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하장수 기자] 평소 먹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냉장고엔 할머니가 챙겨주신 김치와 충동구매로 냉동실을 가득 채운 닭가슴살과 만두가 전부이며 삼시세끼를 꾸준히 먹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점점 소홀해지고 있는 평범한 1인 가구다. 주말 동안 무언가로 적당하게 끼니를 때우면서 읽은 책이 있다. 배우 양희경의 에세이 ‘그냥 밥 먹자는 말이 아니었을지도 몰라’다. 책은 적당히 채워진 배에 꼬르륵 소리를 낼 정도로 원초적 본능인 식욕을 자극했다.
이 책의 제목과 표지는 기존 ‘에세이’에서 느껴지는 것들과 사뭇 다르다. 책의 절반은 인생과 음식에 대한 이야기, 나머지는 직접 차려 먹는 집밥의 레시피다. 책에서 집밥은 저자의 삶의 원동력이자 인간관계의 연결점, 지나가 버린 추억을 회상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해낸다. 저자의 어린 시절부터 현재 시점까지 이어진 집밥의 힘은 조금이라도 더 먹이고 싶은 친근한 할머니의 느낌이 나기도 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차려 먹는 음식의 소중함을 독자에게 나지막이 권한다. 라면보다 밥이 쉽고 천천히 반찬 가짓수를 늘려간다면 건강한 한 상이 완성된다는 저자의 깨달음이 책에 꾹꾹 눌러 담겼다.
총 4부로 구성된 책에서 1~2부는 조언과 꾸지람, 3~4부는 삶 속에서 깨우친 깨달음, 현명함과 향후 다가올 노년을 맞이하는 자세를 차 한잔 마시면서 듣는 느낌이었다. 1~2부 중 몇몇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할머니가 떠올랐다. 아무거나 주워 먹고 끼니를 거르는 걸 걱정하는 할머니의 목소리와 얼굴이 떠오른달까.
또, 삼시세끼를 어떤 형태로든 먹으면 건강한 삶이라는 생각했던 자신에게 낯 뜨거워지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현대인이 잠을 더 자기 위해 걸렀던 아침을 비교적 꾸준히 챙겨 먹는 것에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는데 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저자도 “나는 밥을 잘 먹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아무거나 맛있다고 막 먹고, 먹기를 우습게 아는 사람과는 정말이지 만나기 싫다”라고 못을 박았다. 먹기를 열량 보충 외에 크게 개의치 않았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날카로운 구절이었다.
“살기 위해 먹는다”와 “먹기 위해 산다”의 뜻은 매우 다르다. 전자는 폭격과 공습으로 날이 가득 선 전장의 주먹밥이 생각난다면, 후자는 여행지에서 정성스럽게 고른 메뉴의 음식을 먹는 느낌이다.
집밥은 위의 사례 어디든 부합된다. 금전을 아끼기 위해 식비를 줄이는 단순한 수단의 역할을 떠올릴 수도 있다. 그리고 저녁에 가족끼리 둘러앉아 먹는 밥상을 추억하기도 한다. 현대인이 ‘집밥’에 가지는 의미는 다 후자의 따뜻함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집밥’을 듣고 인상을 찡그리는 사람은 못 봤기 때문이다.
각자 추억을 가진 밥 한끼를 떠올릴 수 있다는 점도 이 책을 읽을만한 이유로 충분하다. 책을 덮고 사회생활 속 고단함을 달래보고자 음식을 떠올려 보면 술과 비싼 안주만이 아니라 따뜻한 집밥이 머릿속에 그려질 것이다.
하장수 기자 gkwkdtn06@tvreport.co.kr / 사진= TV리포트 DB, 교보문고 공식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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