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재희 에디터
지난해 7월 시행된 도로교통법 개정안에서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운전자에게 일시 정지 의무를 부여했다. 올해 1월부터 시행된 새로운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작년의 개정안에 더해 우회전할 때의 정지 의무를 한층 명확히 규정하여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핵심은 보행자 유무와 관계없이 전방 신호가 빨간불일 때 차를 일시 정지하도록 명시하여 보행자의 안전한 통행 권리를 확보했다는 점이다.
우회전 일시정지 의무는 3개월의 계도 기간이 끝난 후 지난 4월 22일부터 단속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운전자들 사이에선 헷갈린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여러 언론과 경찰은 ‘일단 멈춤!’을 홍보하지만, 정작 일시 정지 후 몇 초 동안 멈춰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운전자들의 혼란이 가중된다는 의견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일시정지 기준’에 대해 실제 차주들에게 물어보거나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을 살펴보면 “속도 ‘0’만 찍으면 1초만 멈춰 있어도 상관 없다”는 의견부터 시작해 “완전 정지 후 다시 출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는데, 1초는 말이 안 된다”, “보행자가 있는지 살피려면 그래도 3초는 멈춰있어야 한다” 등 의견이 엇갈린다.
법에서 규정하는 ‘일시정지’란 다음과 같다. 도로교통법 제2조 30항에 따르면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가 그 차 또는 노면전차의 바퀴를 일시적으로 완전히 정지시키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바퀴가 굴러가지 않는 상태, 속도 0인 상태’와 같다. 그렇다면 우회전 시 운전자는 일시정지를 얼마나 지속해야 할까? 정말 ‘1초’만 멈춰있어도 상관없는 것일까?
필자는 이와 같은 궁금증을 해소하고자 경찰청교통민원24에 문의했고, 결과적으로 ‘시간은 상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즉, 정해진 기준 없이 1초라도 정지를 했는지 여부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문의 담당자는 ‘일시정지’라는 워딩 안에 차를 멈추고 주변에 보행자가 있는지 살펴야 하는 행위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운전자가 이를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1초, 3초, 5초 말은 많지만 사실상 운전자는 1초만 정지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건너는 보행자나 건너려는 보행자가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애당초 도로교통법이 개정된 목적도 보행자의 안전 확보이기 때문에 운전자는 보행자 유무를 확인한 후 개인 판단에 따라 서행 통과하면 된다.
하지만 일각에선 최소 3초는 정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정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자동차가 멈추고 정지를 하고 보행자가 있는지 없는지 살필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 시간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명확한 기준이 없지만, 일시정지 시간에 대해 사회적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의 유형이 무척 다양하다는 점도 주장에 힘을 싣는다. 정상적으로 길을 건너는 사람 외에 차량 뒤에서부터 오는 보행자도 있고, 갑자기 뛰어드는 보행자도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일시정지는 ‘보행자 보호’라는 취지에 맞춰 좀 더 보수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상적으로는 교차로에 우회전 신호등이 도입되면 깔끔하다. 신호에 맞춰 주행하면 헷갈릴 우려도 없고, 사고 또한 확연히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다. 현재 우회전 신호등을 설치하는 기준은 ‘동일 장소에서 1년 동안 3건 이상의 우회전 차량에 의한 사고가 발생한 경우’, ‘보행자와 우회전 차량 간의 상충이 빈번한 경우’, ‘대각선 횡단보도가 운영되는 경우나 좌측에서 접근하는 차량에 대한 확인이 어려운 경우’ 등이다.
모든 교차로에 우회전 신호등을 도입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행정안전부는 보행자 중심의 교통안전 체계 확립을 위해 힘쓴다는 방침이다. 보행자의 편의 증진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며 보행자 우선 도로 지정 확대 및 노란색 횡단보도의 도입 등을 예고한 상태다.
운전자에게는 보행자 중심의 도로 환경이 다소 불편할 수 있다. 직관적이지 않은 규칙을 학습해야 하고, 기존의 습관도 고쳐야 한다. 정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주행에 있어 스트레스가 가중되기도 한다. 하지만 새로운 도로 문화와 규칙이 가져다줄 ‘안전’이라는 요소는 그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일시정지에 시간에 대한 사회적 개념도 정립되어 보다 효율적인 도로 환경이 조성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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