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최근 공개한 포니 쿠페의 복원 차량은 1974년에 등장했던 포니 쿠페 콘셉트 카를 다시 만든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첫 고유모델 포니 승용차와 포니 쿠페는 이탈리아의 디자이너 죠르제토 쥬지아로(Giorgetto Giugiaro; 1938~)에 의해 디자인 된다.
당시에 쥬지아로는 양산형 포니 4도어 모델 외에 콘셉트 카 2도어 쿠페도 디자인했다. 이렇게 해서 포니 4도어와 2도어 쿠페가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된다. 포니 쿠페는 양산되지는 않았지만, 우리나라 메이커가 국제 무대에 처음 내놓은 고유모델 쿠페였다.
이들 두 종류의 포니 모델은 1970년대에 개발도상국이었던 한국이 세계에 내놓은 첫 고유 모델 양산 차량과 콘셉트 카 인 동시에, 1967년에 설립된 현대자동차가 설립7년째에 세계에 던진 도전장이었다. 그렇지만 포니와 포니 쿠페의 엔진과 변속기, 서스펜션 등은 그 당시 현대자동차의 기술제휴 업체였던 일본 미쯔비시의 소형승용차 1세대 랜서의 후륜 구동 플랫폼을 바탕으로 했다.
그런데 1970년대 중반은 일본의 자동차도 아직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였고, 서구의 디자인을 흉내 낸다는 평가를 받던 때였다. 미쓰비시의 랜서 역시 그랬다. 그래서 오히려 포니 쿠페와 포니 승용차는 기하학적 조형 감각의 디자인으로 그야말로 최신의 이탈리아 디자인의 양식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나라 자동차 기술 발전 초기 단계에서 일본 기술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솔직한 사실이지만, 디자인 개발에서만은 일본의 것을 참고하기보다는 자동차가 발명된 본고장 유럽의 것을 바탕으로 우리의 독자적인 디자인을 발전 시킨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탈리아 디자인 감각의 조형과 디자인 프로세스를 익혀 우리의 디자인을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다. 즉 포니 쿠페와 포니 승용차 디자인 개발은 단지 쥬지아로에게서 완성된 디자인을 받아온 것에서 그친게 아니라, 현대자동차의 실무 개발진들이 쥬지아로의 이탈 디자인에서 진행된 개발에 직접 참여해 함께 활동해 과정을 익혔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 제작된 포니 쿠페가 남아있지 않았고, 이탈디자인에서도 자료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원작 디자이너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충실히 복원해서 50년 전의 원형과 거의 똑같은 복원 모델이 만들어진 것이다.
대체로 모터쇼에 전시되는 콘셉트 카가 오랫동안 보존되는 일은 쉽지 않다. 모터쇼가 끝나면 대부분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폐차장으로 보내지는 일이 다반사인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콘셉트 카 뿐 아니라 양산 모델도 생산될 때는 수십만, 수백만 대가 만들어지지만 대부분 보관용으로 놔두지 않다 보니 양산이 끝나면 심지어 그 차종의 종이 카탈로그조차도 남아있지 않기도 하다. 그렇지만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의 박물관에 가 보면 역사상 중요한 수백 종류의 양산 차들이 타이어에 흙도 묻지 않은 채로 전시돼 있는 걸 보게 되는데, 그런 저들의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 소름이 돋지 않을 수 없다.
우리들은 지금까지 자동차 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양적 성장에 바쁜 나머지 지나간 과거를 보존하거나 뒤돌아볼 생각을 하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부터라도 지나간 과거의 차량들이나 역사를 보관하고 되살리는 일은 중요하다. 그 시작이 바로 포니 쿠페의 복원일 것이다.
오늘날의 모든 글로벌 자동차 기업은 과거의 역사성을 강조하고 있다. 지나간 역사가 저들의 정통성을 만들어주는 건 물론이고 기술적 우위와 고급 제품으로서의 가치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포니 쿠페는 현대자동차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한국 자동차의 역사이기도 하다.
포니 쿠페는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청년 디자이너 쥬지아로의 패기를 보여준다. 그의 조형 감각은 칼로 잘라낸 듯한 기하학적 면과 샤프한 모서리가 특징적이다. 그런 이유에서 포니 쿠페와 포니 4도어 모델은 공히 샤프한 조형 감각을 볼 수 있다.
쥬지아로가 자신의 디자인 전문업체 이탈디자인을 창업한 것이 30세였던 1968년이었다. 그는 베르토네 근무 시절에 만난 동갑내기 벗이자 평생의 동업자이며 엔지니어 알도 만토바니(Aldo Mantovani; 1938~)와 의기 투합해 회사를 세웠던 것이다.
복원된 포니 쿠페는 50년 전의 모습 거의 그대로 재현됐다. 물론 사소하게 다른 부분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두 개의 원형 헤드램프는 형태는 물론 똑같이 ‘쌍라이트’로 만들어졌지만, 램프 베젤 부분의 디테일이 약간의 차이를 볼 수 있고, 실내에서도 센터 페시아 부분과 앞 콘솔이 연결되는 부분의 곡률, 그리고 수동 기어 변속 레버의 위치 등이 사소하게 다르다. 그렇지만 나머지 부분의 형태, 색상, 재질 등에서는 거의 완전히 동일해 보인다.
복원된 포니 쿠페의 등장으로 인해 우리나라도 우리의 클래식 카를 직접 볼 수 있게 됐다. 클래식 카(classic car)는 단지 과거의 차를 의미하지 않는다. 내면의 가치가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 그것을 클래식이라고 말 할 수 있듯이, 최초의 고유모델 콘셉트 카 포니 쿠페의 디자인이 가지는 가치는 바로 우리의 독자적 디자인의 시초가 됐다는 점 일 것이다. 그 당시 포니 쿠페의 등장과 함께 포니의 양산 모델도 등장했다.
비록 기술적으로는 일본 엔진과 변속기를 빌어다 썼을 지라도 적어도 미적인 관점에서는 일본이 베끼기 디자인으로 시작한 것과 달리 우리의 주관을 가지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조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가졌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포니 쿠페는 제 1호 코리안 클래식 카(Korean Classic Car)가 틀림 없다. 이제부터 당당하게 우리나라의 클래식 카를 보여줄 수 있게 된 것이다.
1886년에 만들어진 역사상 최초의 자동차 벤츠의 1호차(Patent Wagen)의 공식 복제품(Authorized Replica)이 여러 대 만들어져 전 세계에 전시 되듯이, 포니 쿠페 역시 여러 대 만들어져 전 세계에 전시돼도 좋을지 모른다. 포니 쿠페는 벤츠 1호차보다 88년 뒤인 1974년에 등장했지만, 현대는 오늘날 글로벌 2위의 기업이 됐다. 이 정도면 코리언 클래식인 동시에 전설의 차라고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문득 필자가 이전의 글에서 썼던 말이 떠오른다.
‘햇빛에 바래면 역사가 되지만, 달빛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Fading with sunlight, it becomes a history, dyeing with moonlight, it becomes a myth)’
되살아난 포니 쿠페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나간 역사로 잊혀지지 않고 전설로 남는 코리언 클래식 카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글 / 구상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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