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요? 포르투갈에서 지난 5년간 성장이 가장 가파른 회사죠.”
지난달 28일(현지 시간) 포르투갈 리스본의 현대차 매장에서 만난 현지 딜러 누노 페랄타 씨(46)가 전한 말이다. 그는 “포르투갈은 길이 좁은 편이라서 카우아이(코나의 현지명) 같은 현대차의 중·소형 차량의 반응이 좋다”고 했다. 실제 포르투갈 거리를 걷다 보면 심심찮게 현대차나 기아의 엠블럼을 단 차량들이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유럽 터줏대감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의 딜러도 비슷한 느낌을 전했다. 주앙 알베스 씨(41)는 “현대차와 기아는 예전보다 품질이 좋아진 데다 가격이 합리적이어서 인기가 좋다”고 말했다.
17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현지 법인을 따로 설치하지 않은 인구 500만∼1000만 명 규모의 ‘유럽 틈새 시장’에서 쏠쏠한 실적을 내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신차 판매량 통계 추이에서 바로 드러난다. 포르투갈에는 현대차와 기아의 현지 법인이 없다. 이 나라에서 현대차그룹의 자동차 판매량은 2018년 1만227대에서 지난해 1만3682대로 33.8% 증가했다. 시장점유율도 이 기간 4.5%에서 8.8%로 뛰어올랐다. 마찬가지로 현대차·기아 법인이 없는 그리스에서도 점유율이 같은 기간 8.3%에서 13.0%로 상승했다.
기아만 현지 법인을 둔 스웨덴(7.8%→12.4%)과 아일랜드(15.1%→19.6%), 제네시스와 현대수소차 법인만 있는 스위스(4.4%→6.1%) 등도 모두 같은 기간 야금야금 점유율을 늘렸다.
판매 법인이 없는 국가에서는 현지 딜러들이 현대차·기아 차량을 수입해 판촉에 나선다. 딜러들도 나름대로 노하우가 있지만 법인 차원에서의 체계적이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럼에도 이런 나라들에서 실적 상승이 이뤄지고 있는 것은 현대차와 기아의 브랜드 상승 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판매량 기준으로 글로벌 완성차 업체 중 3위(684만5000여 대)에 올랐다.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에는 84만9580대를 팔아 폭스바겐그룹, 스텔란티스그룹, 르노그룹에 이어 4위 자리를 지켜냈다. 높아진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위상이 ‘유럽 틈새시장’에서도 통한 덕분이다. 이훈 KOTRA 리스본 무역관장은 “현대차와 기아의 현지 위상이 높아지니 포르투갈에서는 아예 현대차그룹과 같은 한국 자동차 업체들의 현지 투자에 대한 적극적인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다 ”고 말했다.
유럽 맞춤형 제품들이 틈새시장에서 잘 통하는 것도 판매가 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다. 튀르키예 현대차 공장에서 생산하는 해치백 모델인 i10과 i20, 슬로바키아 기아 공장에서 생산하는 준중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씨드는 전략적으로 유럽에만 공급하고 있다. 현대차 체코 공장에서 생산되는 i30N과 코나도 유럽에서 꾸준한 판매량을 보이고 있다. 대체로 합리적인 가격대의 소형이나 중형 모델들이 유럽 현지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와 기아가 현지 마케팅을 본격적으로 펼치지 않았음에도 유럽 틈새 시장에서 이미 성과를 내고 있다”며 “앞으로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면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까지 입지가 더 탄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리스본=한재희 기자 h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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