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몸통 시신 사건’의 가해자 장대호와 장씨가 일했던 모텔 주인에게 유족들에 대한 억대의 손해배상을 명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환송됐다. 유족들이 받은 유족구조금은 장씨가 단독으로 부담하는 채무액에서 공제해야 하는데 장씨와 모텔 주인이 함께 부담하는 채무액에서 공제한 것은 잘못됐다는 이유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한강 몸통 시신 사건’의 피해자 A씨의 아내 B씨와 아들 C씨 등이 장씨와 장씨가 일했던 모텔 주인 이모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원심판결에는 범죄행위자와 사용자의 손해배상 범위가 다른 경우 범죄피해구조금 공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
장씨는 2019년 8월 자신이 일하던 모텔에서 투숙객 A씨가 시비를 걸고 숙박비를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둔기로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버린 혐의(살인·사체손괴·사체은닉)로 이듬해 무기징역을 확정받았다.
A씨의 배우자와 아들, 부모와 누나는 장씨와 그의 고용주인 모텔 주인을 상대로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장씨에게는 직접 살인이라는 불법행위를 저지른 가해자로서의 책임을, 이씨에게는 장씨를 고용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묻는 소송이었다.
한편 피해자의 아내 B씨는 1심 재판이 진행되던 도중인 2020년 1월 범죄피해자 보호법에 따른 검찰의 유족구조금 지급 결정으로 8800여만원의 유족구조금을 지급받았다.
1심 재판부는 장씨와 이씨가 공동으로 피해자의 아내 B씨에게 3억1900여만원, 피해자의 아들 C씨에게 2억6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A씨의 사망으로 장차 얻지 못하게 된 일실수입에서 이미 지급받은 유족구조금을 공제하고 유족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합산한 금액이었다.
재판에서 장씨와 이씨는 과실상계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건 당시 피해자인 A씨가 장씨에게 심한 모멸감을 줬고, 먼저 폭행한 점 등이 장씨로 하여금 범행을 저지르게 만든 과실이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들이 주장하는 사정들은 피고 장씨의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가해행위로 인해 망인이 목숨을 빼앗기는 손해를 입었고 그 시신마저 잔혹하게 훼손된 이 사건에서, 그와 같은 손해의 발생 또는 확대의 원인을 이뤘다고 평가할 수 없는 것으로 과실상계의 대상이 되는 과실이나 부주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배척했다.
이씨는 장씨가 부담하는 불법행위책임과 자신이 부담하는 사용자책임은 별개의 채무로써 손해배상의 범위가 서로 다를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씨가 장씨의 선임 및 사무감독에 상당한 주의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2심 재판부 역시 두 사람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A씨의 사망으로 인해 잃게 된 일실수입에 대한 이씨의 과실을 70%로 제한했다.
피해자 A씨가 일정 부분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있는 데다가, 장씨에게 1회 벌금형 전과가 있긴 했지만 폭력적인 성행으로 인한 전과도 아니었고, 이 사건 이전에 장씨가 투숙객이나 직원과 특별히 갈등을 빚은 적도 없어서 이씨가 장씨의 살인 범행까지 예상하고 방지하기는 사실상 어려웠을 것이라는 이유였다.
결국 2심 재판부는 장씨가 B씨에게 3억3300여만원, C씨에게 2억1500여만원을, 이씨가 장씨와 공동으로 A씨에게 2억4300여만원, C씨에게 1억5500여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재판부의 판단 중 유족공제금을 공제한 부분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장씨와 이씨가 공동으로 책임지는 배상액에서 공제할 것이 아니라, 장씨가 단독으로 부담하는 배상액에서 우선적으로 공제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야만 장씨가 배상액을 모두 갚을 자력이 부족할 때 그 위험을 B씨가 떠안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였다.
민법상 불법행위를 저지른 피용자와 불법행위자를 고용한 사용자는 각각 민법 제750조, 제756조에 따라 피해자에게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는데, 이때 두 사람의 채권자(피해자)에 대한 관계를 부진정연대채무라고 한다. 판례에 따르면 부진정연대채무 관계에서는 돈을 갚는 변제 외에는 상계의 경우에도 다른 공동채무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등 일반적인 연대채무보다 채권자가 강하게 보호받는다.
재판부는 “구조피해자 또는 그 상속인이 가해자 본인에 대해 고의의 불법행위를, 가해자의 사용자에 대해 사용자책임을 주장하며 공동으로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을 때, 법원이 공동 손해배상금 지급을 명하면서 사용자에 대해서만 과실상계를 적용함으로써 더 적은 금액의 지급을 명하는 경우 구조피해자나 유족이 구조금을 받음으로써 소멸하는 부분은 다액채무자인 가해자 본인이 단독으로 부담하는 채무 부분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이 경우 가해자 본인과 사용자가 부담하는 채무는 금액이 서로 다른 부진정연대 관계에 있는데, 손해배상금 일부의 지급을 공동으로 채무를 부담하는 부분에서 공제하는 것은 과실상계의 결과로 구조피해자나 유족이 다액채무자인 가해자가 무자력일 때 그 위험까지 부담하게 돼 채권자로서 지위가 약화되므로 부진정연대채무의 성질에 반한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 판결은 손해배상액에서 구조금 공제를 긍정해 이중배상은 방지하되, 범죄피해자 구조제도의 취지를 고려해 손해배상에 앞서 구조금을 먼저 받은 사람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도록 한 범죄피해자 보호에 충실한 판결”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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