
BMW의 전동화 행보는 프리미엄 브랜드 중에서도 상당히 빨랐고 거침없었다. 2009년 비전 이피션트 다이내믹스 콘셉트카를 통해 선보인 BMW 전동화 전략은 i 브랜드를 통해 구체화됐고 i8과 i3처럼 오늘날 ‘현대화된’ 전기차들의 모범이 된 선구적 모델을 일찌감치 내놓으며 한발 앞서 나갔다.
2020년 iX3를 통해 전동화 2막을 연 BMW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전기차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 내연기관을 압도하는 출력과 넉넉한 공간, 준수한 주행거리, 그리고 운전재미와 편의성 같은 감성 요소를 두루 만족시키며 전기차의 일상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브랜드의 해답을 내놓았다.
이후 한동안 i4와 i7 등 중대형 모델에 집중된 i 브랜드 라인업은 iX1 출시와 함께 중소형 모델로 소비자 선택의 폭을 넓혔다. 이름에서 가늠할 수 있듯, iX1은 현재 BMW 라인업에서 ‘가장 작은’ 전기차다. 가장 작지만 외관상 결코 작아보이지 않고 실제로도 넉넉한 공간과 쓰임새가 좋다. 2009년 출시돼 2015년에 페이스리프트를 거쳐 3세대 완전변경 모델로 돌아온 X1을 기반으로 했고 뚜렷한 볼륨과 과감한 디자인 요소가 어울려 강렬한 남성적 캐릭터를 발산한다.
X1과 차이는 파란 번호판 외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보닛과 휠 중앙 엠블럼에 두른 파란 테두리 정도가 전기차임을 나타내주고, 라디에이터 그릴은 자세히 봐야 구멍이 막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외관 구석구석 다양한 꺽쇠형 디자인이 조합을 이뤘다. LED 주간 주행등, LED 리어라이트를 비롯해 위로 아래로 옆으로, ㄱ ㄴ 문자열이 수두룩하다. 히든 타입 도어 핸들 같은 에어로 다이내믹 디자인으로 공력성능을 극대화해 공기저항계수는 0.26Cd. 키가 껑충한 SUV에서 이 수치는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달걀처럼 매끈한 경쟁 브랜드 디자인과 견주어보면 울퉁불퉁한 근육질 차체에서 뽑아낸 이 같은 공기저항계수는 놀라울 정도다. 일체형 키드니 그릴과 긴 루프라인, 역동적인 실루엣으로 날렵하고 강렬하고 힘 있는 분위기를 역설한다.
전체 균형감이 좋은 데 비해 바퀴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승차엔 225/55 R18 사이즈 타이어를 신겼는데 커다란 휠하우스에 어울리지 않게 오종종하다. 바퀴 크기뿐 아니라 휠도 직경이 작아 보이는 옹색한 디자인이라 멋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전비를 고려한 이유라 어림잡지만 바퀴 크기와 휠 디자인이 차체 분위기에 미치는 역할을 생각할 때 안타까운 지점이다.
5세대 BMW eDrive 시스템이 적용됐고 앞뒤 차축에 각 하나씩, 총 두 개의 모터가 장착돼 최고출력 313마력, 최대토크 50.4kg·m의 출력을 낸다. 넉넉한 힘으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5.6초 만에 가속한다. 66.5kWh 용량 고전압 배터리를 얹어 한 번 충전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는 최대 310km. 단순 수치만으로는 아쉬운 주행거리다. 전기차 오너가 새로운 전기차에서 기대하는 요소는 보다 넉넉해진 주행거리일 텐데 배터리 용량과 차량 크기, 무게 등을 감안한다 해도 주행거리가 쑥쑥 늘어나는 최근의 추세에서 300km 남짓한 주행거리는 아무래도 부족한 감이 있다.
전기차 오너로서 주행 중에 계기판을 더 자주 보게 되는데 ‘앞으로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신경 쓰여서다. 전기차 계기판 주행거리 표시 숫자는 날씨 예보보다 믿을 게 못 되는데 대부분 실주행거리보다 줄어드는 속도가 빠르다. 그러니 숫자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대범하기가 쉽지 않다. 특히 장거리를 주행할 때. 고속도로 충전 인프라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고 그마저 대기 줄이 있거나 심지어 충전기가 고장인 경우가 잦아 늘 불안하다. 이번엔 여행용 차량으로서 효용성을 확인하기 위해 시승 코스를 고속도로를 포함한 장거리로 잡았는데, 중간에 후회했다. 일러바치자면, 경부고속도로 하행 휴게소 충전시설은 문제가 많다.
