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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문과학자 4명을 포함한 국제 공동연구팀이 블랙홀의 새로운 모습을 포착했다. 블랙홀 형상이 2019년 사상 최초 확인된 지 4년여 만이다. 이번에는 블랙홀 바깥에서 물질이 빨려 들어가면서 만들어지는 ‘회오리’ 모형을 포착했다.
박종호·변도영·정태현 한국천문연구원 전파천문본부 박사와 김재영 경북대 지구시스템과학부 교수가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팀은 27일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M87 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 주변의 부착원반(Accretion disk) 구조를 포착했다고 밝혔다.
부착원반은 블랙홀 중력에 의해 주변 기체들이 빨려 들어갈 때 만들어지는 원반으로 ‘회오리 모양’이다. 이론으로만 예측해 오던 블랙홀 주변 부착원반 구조를 직접 포착해 과학적 사실로 입증했다. 교과서에 실릴 만한 블랙홀 주변의 물리 현상이다.
M87 은하의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5400만 광년(1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4600억㎞) 떨어진 곳에 있다.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빠른 빛조차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강한 중력이 작용해 주변 물질을 빨아들이는 천체다. 1915년 아인슈타인이 발표한 상대성이론으로 개념화됐으며 2019년 ‘사건의 지평선 망원경'(EHT)으로 블랙홀 사진을 최초 포착했다.
블랙홀 개념은 이미 입증됐지만, 그 주변을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는 빛이 어떤 구조인지는 규명되지 않았다. 과학자들은 그간 블랙홀 중력으로 인해 주변이 원형 모양의 부착원반 구조라고 예측만 했을 뿐, 이를 구체적으로 포착하거나 가설을 과학적 사실로 입증하진 못했다.
하지만 한국 과학자들이 포함된 연구팀은 부착원반 구조를 분해해 영상화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국제 밀리미터 초장기선 간섭계'(GMVA)와 칠레의 ‘아타카마 밀리미터 전파간섭계'(ALMA), 그린란드 망원경(GLT) 등 전 세계 16곳의 전파망원경을 활용했다. EHT가 사용한 빛 파장대(1.3㎜)보다 긴 3.5㎜ 파장대를 적용했다.
관측 결과, 부착원반 구조가 확인됐다. 연구팀은 이번 관측으로 부착원반에서 나온 빛이 블랙홀 주변 회오리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또 M87 은하 중심에 있는 블랙홀이 주변의 물질들을 천천히 흡수한다는 기존 예측을 증명했다. EHT 이미지는 블랙홀 주변 광자 고리만 나타났지만, 이번에는 부착원반 구조가 포착됐다. 크기도 1.5배 더 크게 나타났다.
연구팀은 또 M87 블랙홀의 그림자와 제트도 동시 포착했다. 제트는 블랙홀의 강력한 중력과 자기장 등으로 주변 물질을 흡수하면서 방출하는 물질의 흐름이다. 연구팀은 블랙홀 제트가 멀리 떨어진 별과 은하들의 진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과학적 발견에는 천문연이 운영에 참여하는 ALMA 역할이 컸다. ALMA는 이미지의 감도와 남북 방향 분해능을 크게 향상해 사상 최초로 3.5㎜의 파장대에서 고리 구조를 발견했다. 또 한국 과학자들은 초장기선 간섭계 데이터의 오차 제거와 데이터를 이미지로 변환하는 데 기여했다.
김재영 경북대 교수는 “2019년 EHT 영상이 블랙홀 자체의 실존을 증명했다면, 이번 영상은 블랙홀 바로 주변의 복잡한 천체 물리학적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종호 천문연 선임연구원은 “수십 년간 예측만 무성했던 블랙홀 부착원반 존재를 사상 최초로 직접 영상화했다는 점에서 블랙홀 연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결과”라며 “블랙홀이 주변 물질을 어떤 방식으로 흡수하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 막대한 에너지를 분출시켜 블랙홀로부터 멀리 떨어진 별과 은하의 진화에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과학자들은 앞으로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 천문연이 운영에 참여하는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 망원경(JCMT) 등을 활용해 M87 블랙홀을 한 달간 네 차례 추가 관측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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