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 직원들이 해외출장 후 작성하는 보고서를 수년째 베껴 쓴 것으로 파악됐다. 과거 제출했던 보고서를 표현만 조금 바꿔 쓰거나, 아예 그대로 옮겨 놓은 부분도 있었다. 출장 목적은 6년째 똑같아서 불필요한 곳에 세금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14일 아시아경제가 공정위의 ‘2022년 선진 상생협력 사례연구를 위한 해외출장 결과보고’ 문서를 살펴보니 기존 보고서와 문구와 표현이 유사하거나 완전히 일치하는 부분이 다수 발견됐다. 보고서는 지난해 12월 7일부터 6박 8일간 공정위 기업거래정책국 직원 4명이 1741만원을 들여 독일과 프랑스를 다녀온 뒤 작성됐다.
보고서의 출장목적에는 ‘우리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대·중소기업이 함께 경쟁력을 강화시켜나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대·중소기업 간 거래관행을 개선하고 협력을 강화해나갈 필요’ 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문장은 2019년, 2017년, 2016년 공정위 직원들이 각기 다른 나라를 다녀온 뒤 쓴 보고서에도 똑같이 등장한다. 7년 전에 쓰인 출장목적을 지난해까지 반복해 쓰고 있는 셈이다.
공정위의 정책추진 현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대·중소기업간 불공정 관행을 해소하고 보다 강화된 협력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공정거래협약 제도, 표준하도급계약서 제·개정 등의 정책을 추진’ 중이라는 설명이 담겼다. 해당 문장 역시 2019년과 완전히 동일하다. 출장국 방문이유의 경우 ‘해외 상생협력 사례, 중소기업 지원 정책 및 그에 따른 시사점을 연구하여 정책의 효과성을 제고할 필요’라는 문장을 가져와 ‘시사점을 연구, 정책의 효과성을 제고’로만 바꿔 썼다.
과거 보고서도 유사·동일표현 많아…공정위 “개선점 반영”
정책적 시사점에서도 완전히 일치하는 문구가 발견됐다. 공정위 직원들은 출장 후 ‘공정거래협약 이행평가에서 ‘협력사 매출확대 도모 실적 항목을 보다 내실 있게 평가’하자고 제안했다. 하도급 문제의 해결법으로 내놓은 방안인데 2019년 미국을 다녀와 쓴 보고서에도 같은 제안이 있다.
같은 표현을 말만 조금씩 바꿔 쓴 정황도 있었다. ‘수직적 전속거래구조가 근본적인 원인’은 ‘수직적 전속거래구조에 기인’으로, ‘자생력을 제고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는 ‘자생력을 높이는 것이 중요’로 쓰는 식이다. ‘대기업의 협력사 판로 확대 지원 노력 촉진’은 ‘중소기업의 판로 확대 지원 노력 추진’으로 바꿨다.
이같은 보고서 작성 관행은 과거 출장부터 존재했다. 2017년 보고서에서 출장자들이 ‘경쟁력 강화에 기여한 경우에 대해 이를 효율성 증대 실적으로 인정’이라는 방안은 2016년 보고서의 ‘매출이 신장된 경우 이를 효율성 증대 정도 실적으로 인정’ 그대로 쓴 것이다. ‘적극적으로 노력할 유인을 제공하고’, ‘노력이 확산될 수 있도록 유도’ 등과 같은 표현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공무국외출장 후 결과보고서가 충실히 작성될 수 있도록 별도 지침을 마련해 출장결과와 활동내역, 시사점 등을 상세히 쓰도록 지시하고 있다. 보고시스템에도 표절여부 및 내용·서식 등 충실성을 점검하여 등록하게 돼 있다.
하지만 출장 보고서 표절 논란은 되풀이되고 있다. 2019년에도 경북 구미시의회가 해외연수를 다녀온 후 2018년 보고서를 상당 부분 베껴 제출해 논란이 일었다.
공정위 측은 “바쁘게 쓰다 보니 내용을 충실하게 하기 어려웠다”며 “개선할 점이 있으면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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