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다시피 일어나서 바로 나왔습니다.” 정인건씨(24·정보디스플레이학과)는 신고 있던 슬리퍼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1000원 학식을 먹으려고 일어나자마자 학교 식당으로 달려온 것이다. 정씨는 “하루에 100명 제한이 있는데, 어제는 오전 8시쯤 왔더니 50번째로 밥을 먹을 수 있었다”며 “대기 시간이 길다 보니 9시 수업 준비가 쉽지 않아 오늘은 줄을 안 서려고 7시 50분에 도착했다”고 했다. 식사를 마친 정씨는 옷을 갈아입으러 기숙사로 돌아갔다.
16일 오전 8시께, 서울 경희대학교 푸른솔문화관 학생식당. 무인 키오스크 앞에는 ‘1000원 아침밥’을 먹으려는 학생 수십명이 긴 줄을 이뤘다. 메뉴는 닭곰탕 정식. 과 잠바, 청바지 등 수업 준비를 이미 마치고 나온 학생들 사이로 모자를 푹 눌러쓰거나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부스스하게 나온 학생들도 있었다. 한 학생은 대기 줄에서 우연히 마주친 친구에게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경희대는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농정원)과 함께 지난 13일부터 1000원짜리 아침밥을 하루 100인분씩 판매하고 있다. 경희대뿐만 아니라 서울대, 성균관대, 서울시립대, 고려대, 인천대, 한국공학대 등 총 41개 대학교도 ‘1000원 아침밥’ 사업을 농정원과 시작했다. 농정원에 따르면 1000원 아침밥 사업은 원래 학식 가격에서 학생들이 1000원을 내면 농정원에서 1000원을 지원, 나머지 금액은 학교에서 부담하는 사업이다.
학생들은 고물가에 아침이라도 저렴한 가격에 먹기 위해 학생 식당을 찾았다고 했다. 학교 인근에서 자취 중인 서모씨(24·경영학과)는 “물가가 비싸 원래 집에서 밥을 해 먹었는데, 1000원에 저렴하게 밥을 사 먹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권효빈씨(20·조리푸드디자인학과)는 “통학인데도 식비를 줄이려고 식당을 찾았다”며 “1000원인데도 국도 뜨끈뜨끈하고 맛이 좋다”고 말했다. 8시 20분이 되자 식당 전체가 학생들로 가득했다.
1000원 아침밥에 학생들이 몰리는 건 물가가 가파르게 올라서이다. 경희대 앞의 한 식당은 뼈해장국 가격을 지난해보다 1000원 올린 9000원에 판매하고 있다. 근처 다른 식당의 보쌈 정식 가격 역시 작년보다 1000원 오른 9000원이다. 대학생들은 한 끼에 1만원에 육박하는 식비는 감당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통학하다가 기숙사에 살게 된 강혜수씨(23·경영학과)는 “외식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니까 이전보다 식비로 2배 정도가 나간다”며 “최근에는 친구들과 밥 약속을 안 잡고 햇반을 사서 먹거나 학식으로 때운다”고 말했다. 정씨는 학식으로 받은 닭곰탕 일부를 포장해 기숙사로 돌아갔다. 정씨는 “학식이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국 같은 경우 많이 남으니까 포장해서 점심 저녁으로 즉석밥과 함께 먹기도 한다”고 전했다.
오전 8시42분. 1000원 아침밥 개시 30여분 만에 100그릇이 완판됐다. 한발 늦게 도착한 내몽골 유학생 나리길씨(27·스마트관광학 박사 과정)는 “아직 못 나온 기숙사 룸메이트에게 품절됐다고 메시지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어제도 먹지 못해 오늘은 5분 빨리 나온 건데, 내일은 꼭 먹겠다”고 말했다. 나리길씨는 빵을 사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원래 가격인 4000원을 내고 아침밥을 사 먹었다.
경희대 측은 예상보다 학생들이 많이 몰리자 배식량을 늘려야 할지 고민 중이다. 경희대 관계자는 “1000원 아침밥 전에는 이 학생식당에서 조식 40~50인분이 나갔다”며 “요즘엔 120명 이상이 아침밥을 먹으러 찾아와 식수 인원을 늘릴지 검토 중”이라며 “외부인은 제한하고 경희대 재학생에게만 1000원 식권을 판매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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