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HN스포츠 이규원 기자) 여자컬링 4인조 스위스 국가대표팀인 ‘팀 티린초니’가 세계선수권 34연승 행진을 하며 5년 연속, 4회 연속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스위스 ‘팀 티린초니’는 27일 스웨덴 산드비켄에서 끝난 2023 세계 여자컬링 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네덜란드 ‘팀 뢰르비크’를 6-3으로 물리치고 현존 세계 최강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예선에서 12승 전승을 거두며 1위로 본선플레이오프에 직행한 스위스는 준결승전에서 스웨덴의 ‘팀 하셀보리’를 8-4로 완파하고 결승에 올라 캐나다 ‘팀 에이나르슨’을 8-5로 꺾은 네덜란드마저 잠재우고 5년 연속, 4회 연속 우승이라는 전인미답의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대표로 이번 대회 출전한 춘천시청 ‘팀하’(스킵 하승연·서드 김혜린·세컨드 양태이·리드 김수진, 코치 이승준)는 라운드로빈 방식으로 치러진 예선에서 5승 7패로 13개팀중 9위를 차지하며 6강이 겨루는 퀄리피케이션 게임에도 진출하지 못하는 쓴맛을 봤다.
세계여자컬링선수권대회는 범대륙선수권대회와 유럽선수권대회을 통해 선발된 13개팀이 세계 최강을 겨루는 가장 권위있는 대회다.
한국은 지난해 대회에서 강릉시청 ‘팀 킴’(스킵 김은정·서드 김경애·세컨드 김초희·리드 김선영·후보 김영미, 감독 임명섭)이 이번 대회 우승팀인 스위스 ‘팀 티린초니’에 6-7로 아쉽게 패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팀 킴’은 비록 우승은 놓쳤지만 세계 최강 스위스에 1점차로 분패하며 세계선수권 역대 최고 성적을 거뒀다. 이전 최고성적은 지난 2019년 춘천시청 ‘팀 민지’가 획득한 동메달이었다.
한국 여자컬링은 2018평창동계올림픽에서 ‘팀 킴’이 한국 컬링 역사상 최초로 은메달을 획득하며 컬링 신드롬을 일으켰다.
‘팀킴’은 이후 지도자들의 갑질과 인권침해 사건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강릉시청에서 부활하며 경기도청 5G(스킵 김은지·서드 김민지·세컨드 김수지·리드 설예은·후보 설예지, 코치 신동호), 춘천시청 ‘팀하’와 절대강자가 없는 여자컬링 시대를 열었다.
한국 여자컬링은 이들 3팀이 국제대회에 꾸준히 출전하며 성적을 내고 기존의 전북도청, 서울시청과 새롭게 의성군청, 유봉여고 등 팀 창단도 꾸준히 이어지며 외형적으로는 성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 ‘한국 컬링은 전세계에서 훈련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그러나 춘천시청이 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결선플레이오프에도 진출하지 못한 성적표는 한국 여자컬링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지표이자 향후 올림픽 등에서 세계 강호들과 경쟁하기 위해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스위스, 스웨덴, 캐나다, 일본 등 전통 강국에 노르웨이, 이탈리아, 미국, 트루키예 등 상위권 팀들과 경쟁하려면 한국 여자컬링의 훈련방식과 관리가 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현장에서 만난 한 컬링 지도자는 이번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여자컬링의 부진의 이유를 기술적인 부분보다 멘탈로 지적했다.
이 지도자는 “기본적으로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한 상위 6~7팀은 실력이 검증 되어있다”면서 “검증된 팀끼리 경쟁에서는 마지막 샷 에서 승부가 결정 되기 때문에 결국 스킵이 테이크, 드로우는 물론 멘탈까지 모든걸 갖춰야 강팀이라고 할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일반 팬들은 그냥 하우스 안에 계속 스톤을 집어넣는 것인데 그걸 왜 못넣나 하지만 컬링은 기술과 함께 멘탈이 절대적으로 작용하는 스포츠다”라고 단언했다.
