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로 출연한 TV 시리즈로 에미상 수상
결혼 6개월 만에 부인이 차에서 총 맞아 숨져
‘양육권 때문에 살해’ 혐의 형사사건은 무죄…민사 패소로 파산
(서울=연합뉴스) 김동호 기자 = 결혼 6개월 만에 아내를 살해했다는 의혹을 받으며 송사에 휘말렸던 미국의 유명 배우 로버트 블레이크가 89세로 사망했다고 AP 통신이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블레이크의 유족은 심장병을 앓던 그가 지난 9일 로스앤젤레스(LA)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성명을 통해 밝혔다.
1933년 미국 뉴저지에서 이탈리아계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블레이크의 원래 이름은 마이클 제임스 구비토시였다.
LA로 이주한 후 아역으로 ‘아워 갱’ 등 영화에 캐스팅되며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로버트 블레이크로 개명한 것도 이때다.
1960∼70년대 영화 ‘인 콜드 블러드’, TV수사극 ‘바레타’ 등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고, 1975년에는 바레타에서 맡은 형사 연기로 에미상까지 수상했다.
당시 “수감생활을 감당할 수 없으면, 범죄를 저지르지 마”(Don’t do the crime if you can’t do the time)라는 명대사가 유행이었다.
1993년에는 자신의 아내와 세 아이를 살해하는 기독교인으로 출연한 드라마 ‘존 리스트 스토리’로 다시 에미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몇년 후 그는 아내 보니 리 베이클리가 의문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1961년 배우 손드라 커와 결혼했다가 1983년 이혼한 블레이크는 1999년 재즈 클럽에서 베이클리를 만났고, 이듬해 둘 사이에 딸 로지가 태어나며 결혼으로 이어졌다.
베이클리는 처음엔 로지의 친부가 다른 이인 줄 알았지만 유전자 검사를 통해 블레이크가 아빠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블레이크도 로지에게 큰 애정을 쏟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결혼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2001년 5월 4일 LA 스튜디오 시티 지역의 한 식당 인근 주차장에 세워진 차 안에서 베이클리(당시 44세)가 머리에 총을 맞은 채 발견됐다.
블레이크가 베이클리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으나 베이클리는 병원에서 숨졌다.
그 직전 블레이크 부부가 해당 식당에서 식사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블레이크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사건 발생 전 베이클리의 임신 사실을 들은 블레이크가 화를 내며 낙태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블레이크는 더욱 궁지에 몰렸다.
이에 블레이크는 오히려 베이클리가 가명을 쓰며 자신의 포르노 사진을 팔아 남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낸 적도 있다는 등 평소 아내의 문란한 행실을 문제 삼으며 항변했다. 실제 베이클리가 블레이크와 결혼식을 올릴 때도 사기죄로 복역하던 중 가석방돼 전자팔찌를 찬 상태였다고 한다.
블레이크는 결국 이듬해 살인 및 살인청부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그가 아이의 단독 양육권을 얻으려 살해 계획을 꾸몄다고 봤다.
하지만 블레이크는 법정에서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고, 2005년 3월 배심원단이 무죄로 평결하며 ‘누명’이 벗어지는 듯했다.
그러나 ‘제2의 O.J. 심슨 재판’이라는 비판 여론이 형성됐고, 베이클리의 네 자녀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2005년 11월 살인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3천만달러(약 397억원)를 배상하게 됐다.
블레이크는 항소했지만 2008년 2심 법원은 배상액을 절반으로 줄였을 뿐, 유죄 판단은 그대로 유지했다.
이미 변호사 비용 등으로 수백만달러를 써야 했던 블레이크는 결국 파산했다. 로지는 다른 친척의 손에 키워졌고, 블레이크는 2019년 어색한 재회를 할 때까지 딸을 한동안 보지 못했다.
2006년 AP 인터뷰에서 “최고의 연기를 하고 싶다”, “로지에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유산을 남겨주고 싶다”며 의지를 보였으나, 재기하지 못한 채 연금에 기대 생활하다 결국 세상을 떴다.
d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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