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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없는 노인들…”우리는 정처 없는 도시 속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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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전 9시 서울 종로3가역 인근은 출근하는 직장인으로 가득 찼다. 저마다 옆 사람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걷거나 휴대전화를 귀에 대고 대화하고 있다. 하지만 종로3가역 1번 출구에서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탑골공원 인근은 한산하다. 걸어 다니는 존재는 어림잡아 70살은 훌쩍 넘어 보이는 노인들과 장사를 준비하기 위해 식자재를 옮기는 트럭 기사와 자영업자, 아침까지 술을 마셔 숙취에 시달리는 몇몇 젊은이, 그리고 비둘기뿐이었다.

손중호씨(81·남)는 탑골공원 옆 ‘송해길’에 위치한 한 카페 구석에서 이 장면들을 지켜보고 있다. 자신을 ‘종로1가 대장’이라고 소개한 손씨는 매일 아침 9시만 되면 깔끔한 회색 정장, 유공자 훈장 모양이 박힌 흰색 모자를 쓰고 카페로 온다. 일하러 오는 건 아니다. 2000원이면 시원한 에어컨 밑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다. ‘다른 분을 위해 통화·대화는 조용히 부탁드린다’는 경고문이 붙어 있지만 크게 떠들어도 별다른 제재를 당하지 않는다. 카페 사장님은 시시덕거리는 노인들의 농담에도 별다른 반응 없이 넘긴다.

손씨는 그 어느 곳보다 ‘시니어존’의 역할을 하고 있는 카페가 하루일과를 시작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카페에 머물다가 점심 때가 되면 밥 먹으러 간다”며 “2000원 내고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은 카페뿐이다. 나이를 먹으니까 더위를 버티는 것도 버거운데 이만큼 에어컨이 잘 되는 곳이 있겠나”고 말했다.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사람들은 더 싼 곳으로 향한다. 맥도날드다. 1500원이면 커피를 하나 시키고 계속 앉아 있을 수 있다. 탑골공원 옆 맥도날드라 노인들이 많이 찾아서인지 그 흔한 키오스크도 설치돼 있지 않은 곳이다. 손씨는 그런 맥도날드를 꺼린다. 그는 “가끔이나 맥도날드를 가지, 거기는 사람이 많아 정신없고 시끄러워서 잘 안 간다”며 “500원을 더 내는 것이지만 내 돈 주고 조용한 곳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지금 이 상황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커피 한 잔 2000원도 부담이면 맥도날드로…OECD 평균과 3배 차이 나는 노인빈곤율

얼마나 많은 노인들이 커피 하나 사 먹기 힘들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을까. 2021년 기준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37.6%다. 10년 전인 2011년(46.5%)에서 점차 개선되고 있지만 여전히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2019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노인빈곤율은 13.5%다. 한국과 3배 가까이 차이 나는 수준이다.

낮은 소득 수준은 노인들이 사회적 배제와 낮은 자존감을 경험토록 한다. 낮은 자존감은 더 나아가 ‘사회적 타살’인 극단적 선택까지 이어진다. 최광수 우석대 보건의료경영학과 교수의 논문 ‘지역의 사회·경제적 요인과 노인의 자살 생각 간의 관련성 연구’에서도 지역의 생활물가 지수와 절대 빈곤율이 높을수록 노인이 극단적 선택을 생각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노인으로부터 기인한다. 2021년 기준 한국의 전체 자살률은 26%지만 70대는 41.8%, 80대는 61.3%에 달했다.

커피 마시고 낮술을 하다 보면…끝나는 노인의 하루

카페가 제아무리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라고 해도 2시간 이상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커피를 다 마시고 컵에 물을 따라 먹던 손씨는 오전 11시가 되자 카페 밖으로 나섰다. 함께 월남전에 참전했던 후배들과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한끼 8000원 정도 하는 한식 뷔페에서 소주를 마시는 게 그의 낙이다. 술 한잔 걸치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3시, 텔레비전을 보다가 오후 6시면 잠에 든다. 이런 일상이 반복된 건 8년 전, 아내의 사별하고 나서부터다. 손씨는 “잠은 많이 자서 좋다”고 말했다.

나이가 많은 노인만 이런 일상을 반복한 것은 아니었다. ‘젊은 노인’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인 강모씨(62·남)도 비슷한 일상을 반복하고 있다. 그는 아침 7시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탑골공원으로 온다. 커피를 마시고 점심을 간단히 때운 후 청량리 구경하러 간다. 바람을 쐬고 집에 들어오면 오후 4시다. 강씨는 “남는 게 시간이다”며 “오후 8시나 9시에 잠들기 전까지 집에서 컴퓨터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노인들 “시간 남아도 노인복지관 안 가”…서울 내 복지관 1개소, 평균 430명 노인 소화

그들은 노인들에게 교육이나 여가 활동을 지원하는 노인여가·복지시설에 향하지 않았다. 이들도 인간관계를 새로 넓히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손씨는 “경로당 같은 데 가서 새로 친구를 사귀면 다 돈이다”며 “노인들의 장례식이나 자식들 행사가 있을 때마다 돈을 줘야 하는데 큰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제 60대인데 무슨 경로당이나 노인복지시설이냐”고 손사래를 쳤다. 아울러 “가면 동생 취급당하고 가끔 모멸적인 일을 겪기도 한다더라”며 “나이가 90살을 넘겨도 경로당은 절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 자체도 부족한 현실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서울 내 전체 노인여가·복지시설은 3869개다. 현재 서울시 내 65세 이상 고령인구 수는 166만7411명으로 시설 1개소는 평균 430명의 노인을 소화해야 한다. 자치구별로 보면 격차가 뚜렷하다. 관악구의 노인여가·복지시설들은 1개소당 629명의 노인을 받아야 한다. 이어 강동구(576명), 강북구(561명), 송파구(548명) 순이었다. 성동구와 영등포구, 마포구는 각각 1개소당 270명, 326명, 329명만 소화하면 되는 것과 비교된다.

“돈 없는 노인은 비둘기가 되는 거다”

이런 상황에서 노인들은 ‘노시니어존’을 접했다. 지난 8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노시니어존, 60세 이상 어르신 출입제한’이라는 문구가 붙은 카페가 등장했다.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반응을 보였다. “노인들의 예의 없는 언행을 고려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사업하는 개인의 자유다”는 말과 함께 “다들 늙을 것인데 과도하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노시니어존 사진을 본 강씨는 먼저 끄덕였다. 그는 “노인들 중에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노인을 향한 혐오를 느끼고 있어 스스로도 행동을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다만 “‘노시니어존’을 적지만 않았지, 가기 부담스러운 곳도 있다”며 “노시니어존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손씨는 카페서 잠깐 나와 담배를 피우며 탑골공원 주변을 돌아다니던 비둘기를 가리켰다. “저기 비둘기 보이나? 돈이 없어서 개털된 노인들은 저렇게 비둘기가 되는 거다. 정처 없이 어디 머물 곳이 있나, 어디 좀 더 싸거나 공짜 음식은 없나 찾는 비둘기처럼. 누가 그런 비둘기를 반기겠나?” 카페에서 도보로 3분 떨어진 곳에서는 무료급식을 기다리는 노인들이 허공만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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