한국을 ‘전세계에서 훈련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라고 단정한 다른 컬링인은 “실전 시합때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는 훈련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각각의 팀 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실력이 부족한 팀일수록 좀더 과감한 샷들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미스에 대한 두려움에 갖혀 있으면 더이상의 실력을 끌어 올릴수 없다”면서 “ 아이스의 훈련은 하나의 파트인 부분이며 또 다른 훈련인 멘탈 훈련을 통하여 어려운 샷을 극복할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더 강해져야한다”고 전했다.
이어 “샷의 미스로 자신감이 떨어져 있는 선수들이 심리적인 훈련과 멘탈 훈련을 통해서 포기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극복해서 이겨내는 훈련이 필요할것 같다”고 덧붙였다.
■ 일방적인 지도자 지시 받는 ‘1분 미팅 방식’은 선수들 위축
또 다른 지도자는 “최근 국제대회에서 앤드마다 1분씩 작전 시간을 허용하는 규정으로 바뀐 점도 주목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1분의 시간을 진짜 활용을 잘하는 팀한테는 약이 되지만 선수들이 수동적으로 코치의 지시에 따라야만 하는 팀에게는 경기 결과가 달라지는 독이 된다는 것이다.
선수들의 경기 경험이 풍부한 ‘팀 킴’의 경우는 선수들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외국의 강팀들도 1분 미팅을 생략하고 선수들끼리 풀어나가는 경향이라고 한다. 결국 선수들 스스로 경기에 대처하지 못할 때 지도자의 지시를 받을수 밖에 없는데 아이스에서 플레이하는 선수들과 생각이 다를 때 경기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야구나 축구처럼 지도자가 전력분석관의 협조를 얻어 상대팀을 분석하고 처방하는 방법이 있지만 우리 컬링은 예산 부족으로 지도자의 보조 역할에 그치고 있다. 승부에만 집착하고 상대팀 분석에는 소홀히 하는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 했다.
팀의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스킵이나 서드의 잦은 멤버 이동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훈련 현장에서 만난 국가대표 출신 베테랑 선수는 “세계적인 강팀일수록 스킵이나 서드는 장기간 변화가 없다”면서 “팀워크가 어느 종목보다 중요한 컬링에서는 강팀 일수록 선수들의 변화가 없다”고 전했다. 일본의 후지사와 스즈키가 스킵만 10년 경력인 것처럼 기본적으로 세계적인 강 팀 들은 9~10년 같은 멤버로 팀을 꾸리고 있다고 한다.
세계 최강 스위스 ‘팀 티린조니’는 2018년~2019년 시즌부터 포스 알리나 패츠와 스킵·서드 실바나 티린조니 멤버를 골격으로 세컨드 에스더 노이엔슈반더, 리드 멜라니 바르베자트의 멤버를 유지하고 있다. 원래는 스킵 실바나 티린조니가 마지막 샷을 던졌으나 2022년부터는 작전만 짜고 마지막 샷은 포스 인 알리나 패츠가 던지면서 현재 세계선수권 34연승을 달리고 있다.
전통의 강팀인 스웨덴 ‘팀 하셀보리’도 2015년~2016년 시즌부터 스킵 안나 하셀보리, 서드 사라 막마누스, 세컨드 앙네스 크노셴하우에르, 리드 소피아 마베리스 멤버로 약 9년간의 연속성으로 팀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대회 예선 4위를 차지한 이탈리아는 우리나라보다 실력이 한수 아래로 평가됐지만 오랜기간 멤버를 유지하는 연속성으로 6강이 겨루는 퀄리피케이션에 진출했다.
반면, 2022베이징올림픽 금메달 팀인 ‘팀 뮤어헤드’(스코틀랜드)는 스킵 뮤어헤드가 은퇴한 후 세대교체에 실패하며 이번 대회 12위위 그치는 부진을 보였다.
■ ‘팀 킴’ 2012년부터 같은 멤버를 유지하며 가장 좋은 성과
우리나라의 ‘팀 킴’은 2012년부터 같은 멤버를 유지하며 올림픽 은메달, 세계선수권 은메달 등 가장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점은 컬링에서 지도자와 멤버들의 팀워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를 방증한다.
