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법원이 성전환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의 성별 정정 신청을 허가했다.
트랜스젠더가 주민등록상 성별 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재판을 거쳐 법원이 허가를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법원이 요구하는 기준을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절차가 까다로운 탓에 성별 정정은 트랜스젠더에게는 넘기 어려운 벽처럼 여겨졌다.
현재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허가 신청사건 등 사무처리지침에 따르면 대법원이 요구하는 성별 정정 기준은 ▲만 19세 이상의 행위능력자일 것 ▲생식능력 제거 수술을 포함한 성전환수술을 마칠 것 ▲혼인 중이 아닐 것 등이다.
문제는 성기 성형이 사실상 성별 정정의 필수 요건으로 요구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무처리지침 제6조에서는 성전환수술 및 생식능력 상실 등을 ‘참고사항’으로 제시하고 있으나, 실제 상당수의 재판에서는 ‘허가 조건’으로 삼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까다로운 절차 탓 성별 정정을 사실상 포기하는 사례도 다수 나타나면서 성 소수자 인권단체에서는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지적을 이어왔다.
하지만 최근 법원에서 성기의 외형을 바꾸는 수술 없이 성별 정정 신청을 허가하는 결과가 왔다. 수술 여부 등 일괄적 기준 대신 트랜스젠더의 구체적인 삶을 고려한 판결이 나오는 모습이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에 따르면 지난달 15일 서울서부지방법원 제2-3민사부(재판장 우인성)은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트랜스젠더 여성 A씨에 트랜스젠더도 성별 정정이 가능하다고 판결했다. A씨가 타고 태어난 성은 남성이었으나,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여성이라고 인식했다. 만 17세인 2015년부터 꾸준히 호르몬 요법을 이어왔고, 여성으로서 일상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A씨의 성별 정정 허가 신청을 기각했다. A씨가 성전환수술을 하지 않아 사회적 혼란과 혐오감, 불편감, 당혹감 등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A씨는 이에 불복했고, 항고심에서 성별 정정을 허가받았다. 항고심 재판부는 “외부 성기가 어떠한가는 성 정체성 판단을 위한 평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는 아니라고 봐야 한다”며 “외부 성기를 제외한 모든 부분, 특히 정신적 영역에서 여성으로 명백하게 판단된다면 여성으로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또 본인 의사에 반하는 성전환 수술은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짚었다. 재판부는 “호르몬 요법만으로도 성별불쾌감이 해소되는 경우가 있음에도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성별불쾌감을 해소시키는 정도를 넘어 육체적 변형을 추가로 요구한다면, 일정한 키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사람의 다리를 자르거나 몸을 늘리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와 다를 바 없다”며 “인간의 존엄은 그 인간 자체의 온전성을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밝혔다.
법원에서 성전환 수술 없이 트렌스젠더의 성별 정정을 허가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2021년 10월 수원가정법원 가사항고2부는 10월 생식능력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지 않은 트랜스젠더 남성 B 씨에 대해 성별 정정을 허가했다. B 씨는 중학교 3학년께 자신을 성 정체성을 남성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2018년 성전환증 진단을 받아 남성 호르몬 요법을 시작했다. 양측 유방전절제술도 받았으나 자궁절제술(자궁적출술)을 받지는 않았다.
한편 국제 사회에서는 성별 정정 절차를 간소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성별 정정을 자기 결정권 문제로 보고, 트랜스젠더의 인권을 보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난 2월 핀란드 의회는 의학적 및 정신과적 승인 절차 없이 18세 이상 성전환자가 자기 선언 과정만으로 법적으로 성별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스페인의 경우 지난해 12월 16세 이상이면 누구나 의료진 감독 없이 법적 성별을 바꿀 수 있도록 하는 트랜스젠더 권리 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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