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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가해 이유 “그냥”…속내엔 결핍과 폭력의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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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시즌 2는 ‘학교 폭력(학폭)’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재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왜 학교 폭력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은, 드라마 시청자 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갖는 사회적 물음이 됐다.

교육부에서 초등학교 4학년~고등학교 3학년 학생 321만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2022년 ‘학교폭력 실태조사(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학교 폭력을 저지르는 이유를 두고 “그냥”이라고 답했다(‘장난이나 특별한 이유 없이’, 복수 응답·34.5%). 이는 2019~2021년 결과와도 동일하다.

개인의 공격성과 공감 능력 결핍·또래 동조 문제 손꼽혀

학폭의 원인을 살펴보면, 먼저 ‘개인 내적인 요인’이 있다.

홍종관 교수의 2012년 논문은 “청소년기는 정신과 신체의 불균형이 일어나는 때”라고 설명한다. 청소년의 신체는 성인에 가까운데, 아직 성인의 역할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아동기에 했던 행동이 용납되지도 않는다. 이 때문에 청소년들은 혼란 상태에 빠진다.

논문은 “이러한 정서 불안이 해소되지 않으면 욕구 충족의 수단으로 일탈이나 학교 폭력을 저지르게 된다”라고 설명한다.

2004년 노성호 전주대학교 교수의 논문은 “학교폭력 가해자에게 가장 많이 나타나는 특성은 충동성과 공격성이다”이라고 지적한다.

이로 인해 가해자들은 사회질서나 규범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중심적인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어 분노를 조절하거나 화를 참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알려진다.

더불어 가해 청소년은 공감 능력이 결핍되어 있어 타인의 어려움이나 고통에 무감각하다고 전해진다.

2017년 김붕년 서울대학교 교수 연구진에 따르면 “공감 능력이 결핍되면 타인의 생각을 이해하고 상황을 인식하는 능력이 부족해지면서 적절한 태도를 취하지 못하고 충동성에 이끌릴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연구진은 “타인을 배려하거나 약자에 대한 동정심을 갖는 능력이 부족해 타인을 지배하고 학대하려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청소년기는 또래 집단이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애시의 1952년 동조 실험에 따르면, 사람들은 다수 집단의 영향력에 굴복하여 그 집단의 의견에 편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래 친구들이 학교 폭력 가해자라고 하더라도, 그들 집단에 편승하기 위해서 친구들의 가해 행동을 묵인하거나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면서 동조하게 되는 것이다.

위 실험과 2019년 송열매 국립정신건강센터의 연구 결과를 종합하면, 청소년들은 또래 집단에 동조하면서 자아존중감과 소속감을 얻게 된다. 개인의 안위를 지키고, 착취로 인한 쾌락이나 타인의 고통으로 인한 즐거움까지 얻게 되니 가해 집단에 동조하는 것이 청소년 개인의 입장에서는 이득인 셈이다.

가정 내 폭력 환경과 대화 단절도 중요 원인

가정은 청소년의 성격·정서 등이 형성되는 가장 기본적이며 중요한 공동체이다. 특히 학교폭력에 관한 많은 연구는 가정에 있는 부적절한 요인들이 학교 폭력의 위험 요인으로 꼽는다.

특히 다수의 연구에서 가정 폭력 노출 경험을 가장 강력한 위험 요인이라 보는데, 이는 사회심리학의 모델링 이론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1960년대 이뤄진 반두라의 ‘보보 인형 실험’ 결과에 따르면, 공격적인 행동을 하는 모델을 본 아동들이 폭력적인 행동을 더 많이 한다는 모방 학습 효과(모델링)를 보여준다.

2008년 김재엽 연세대학교 교수 연구진은 “아동학대나 부모 간 폭력이 발생하는 가정은 청소년에게 폭력을 학습하게 하는 역기능적 토양으로 작용하여 학교 환경에서의 폭력 사용을 정당화하며 폭력을 효과적인 문제 해결의 수단으로 용인하는 태도를 형성하게 한다”면서 “그 결과로 학교폭력 가해 행동의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라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이처럼 가정에서 폭력을 학습한 청소년들은 강한 사람에겐 복종해야 하고, 약한 사람은 괴롭혀도 된다는 힘의 논리에 젖어 들게 된다. 공격을 받기 전에 먼저 공격하며 자신이 막강한 힘의 소유자이자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것이다.

연구진은 “가정에서 폭력에 노출될수록 가정 밖의 학교 환경에서 또래를 향해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라고 말한다.

가정 내에서 발생하는 정서적 빈곤 역시 학교 폭력의 발생 요인으로 알려졌다. 부모와 자녀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할 경우 폭력의 위험성은 증가하게 된다.

올위어스의 1993년 연구에 따르면, 부모가 자녀를 권위적으로 대하거나 남들과 비교하는 등 부적절한 양육 태도를 가지고 있을 때 자녀는 공격적이며 충동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입시 위주 줄 세우기 교육과 대중매체에 만연한 폭력 문제

사회적 요인으로는 입시 위주 교육의 병폐를 들 수 있다.

홍종관 교수의 논문은 “정체감을 형성하는 청소년 시기에는 다른 사람을 통해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를 원하기 때문에 사소한 일로도 자존심을 침해받거나 충격받기 쉽다”며 “성적 경쟁의 풍도 속에서, 학교에서의 실패는 곧 사회생활의 실패로 인식되어 청소년들에게 커다란 좌절과 실망을 안겨준다”라고 설명한다.

즉 “입시만을 강조하는 사회 풍토가 청소년들의 분노·열등감·좌절감 등을 심화시키면서, 이를 해소할 돌파구로 폭력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솜방망이 처벌, 학교폭력 지속 요인으로 작용

학교 폭력의 발생 요인은 위와 같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전해진다. 그렇지만 이것이 학교 폭력이 지속되는 이유를 설명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더 글로리’의 가해자인 등장인물 ‘박연진’은 피해자 ‘문동은’이 가해 이유를 묻자 “난 이래도 아무 일이 없고 넌 그래도 아무 일이 없으니까. 아무도 널 보호하지 않는다는 소리야”라고 답한다.

2022년 이화여대 교육과학연구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교육과학연구’에 따르면, 학생들이 인지한 학교 폭력 주요 발생 원인은 “가해 학생 교육·선도 부족(52.5%)”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중·고생 780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다.

학생 응답자는 학교 폭력 대책 중에서 ‘소년 사건 수준의 폭력 대응 강화’, ‘학교 폭력 감지 시 신속한 대응 강화’, ‘조기 개입 체계 마련’을 가장 중요하다고 인식했다.

우리 사회에서 학교 폭력은 엄중하게 다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3일 교육부의 학교폭력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2학기 학교장 자체해결제가 도입된 뒤 2022년 1학기까지 학교장이 처리한 학교 폭력은 7만8574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학교 폭력 발생 건수 중 62.6%에 해당한다.

학교나 교육청은 학교장 자체 해결을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 또 학교폭력위원회의 가해 학생의 조치는 서면 사과나 보복행위 금지 등 경미한 수준에 그친다.

피해자 보호 역시 부실하다. 2022년 1학기 학교 폭력 3만457건 발생 중 단 94건만 학급교체가 이뤄졌다.

학생들의 의견처럼, 폭력은 무관용 원칙으로 초기에 대응해야 확산 및 악순환을 막을 수 있다.

실제로 미국 법무 통계국에 따르면 학교 폭력에 대한 형사 처벌을 강화한 이후 학교에서 일어난 범죄 발생률이 2019년 3%에서 2020년 1.1%로 낮아졌다. 법적 처벌이 잠재적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 생산을 방지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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