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4일 정부는 차세대 이차전지 기술 개발을 국가전략기술 프로젝트 후보로 선정했다. 올해부터 2027년까지 5년간 170조 원의 연구개발(R&D) 예산을 투자해 12대 국가전략기술을 집중 육성하겠다는 정부 계획의 밑작업이다.
차세대 이차전지 중 전고체 전지는 현재 일반적으로 쓰이는 리튬이온 전지와 달리 화재 위험이 없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받는다. 지난해 10월 판교에서 발생한 데이터센터 화재, 심심찮게 발생하는 전기차 화재 등 원인이 리튬이온전지였다.
5일 과학기술계에 따르면 전고체 전지를 구현하기 위한 새로운 전해질 소재나 전극 등 다양한 연구 성과들이 국내에서 속속 나오고 있다.
전고체 전지는 전지 양극과 음극 간 이온을 전달하는 전해질을 액체가 아닌 고체를 쓴다. 리튬이온 전지는 전해질이 액체다. 고온에서 반응을 일으키면 가스로 변해 폭발할 수 있다. 고체는 이런 위험이 낮다.
리튬이온 전지는 전지 여러 개를 직렬로 연결해야 에너지 밀도가 높아진다.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전고체 전지는 전지 하나에 고체 전해질을 층층이 연결해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다. 분리막 소재도 필요 없어 얇고 유연한 형태도 구현할 수 있다.
전고체 전지 개념은 1980년대 처음 제시됐으나 한동안 빛을 보지 못했다. 액체 전해질처럼 전도도가 높은 소재를 발견하지 못해 활용에 필요한 충분한 출력을 내지 못했다. 현재 소재 후보군으로 황화물과 산화물, 고분자 등이 발굴되며 활발한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들어 전해질 소재 외에도 전극 등 분야 전반에서 연구가 진행되며 성과들이 나오고 있다. 김범준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이승우 미국 조지아공대 교수팀과 함께 전기차 주행거리를 최대 800km까지 늘릴 수 있는 세계 최고 성능의 전고체 전지를 개발했다.
이 연구는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지난해 1월 공개된 바 있다.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 SK온 등 국내 기업들도 각자 기술 로드맵에 따라 연구 성과들을 내놓고 있다.
전문가들은 혁신적인 연구 성과에도 전고체 전지 상용화를 위해선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진단했다. 하윤철 한국전기연구원 차세대전지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실험실 수준의 연구를 넘어 대량생산 공정에서도 성능을 낼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령 전고체 전지를 전기자동차에 활용하기 위해선 고체 전해질을 30∼40층가량 쌓아야 하나 아직까지 이 정도 규모로 연구가 시도된 적이 없다. 김범준 KAIST 교수 역시 “전고체 전지 공정 집적화 등 아직 난제들이 많이 남아 있다”며 “이온 전도도와 성능의 안정성을 높이는 것 역시 과제”라고 말했다.
대량생산으로 가격 경쟁력을 갖춘 리튬이온 전지가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 진입 역시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틈새 시장에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예를 들어 기온이 높아 리튬이온 전지를 쓸 수 없는 사막 등지에서 전기차용 전고체 전지로 쓰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 책임 연구원은 “틈새 시장 공략 후 지금의 리튬이온 전지 시장의 1%만 전고체 전지가 점유한다고 해도 그것도 매우 큰 시장”이라며 “점차 가격경쟁력을 갖추며 리튬이온 전지와 본격적으로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리서치기관 ‘이멀전 리처치’에 따르면 전 세계 전고체 전지 시장은 2021년 약 6억 달러(약 7881억 원)에서 매년 36.3%씩 성장해 2030년 약 101억 달러(약 13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분석된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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