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수진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5일 ‘밥 한 공기 비우기 캠페인’을 제안했다가 여야 양측에 비판받았다.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는 내용을 담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양곡법) 통과 대신 내세운 대안이었으나, 실효성이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양곡법을 둘러싼 여야 갈등은 근본적으로 ‘잉여 쌀’ 문제에 있다. 국내 쌀 소비량이 농가의 쌀 생산을 따라가지 못하니 쌀 가격이 폭락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농가의 고통을 덜기 위해 양곡법을 통과하려 했으나, 정부는 ‘시장 왜곡’에 해당한다며 거부권을 행사했다.
넘치는 쌀로 경제적, 정치적 혼란을 빚는 것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지난 십 수년간 아시아인의 밥상에서 쌀은 빠르게 감소했고, 빈자리를 밀이 채웠다. 그 결과 정부 재정과 식량 안보에까지 악영향을 주는 ‘역설’이 벌어졌다.
韓만이 아니다…아시아 밥상 대체하는 ‘밀’ 음식
미 농무부 자료에 따르면 아시아의 쌀 소비량은 2000년부터 2021년까지 14% 상승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밀 소비량은 34% 상승해 증가율이 2배 이상 높았다. 2021년 기준 아시아인은 4억 톤이 넘는 쌀과 3억3700만톤가량의 밀을 소비한다. 2020년 밀 소비량이 2억 톤 수준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폭발적인 성장세다.
쌀 소비와 밀 소비가 함께 증가하는 나라는 필리핀,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이다. 이들 나라는 경제가 발전하면서 전반적인 식자재 소비량이 함께 성장하는 추세다. 반면 이미 영양 측면에서 선진국에 도달한 지 오래인 한국, 일본 등은 쌀 소비량이 과거와 비교해 감소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1월 27일 발표한 ‘2022년 양곡 소비량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7kg이었다. 9년 전인 2013년(67.2kg) 대비 15.6% 줄었다. 밀 소비량은 36.9kg으로 쌀 대비 이미 절반을 넘어섰다. 쌀밥으로 식사를 하는 비중은 빠르게 감소하는 반면, 밀로 만든 가공식품이나 빵 등으로 끼니를 때우는 일이 새 라이프 스타일로 자리 잡고 있다.
잉여 쌀의 역설…재정 부담 늘고 식량 안보 취약
쌀 소비가 줄어드는 대신 밀 소비가 늘어나는 것은 국가 재정은 물론 식량 안보에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지난해 10월 일본 ‘닛케이’ 신문은 이런 내용을 담은 “밀 수요 증가가 아시아의 취약점을 노출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통상 아시아 국가는 밀을 재배하기에 최적의 환경이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인의 주식은 쌀밥이었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밀 음식의 인기가 높아지자, 국내 조달이 가능한 쌀은 넘쳐나고 해외 밀 수입은 크게 늘었다.
게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글로벌 밀 보급망은 크게 교란된 상태다. 수입산 밀에 의존해야 하는 아시아 국가는 “특히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됐다”는 게 닛케이의 분석이다. 닛케이는 “대만 해협의 긴장감 증대 등을 고려했을 때 (아시아 식량 위기는) 억지스러운 시나리오가 아니다”라며 “일본과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식량 문제 해결 능력이 시험받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국내 밀 자급률 또한 0.8%에 불과하다. 2022년 식용 밀 수입량은 260만 톤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수입액은 11억5002만달러(약 1조4857억원·평균환율 1291원 기준) 였다.
이런 가운데 수요 급감으로 초과 생산된 쌀의 양은 더욱 늘어나, 쌀 가격 폭락을 야기한다. 국내 식량 안보를 책임질 농가를 보존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일정액 이상 공공비축미를 매입할 수밖에 없다. 해외 식량 의존도는 늘어나는데 세금은 먹지도 않을 쌀 매입에 투입되는 딜레마에 빠지는 셈이다.
쌀 생산량 줄이고 밀 자급률 높인다
현재 정부는 점진적으로 쌀 생산량을 줄이고, 밀 자급률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춘 상태다. 지난달 8일 농림축산식품부는 올해 벼 재배면적 목표를 지난해 71만7000헥타르(ha)에서 3만7000ha 줄인 69만ha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밀 자급률 목표는 2025년까지 5%(재배면적 3만ha, 생산량 12만 톤)로 설정한 상태다. 2020년부터 밀 전문 생산단지를 육성하고 국산 밀 품질 고급화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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