경기도청 ‘5G’도 스킵 김은지가 2012년부터 중심을 잡고 멤버를 보강하면서 세계정상급 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 출전한 경기도청 5G는 올 시즌 13개 국제대회에서 3차례 우승을 포함하여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반면 춘천시청은 스킵을 맡던 김민지가 경기도청 서드로 이적하면서 하승연이 이번 대회를 통해 국제무대에 처음으로 데뷔했다. 춘천시청은 상대적으로 젊은 팀이기에 파이팅과 분위기를 타면 상승세를 유지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팀 분위기를 이끌 큰 경기 경험의 부족을 드러내며 예선 탈락하고 말았다. 경기중 코칭스태프와 팀 미팅 끝난후 선수들의 굳은 표정이 선수단의 분위기를 대변했다.
국가대표급 선수단 관리가 중앙연맹의 집중식이 아니라 지역연맹이 대신하는 현실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대한컬링연맹이 회장이 정상적인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내홍으로 흔들리면서 여자컬링의 육성가 관리는 자연스럽게 지역연맹의 몫이 됐다.
대한컬링연맹은 2013년 제7대 김재원 회장이래, 장문익 회장, 윤흥기 관리위원장, 김재홍 회장, 김구회 직무대행, 김용빈 회장에 이르기까지 재임기간이 1~3년에 그치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줬다. 지난달 보궐선거로 당선된 제10대 한상호 회장도 김용빈 전 회장의 잔여임기인 2025년 1월 정기총회까지 2년 남짓이다.
■ “팀 운영은 지역 연맹의 몫…중앙연맹의 역할은 없다”
중앙연맹에서 4년 임기의 회장이 중심을 잡고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한 상황인데 1~3년 만에 회장이 교체되면서 현장의 혼란은 가중되고 리더십도 무기력해졌다고 한다.
결국 여자컬링은 지역연맹의 역량과 관심에 의해서 유지, 발전돼 왔다고도 과언이 아니다. 기자가 만난 한 지역연맹 회장은 “팀 창단을 하기 위해서 선수들을 발굴하고 도지사나 시장, 경제계 인사들의 협조를 얻기 위해 뭐든 한다”면서 “팀을 지속 발전시키고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협찬과 후원도 지역연맹의 몫이다. 이런 과정에서 중앙연맹에서의 역할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국내 대회수와 선수 및 팬 관리 인프라, 공식 후원사의 문제도 선결과제라고 한다.
일본은 컬링 경기 중계방송을 NHK스포츠에서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올림픽이나 국가대표선발전 등 극히 제한된 대회만 방송에서 중계하고 대부분의 경기는 유튜브나 중계가 없는 실정이다.
일본은 대표팀인 후지사와 스즈키와 같은 팀이 4.5개 정도 있는데 팀 구성은 철저히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후원사도 자국 자본의 은행에서 꾸준한 재정적인 뒷받침하고 있어 지속 가능한 운영을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비교적 큰 후원을 이어오던 KB금융과의 후원 계약이 종료되어 새로운 후원사를 물색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회수와 팬들과의 소통도 개선해야 한다고 한다. 컬링 선진국들은 시즌 중에는 국내대회와 오픈대회를 꾸준히 개최하며 경쟁력을 높인다. 대회도 관중과 함께하는 아레나경기장에서 진행하여 선수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팬들과도 꾸준히 소통하며 저변을 넓힌다고 한다.
한상호 회장은 지난 2월 22일 회장에 취임하면서 “회장으로 취임하자마자 국내에서 굵직한 국제 이벤트가 연이어 열린다”면서 “각 시·도지부 회장단과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성공적으로 행사를 개최하고, 미래의 컬링인들에게 자랑스러운 한국 컬링을 물려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겠다”라고 했다.
컬링인들은 구원 투수로 나선 한상호 회장의 취임사가 말잔치가 되기 않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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