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주택가에서 40대 여성이 납치돼 살해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초동 대응은 문제가 없었다’는 입장이지만,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경찰 주장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수사 과정의 문제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3일 정례 간담회에서 차량 추적 등 현장에서 초동 대응은 늦지 않았다며 경찰은 최선을 다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국민 생명을 지키지 못한 점에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결과적으로 아쉬움이 남지만 수사에 착수 안 했거나 해태(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 싫어하는 태도)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앞서 이 사건 관할 경찰서인 서울 수서경찰서는 지난달 31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초동 조치는 잘 됐다고 판단한다”고 말한 바 있다. 관할 경찰서에 이어 수사 컨트롤타워 국가수사본부까지 초동 대처에 ‘문제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힌 셈이다.
전문가들 견해는 다르다. 상당수가 인접한 경찰관서에 공조 요청이 뒤늦게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복준 중앙경찰학교 외래교수는 “피의자들이 서울 강남에서 외곽으로 벗어났다면 경기남부 쪽으로 빠질 확률이 높다”며 “적어도 경기남부경찰청에는 바로 공조 요청을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경찰은 지난달 30일 오전 4시23분께 경기남부청에 가장 위급한 단계인 ‘코드 제로(긴급출동)’ 대응을 요하는 공조를 요청했다. 사건 발생 4시간30분 만으로, 당시는 이미 피해자를 납치한 피의자들이 경기남부권역을 벗어나 대전에 도착했을 무렵이다.
이후 경찰은 같은 날 오전 4시57분께 전국에 공유되는 수배 차량 검색시스템(WASS)에 범행에 쓰인 차량 번호를 등록했다. 범행 차량 번호를 특정한 지 4시간이 지나서야 시스템 등록이 이뤄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이훈 조선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시스템 등록이 이처럼 늦은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며 “야간 4시간이면 서울에서 부산도 갈 수 있는데, 이미 구축해놓은 시스템을 안 쓰고 물리적으로 따라가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라고 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개발된 시스템 활용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심되는 대목”이라며 “작동만 시켰으면 몇 분 이내 포착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결국 인명 피해로 이어지게 된 것으로 보여 매우 아쉽다”고 말했다.
경찰은 WASS에 차량 등록이 늦은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시점이 야간이라 CCTV의 해상도와 인식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라며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일찍 입력했어도 실질적으로 (차량 동선 등을) 포착 못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전문가들도 일부 공감하는 부분이다.
김 교수는 “고속도로 CCTV는 높이 위치해 있어 차량 번호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피의자들이 용인 부근에서 국도로 갈아탔기 때문에 고속도로 CCTV도 무용지물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경찰 입장이 납득이 된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 그는 이날 YTN 뉴스라이브에 출연해 “갑론을박이 일어날 수 있지만, 경찰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는 부분”이라며 “피해자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대해선 뼈아픈 반성을 하더라도 경찰이 중간에서 임무를 해태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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