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지 않아도 될 길을 걷는다.
버스를 타고 가다 창밖으로 보이는 벚꽃.
그 현란한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려 무작정 하차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한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은 아차산에서부터 이어지는 긴고랑로(이름이 웃긴다)이며 벚꽃 명소로 알려지지 않은 벚꽃 명소란 생각을 해봤다. 서울벚꽃이 유명한 곳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여의도 윤중로일 텐데 거긴 과거 여의도에서 근무할 때를 제외하고 작정을 하고 봄꽃구경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런 유명하지도 않은 서울벚꽃에 걷지 않아도 될 길을 걷다니 참으로 별나다.
도대체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어 갑자기 버스에서 내려 봄꽃구경을 하기로 한 것일까?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모르겠다. 그냥…
파아란 건물에 비친 벚꽃이 무척이나 탐스럽다.
서울이 공해가 어쩌고저쩌고 하기도 하지만 서울벚꽃도 봄이면 어김없이 탐스럽게 피어난다.
난 서울벚꽃도 어느 지역 유명한 봄꽃구경에 모자라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역사랑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냥 보기에 그리 보인다.
그러고 보면,
여행을 떠난다 할 때 항상 서울을 벗어난다.
조금은 더 멀리, 조금은 더 많은 걸 보고자 하는 것이 그동안의 여행이었다면 이젠 그 형식을 바꿔봐야겠다.
내가 살고 있는, 나의 생활권에서 가보지 못한 곳을 중심으로 여행의 범위를 조금은 가깝게 조금은 더 세밀하게.
마이크로 디테일.
벚꽃나무에 톡 튀어나온 그저 작은 벚꽃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고 가까이 다가가 보면 내 시야의 모든 영역을 벚꽃이 가득 채운다. 더 가까이 더 세밀하게 바라봄으로써 지금까지 지나쳐왔던 벚꽃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보이고 다른 형태로 느껴진다.
그리고 또 놀라운 사실.
분명 같은 사진인데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면 색감의 변화는 물론 이렇게 환상적인 분위기로 바뀐다.
참으로 놀랍지 않은가? 하긴 그렇다 이야길 들어보면 팔다리는 가늘고 길게 하고 몸은 날씬하게 하며 눈은 크게, 코는 오똑하게 입술은 앵두같이 만들어내는 스마트폰 앱은 모든 여성들의 필수품이라는 것.
게다가 피부는 대리석 피부라나 어쩌나.
여성들뿐만 아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비록 실제 만났을 때 실망할지언정 누군가 나를 바라볼 때 예쁘고 멋진 모습으로 보이기를 원하고 또 그렇게 행한다. 그렇다면 벚꽃은 어떨까?
위에서 먼저 봤던 칙칙하거나 푸른 감이 드는 꽃을 분홍 감이 드는 색으로 바꾸고 화사하게 빛이 발광하도록 만든 이 사진을 보며 좋아할까? 아니면 망쳤다고 욕을 하려나?
자연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따로 원하는 것도 없건만 나와 사람들은 실제가 아닌 가상의 나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다. 봄꽃구경을 하며 별의별 생각을 다하는구만 기래.
오늘 갑작스레 걷게 된 때,
서울벚꽃의 예쁨에 빠져들었던 때,
그 기억을 잠시 정리해 봤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