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가 수습되는 과정에서 23조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이 ‘휴지조각’이 되면서 국내 개인 고객에게 판매된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우려가 커진다. 올해 들어서만 7400억원 이상의 신종자본증권이 개인 고객에게 팔렸다.
국내 판매된 신종자본증권은 대규모 상각 우려가 없다곤 하지만 일반적인 채권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점에서 투자에 유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5개 증권사가 올해 1분기(1월2일~3월20일) 개인 고객에게 판매한 신종자본증권은 총 7453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 1조31억원보다는 다소 줄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의 판매액을 이어가고 있다.
신종자본증권은 채권과 자본의 성격을 동시에 갖는 일명 ‘하이브리드’ 채권이다. 보통 30년 이상 장기 혹은 영구채 형태로 발행되기 때문에 지주, 은행, 보험사 등 금융사의 자기자본비율 산정에서 자본으로 인정받는다. 금융사 입장에서는 증자를 하지 않고 채권 발행으로 자본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자본 확충 수단으로 꼽힌다.
개인 고객을 중심으로 신종자본증권이 인기를 끈 이유는 높은 이자 수익 때문이다. 후순위라는 단점이 있지만 대신 높은 표면금리를 제공한다. 최근 국내에서 발행되는 신종자본증권의 표면금리는 대개 연 5~6%대 이상이다.
연 5.6%짜리 신종자본증권에 1억원을 투자할 경우 세전 기준 분기마다 약 142만원의 이자를 받을 수 있다. 1년이면 568만원이다. 5억원을 투자한다면 1년 이자는 약 2838만원으로 웬만한 직장인 연봉 못지 않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신종자본증권은 무엇보다 금리가 높다는 점 때문에 지난해부터 리테일 판매를 하면 일찍 완판되곤 했다”며 “특히 은퇴 이후 고정 수익을 원하는 자산가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신종자본증권의 위험성이 본격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하반기부터다.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채권 시장의 유동성 경색이 심화하면서 흥국생명과 DB생명이 발행한 신종자본증권에서 콜옵션 미이행 사태가 벌어졌다.
만기가 긴 신종자본증권은 보통 만기 전에 발행사가 이를 되살 수 있는 콜옵션(조기상환권) 조건이 붙어 있다. 발행 후 5~10년쯤 뒤에 콜옵션 시기가 오는데 시장에서는 사실상 만기로 인식한다. 발행사는 상황에 따라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아도 되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장기간 돈이 묶이기 때문에 악재로 받아들인다.
최근 CS 사태로 신종자본증권의 위험성은 그대로 드러났다. 후순위 조건은 평소라면 큰 문제가 없지만 CS 처럼 채권 발행사에 심각한 유동성 위기가 닥쳤을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채무자의 자산을 청산하더라도 가장 나중에 변제 받을 수 있어 심각한 경우에는 투자금 전부를 날릴 수도 있다.
채권의 가장 큰 장점은 ‘만기’와 ‘원금보장’이다. 금리가 올라 채권 가격이 아무리 떨어져도 발행사가 망하지 않는 한 만기까지 보유하면 원금과 이자가 보장된다. 하지만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불확실할뿐더러 원금보장도 되지 않는다. CS 사태는 신종자본증권의 위험성을 극단적으로 보여 준 사례다.
국내 신종자본증권에서는 CS 사태와 같은 리스크가 발생할 위험성이 적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CS는 고위험 상품 중개와 IB투자 등으로 대거 손실을 입으면서 유동성 위기를 맞았지만 안정적인 예대 마진으로 기반으로 하는 국내 주요 은행들은 유동성 위기나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시중 은행은 높은 예대 마진을 바탕으로 최대 실적을 기록 중이고 대규모 예금 인출 정황도 없다”며 “CS와 사업구조가 달라 국내 은행들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적다”고 설명했다.
시중 은행이 망할 우려는 거의 없다곤 하지만 부동산PF(프로젝트 파이낸싱) 위험성은 또 다른 변수가 될 수 있다. 고금리와 경기침체로 부동산 시장이 경착륙 할 경우 부동산PF 사업장에서 대거 채무불이행이 나올 수 있고 저축은행과 캐피탈 등 부동산PF 비중이 높은 금융권은 유동성 위기를 맞을 우려도 있다.
최 연구원은 “신종자본증권은 투자하기 전에 언제나 리스크를 체크해 봐야 한다”며 “이자 미지급 가능성이나 콜옵션 미이행, 최악의 경우 상각될 가능성 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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