뉴 iX1 xDrive30의 정부 공인 표준 전비는 kWh당 4.2km. 인증 주행거리는 310km인데, 배터리 용량 66.5kWh와 견주자면 매우 보수적인 수치다. 시승을 위해 전원을 켰을 때 계기판에 표시된 배터리 잔존량은 96%, 주행 가능 거리는 460km라고 찍힌다. 배터리 환경에 최적인 온화한 날씨를 감안해도 두 숫자 사이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거리감이 있다. 물론 이 수치는 간선도로에 접어드는 불과 몇 분 안에 요동칠 것이다. 목적지를 설정하면 목적지 도착했을 때 예상 배터리 잔량이 표시되는데, 이런 건 나 같은 새가슴 운전자의 불안을 해소하는 친절한 기능이다.
시동 전원을 누르면 기분이 좋아진다. 멋진 사운드가 울리기 때문이다. 내연기관뿐 아니라 전기차도 사운드는 매우 중요하다. 드라이빙에서 ‘소리’가 차지하는 역할은 지대하다. 배기음 튜닝처럼 인공 사운드를 적용해야 하는 전기차에 있어 오감을 고려한 사운드 디자인은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BMW는 영화 음악의 거장 한스 짐머와 협업을 통해 개발한 전기차 전용 사운드 ‘BMW 아이코닉 사운드 일렉트릭’을 적용하고 있다. 전원을 켤 때부터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탑승자가 쾌적하고 기분 좋은 여정을 누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실내는 심플하고 시원시원한 편. 운전자 중심으로 배치된 커브드 디스플레이는 직관적이고 음성 제어도 가능하다. 센터콘솔은 좁아서 작은 액세서리를 넣어둘 만큼이고, 암레스트는 플로팅 타입으로 아래가 뚫려 있어 작은 물건을 수납하기 좋은데, 잡동사니를 늘어놓는 사람은 이런 디자인에 호불호가 갈린다. 스마트폰 무선 충전구는 걸쇠(?)로 채우는 방식이라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그냥 트레이에 툭 얹어두거나 삽입하는 방식이면 좋았을 텐데. 걸쇠를 열고 세우고 닫는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진다. 스마트폰 케이스 문제인지 충전이 됐다 안 됐다 해서 더 그렇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조작 편의성은 정말 좋아졌다. i드라이브가 사라졌고(만세!) 직관적 버튼들이 최소한으로 배치돼 있다. 썩 마음에 드는 부분은 계기판. 양쪽으로 마름모 꺽쇠 형태로 디자인된 디지털 계기판은 운전 중 필요한 정보만 한눈에 들어오도록 심플하게 정리돼 있다. 그리고 예쁘다. 내비게이션 화면은 AR 기능을 제공하는데 입체적 안내로 운전 중 곁눈질만으로도 알아보기 쉽다. 꺽쇠형 화살표 그래픽 안내로 헷갈리기 쉬운 길도 바로 알아챌 수 있다. 디스플레이 터치로 필요한 기능들이 연동되어 쉽게 조작할 수 있게 디자인된 점도 칭찬할 만하다. 마이모드를 비롯한 다양한 드라이브 모드와 마사지 기능이 포함된다. USB 포트는 C타입만 제공되어 일반 USB는 꽂을 수 없다.
길게 열리는 선루프는 개방감이 커 실내가 한층 밝고 넓어 보인다. 실제로도 공간이 넉넉하다. 뒷좌석 무릎 공간도 여유 있고 천장 머리 공간도 답답함이 없다. 뒷좌석 시트 등받이는 뒤로 젖혀져 장거리에서도 등을 편안하게 여행할 수 있을 듯하다. 직각으로 세우면 트렁크에 짐을 더 많이 실을 수 있는 점도 좋다.
트렁크 부피는 490리터, 최대 1495리터로 늘어난다. 트렁크 덮개를 제거하고 4:2:4로 뒷시트를 눕히면 꽤 널찍한 공간이 나온다. 차박에 관심이 많은 터라 굳이 들어가 발 뻗고 누워 보았다. 친한 사이라면 옹색하게나마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책상다리 하고 앉을 수는 없겠고. 아쉽지만 이 정도 차급 크기에서 과욕은 금물. 차박은 iX3에서 기대하기로 하자.
