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K금융그룹이 창단한 ‘제5의 실업팀’ 읏맨 럭비단의 초대 사령탑에 오른 오영길(55) 감독은 재일교포다.
얘기를 나눠보면 아직 한국말이 완벽하지 않다. 강인한 인상에 다소 서툰 발음이지만 그의 말 속에는 열의와 진정성이 느껴진다. 오 감독은 같은 재일교포로 한국 럭비 발전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는 최윤 OK금융그룹 회장과 인연으로 한국 실업 럭비 팀을 맡게 됐다. 지난 20일 공식 창단식 현장에서 만난 오 감독은 “나는 한국에 살고 나의 나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하고 싶었다”고 수락 배경을 밝혔다.
오 감독은 사실 일본에서도 유명한 지도자다. 일본 오사카부 히가시오사카시에 있는 재일 조선인 고등학교인 오사카조선고급학교(오사카조고) 럭비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60만 번의 트라이’의 주인공이다.
오 감독은 이 학교 럭비부를 이끌고 2009-2010년 2년 연속 일본 럭비 전국 대회에서 4강에 진출해 주목을 받았다. 오 감독은 일본 세미프로리그 럭비원 디비전3 NTT 도코모 아카데미 육성 코치로 활동했고 2021년에는 한국 대표팀 코치로 아시아 대항전인 아시아 럭비 세븐스시리즈에 나가기도 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의 럭비 저변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일본 럭비는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이후 빠르게 발전했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프로화를 이뤄낸 결과다. 이에 대해 오 감독은 “일본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럭비 육성에 힘을 쏟았고 프로화가 이뤄지면서 한국과 격차가 벌어졌다”며 “20년 전만 해도 한국과 일본의 럭비 순위는 20위권 안팎으로 비슷했는데 지금 일본이 세계 10위, 한국은 31위가 돼 있다. 일본에는 읏맨 럭비단 같은 실업팀만 100개 정도”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오 감독은 한국 럭비를 지도하면서 희망을 봤다. 오 감독은 경기력의 측면에서 “다른 것은 뒤지지 않는데 체력이 가장 문제”라며 “80분을 뛰는 체력을 기르는 것이 급선무”라고 한국 럭비를 진단했다.
오 감독은 단순히 한국 럭비의 기량 향상을 위해 한국행을 결심한 것은 아니다. 그는 빠르게 성장한 일본의 럭비 문화를 한국에 안착시키는 중책을 기꺼이 떠안겠다고 한다. 오 감독은 “일본에서는 럭비를 한다고 하면 사회에서 인정해주는 분위기”라며 “럭비 선수가 좋은 회사에 들어가고 머리도 좋으며 인성도 훌륭하다는 인식이 그것”이라고 전했다.
이는 바로 읏맨 럭비단의 지향점과 맞물린다. 구단은 ‘일하는 선수, 일하면서 운동을 즐긴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일본의 실업 럭비팀 문화를 벤치마킹한 이른바 ‘선진국형 실업팀’을 정착시키겠다는 청사진이다. 실제 팀 주장인 한구민(28)은 “우리는 낮에 직장인으로 대출 여신 심사와 채권 추심 업무를 하고 밤에 운동을 한다”며 “낮에 일하고 밤에 운동하는 생활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적응이 돼 재미있다”고 언급했다.
오 감독은 “‘럭비를 통해서 사회를 바꾸자, 럭비를 한국에 인식시키자’는 의지로 선수들과 같이 성장을 한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오 감독은 “일본에서는 럭비 선수들이 지역 사회와 교류한다”며 “예를 들어 힘쓸 일이 있으면 럭비 선수들이 가서 도와준다. 이렇게 인성을 함께 기르면 한국 럭비도 일본만큼 발전할 수 있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오 감독을 보면서 같은 재일교포로 현해탄을 건너 지금은 전설이 된 야구의 김성근 감독이 떠올랐다. 그도 일본 출신으로 한 스포츠 종목의 선구자가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김성근 감독과 닮은꼴이다. 오 감독에게 ‘나중에 럭비계의 김성근이 되는 게 아니냐’고 묻자 그는 “허허” 웃으면서 아니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실력과 인성의 양립을 주문하는 그의 비전과 열정에는 못지않은 강렬함이 존재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