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아침 ‘오픈 런’에 진료가능 소아응급실 목록 만들어 공유도
병원은 “인력 부족”…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 4년만에 80%→16%
(서울=연합뉴스) 김잔디 기자 = 서울 마포구에 사는 최모(37)씨는 얼마 전 새벽 2시에 고열로 시달리는 두살배기 아이를 데려갈 소아응급실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있지만 어린아이를 볼 수 있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없다고 해서다.
최씨는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이럴 수가 있느냐. 소아과 전문의가 부족하다는 뉴스가 남의 일이 아니더라”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최씨는 진료가 가능한 소아응급실 목록을 정리해 가까운 이들과 공유했다. 아이가 갑자기 심하게 앓는 긴급 상황에 허탕을 치지 않기 위해서다.
서울시내 병원 곳곳이 야간에 소아응급실 운영을 중단하거나 운영 시간을 단축하면서 최씨처럼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소아응급실 운영을 중단하거나 축소한 병원은 한두곳이 아니다. 지난해 강남세브란스병원이 소아응급실 야간 진료를 중단했고 이대목동병원도 외상 환자가 아닌 소아 응급환자를 받지 않고 있다.
한강성심병원 응급실은 화·목·토·일에만 야간에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상주한다. 동탄성심병원 응급실은 아예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중단했다.
국내 첫 아동전문병원이었던 서울 용산구 소재 소화병원은 근무 의사 부족으로 이달부터 휴일 진료를 한시적으로 중단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받으러 병·의원이 문을 열기 전에 줄을 서는 평일 아침 ‘오픈 런’은 기본이다.
최씨처럼 부모들끼리 야간에 운영하는 소아응급실 리스트를 ‘족보’처럼 만들어 공유하는 일도 다반사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등을 참고해 갖고 있던 목록을 업데이트해 두는 것도 일상이 됐다.
부모들은 ‘진료 시간을 정해놓으면 응급실이 아니지 않느냐’ ‘애가 요일과 시간을 골라가며 아프냐’고 토로하며 애를 태우고 있다.
병원 쪽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등 인력이 부족해 내린 어쩔 수 없는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초로의 교수까지 당직에 동원해도 필요한 인력을 채울 수 없어 소아응급실 운영 중단·축소밖에는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시내 주요 병원 관계자는 “적은 인원으로 운영해보고자 당직을 돌리고 돌려도 더는 버틸 수가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소아응급실 운영을 축소하거나 중단하는 것”이라며 “근본적으로 인력 부족이 해소돼야 해결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병원들은 인력 운용에 숨통이 트인다면 소아응급실 야간 진료를 개시할 수 있다는 입장이기는 하다.
은평성모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등 인력이 충원되면서 진료를 재개한 사례다. 은평성모병원은 올해 3월1일 소아응급실의 야간 진료를 중단했다가 급히 인력을 충원해 지난 4월10일부터 다시 24시간 진료를 개시했다.
그러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나날이 하락하는 추세다. 전국 수련병원의 소아청소년과 레지던트(전공의) 지원율은 2019년 80%에서 2020년 74%, 2021년 38%, 2022년 27.5%, 2023년 16.6%로 급감했다.
jand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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