전기차의 매력을 한 가지만 꼽으라면 운전재미다. 토크가 좋고 조작 반응이 빠르기 때문에 시내에서나 고속주행에서나 차를 몰아가는 재미가 크다. iX1은 제원표상의 수치를 넘어서는 파워풀한 감각이 감탄을 자아낸다. 직선에서 쭉쭉 밀어주는 압도적인 힘과 스티어링에 묵직하면서도 예리하게 반응하는 안정적인 주행감각은 오랜만에 장거리 여행을 즐겁게 만든다. 배터리를 바닥에 깔아 무게 중심을 극도로 낮춘 덕에 시트 포지션이 높은데도 코너 진입과 탈출 시 불안감이 전혀 없다. 앞뒷바퀴에 붙은 듀얼모터가 300마력이 넘는 힘을 펑펑 뿜어주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차를 몰아갈 수 있다. 200마력이 주를 이루는 경쟁자들에 비해 월등히 높은 출력으로 일상 주행은 물론 스포츠 모드로 휘몰아칠 때 대단한 박진감을 선사한다.
시속 180km에 속도 제한이 걸려 있는데 이 속도 범주에서 중속에서 고속까지 어느 속도 영역에서나 안정감이 뛰어나다. 고속도로에서 내려 국도를 달릴 때 고갯길 와인딩을 지나며 급한 오르막에서 차를 잡아채도 자세를 정확히 잡아준다. 단순히 힘이 센 것이 아니라 넘치는 힘이 스티어링 조작에 따라 최적으로 정밀하게 배분되는 느낌. 운전 재미란 단순한 속도나 출력의 문제가 아님을 알게 해준다.
배터리 잔량 표시가 48%로 떨어진다. 남은 주행 가능 거리는 아직 200km 정도. 주행 조건과 운전 습관, 공조 시스템 등 전비에 미치는 변수가 많지만 이 정도 수치라면 310km라는 수치가 야박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시승 내내 고속 주행과 주행 중 순간 가속, 커브를 이리저리 돌며 오랜만에 순수한 운전재미를 즐겼다. 이것만으로 짧은 주행거리에 대한 아쉬움이 지워지고 남았다.
시승 전, 전기차 오너라는 이유로 내 차와 은연중 비교할까 걱정했다. iX1을 탄 첫날 기우였음을 알았다. BMW 전기차는 “역시 급이 다르구나” 인정했다. 대단한 힘, 시원한 가속감과 거기서 얻는 쾌감. 하만카돈 사운드. 세련된 엠비언트 라이트. 고급 안전 장비와 편의성. 이런 것만이 아닌, 또는 이 모든 것의 조화.
차를 조작할 때 작은 움직임에서부터 사운드와 컬러. 터치 감각까지. 한스 짐머가 아이코닉 사운드를 디자인했다는 자랑이 과도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언제나 이런 과잉 요소가 프리미엄을 프리미엄답게 만든다. 감성 측면, 디테일의 가치가 갈수록 중요해진다. 전기차도 마찬가지다. 고급 브랜드일수록 그렇다. 소비자는 프리미엄에 기대하는 바가 있고, 기대를 충족하거나 기대를 뛰어넘는 감동에 비용을 기꺼이 지불한다.
이번 시승 여행에 아내도 동행했다. 500km 남짓 달리는 동안 나는 충전을 두 번 했고, 아내는 차가 마음에 든다는 말을 세 번 했다. 기대했는데 기대를 뛰어넘었다. 제원표를 다시 본다. 6710만 원(국고보조금 295만 원). X1보다 약 300kg 무겁고 1000만 원가량 비싸다. 합리적으로 보인다.
Fact File | BMW NEW iX1 xDrive30
가격(VAT 포함) 6710만 원~ 크기(길이×너비×높이) 4500×1835×1615mm
휠베이스 2690mm
배터리 용량 66.5kWh 합산 최고출력 313마력 합산 최대토크 50.4kg·m
안전 최고속도 180km/h 0→시속 100km 가속 5.6초 1회 충전 주행거리(복합) 310km
전비(복합) 4.2km/kWh 타이어(앞/뒤) 225/55 R18
글·이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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