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다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 (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 도착해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주먹 인사를 하고 있다. (C) AFP=뉴스1 |
2022년 10월 22일 사우디아라비아는 OPEC+(사우디, 베네수엘라, 쿠웨이트 등의 기존 석유수출국기구 회원 13국에 더해 러시아를 비롯한 비회원 11개국이 참여하는 산유국 회의 –편집자주)가 하루 석유 생산량을 200만 배럴 감축한다고 발표했다. 세계 최대의 석유수출국인 사우디는 늘 OPEC의 세계 석유시장 관리를 주도했다. 이 조치는 국제 유가에 즉각 (그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영향을 미쳤다. 발표 전까지 배럴당 76달러로 연중 최저 수준이던 게 11월 중순에는 82~91달러를 오가게 됐다. 미국이 받은 충격은 경제적이라기 보다는 지정학적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에 감산 조치를 늦춰 달라고 요청했는데 사우디는 이를 무시하고 감산을 강행한 것이다.
이로 인해 미국과 사우디 사이에 비난이 오갔고 양국 관계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OPEC+의 결정에 대해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평가할 것이며 이번 감산 조치가 “러시아의 돈벌이를 도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대응으로 내린) 러시아 제재의 효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뉴저지주 민주당 상원의원인 로버트 메넨데즈는 미국산 무기를 사우디에 수출하지 못하게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몇몇 의원은 사우디에서 미군을 철수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사우디도 물러서지 않았다. OPEC+의 결정은 만장일치로 이뤄졌으며 “순전히 경제적 이유에 따른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이후 몇 달이 지나자 양쪽 모두 흥분이 가라앉았다. 바이든 행정부가 거론한 ‘사우디와의 관계 재평가’가 중대한 변화로 이어질 성싶지는 않다. 미국-사우디 관계는 더 심각한 위기도 견뎌낸 바 있다. 2022년 11월, 바이든 행정부는 사우디 요원에게 암살당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의 약혼녀가 사우디 왕세자 무함마드 빈 살만(흔히 ‘MBS’라는 약칭으로 불린다)을 미국 법원에 고소했을 때 MBS가 사우디 수상을 겸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그에게 주권면제(주권국가에 대한 타국 법원의 관할권을 배제함으로써 국제문제를 예방하는 조치 –역주)를 부여했다. 미국-사우디 관계가 파국을 향하고 있진 않다는 여러 신호중 하나다. 그러나 OPEC+ 소동과 그 이후 상황은 양국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시사한다. 양국관계가 시작된 20세기 중반 이래 처음으로 사우디가 국가 대전략 차원에서 미국과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된 것이다.
미국-사우디 관계를 분석하는 전문가는 국가를 대표하는 개인과 그들의 관심사항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MBS는 고집불통의 권위주의자로, 사우디의 경제를 혁신하고 세계 무대에서 사우디를 독립적인 플레이어로 키우려 한다. 반면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보다 조심스러운 스타일로, 민주주의를 자기 외교정책의 중심에 놓는 한편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 전 세계를 규합하려고 한다. 둘의 성격과 목표의 차이는 분명 양국 관계에 중요하다. 그러나 카를 마르크스가 명민했던 시절의 표현을 빌리자면, 개인이 역사를 만들지만 꼭 그들이 선택한 방식으로 역사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OPEC+ 논란은 양국 관계에 나타난 세 가지 중요한 변화를 가리킨다. 이는 단순히 지도자의 성격 이상의 것이며 지도자의 행동이나 그에 대한 반응 같은 것보다 더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변화다.
첫째, 글로벌 세력균형 판도가 바뀌었다. 국제질서가 다극화되면서 미국의 상대적 영향력은 약해졌다.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중견국이 단 하나의 강대국에 ‘올인’할 가능성은 낮아졌고 여러 강대국에 ‘분산투자’를 시도할 가능성은 높아졌다. 둘째, 기후변화가 전 세계의 화석연료 탈피를 재촉하는 상황에서 사우디는 더 늦기 전에 자국의 원유 매장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있다. 사우디의 석유 생산과 가격 책정에서 이런 압박감의 영향을 볼 수 있다. 셋째, 미국 정치에서 중요한 사안이 으레 그렇듯 미국-사우디 관계 역시 미국의 양대 정당 사이에서 정당의 노선에 따라 양극화가 심각해졌다. 여기에는 사우디 스스로가 공화당 선호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수십 년 동안 미국-사우디 관계를 규정해 온 국가 대전략의 일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좁은 범위에서 지역적, 경제적 사안을 두고는 여전히 충분한 협력이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두 나라 모두 이러한 변화를 이해하고 상대에게 보다 현실적인 기대를 가져야 한다.
냉온탕을 번갈아온 관계
사우디아라비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게 중요한 나라가 되었다. 그 전쟁에서 석유확보야말로 현대 군사전략과 경제발전에서 중차대함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 뒤로 세계는 글로벌 파워 배분의 3단계를 겪었다. 첫 단계인 냉전기 동안, 사우디에게는 미국의 지정학적 목표를 따르는 것 외에 선택지가 거의 없었다. 아무튼 사우디는 그 역내 라이벌들을 지원하고 사우디의 보수 이슬람 체제와는 상극인 혁명적 공산주의 이념을 내세우는 소련에 안보,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순 없었다. 또한, 당시 사우디의 석유생산 관련 결정권은 1950년대와 60년대에 그 석유산업을 일군 미국 석유회사들의 손에 있었다. 사우디는 석유 문제로 소련과 협상할 의사가 있었을지는 몰라도 그럴 힘은 없었다.
사우디와 미국은 이념적으로 봐도 묘한 커플이었다. 공동의 적의 존재와 상호보완적인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그들은 자동적으로 파트너가 되었다. 공동의 이익이 공동의 가치를 대신했다. 한 가지 예외는 중동전쟁에 대한 그들의 입장이었다. 그 사안에 대해 그들이 입장을 달리함으로써 양국관계는 사상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1973년에서 1974년 사이, 사우디와 다른 5개 아랍 국가들은 미국이 욤키푸르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지원하자 일시적으로 석유생산을 줄이고 미국으로의 석유 수출을 차단하는 석유 금수 조치를 취했다. 이 사태는 사재기로 이어졌고, 유가는 네 배나 치솟았으며, 석유시장에서의 세력관계를 크게 바꿔 놓았다. 이제는 사우디 같은 석유생산국들이 칼자루를 쥐었다. 사우디 석유산업을 움직여온 미국 기업들은 을의 위치로 떨어져 사우디 정부의 집사 신세가 되었다.
사우디의 정책은 미국 경제에 직격탄을 날렸고, 미국 정부는 군사 개입을 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위기는 미국의 외교력으로 전쟁이 끝나고 1979년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빠르게 진정되었다. 중동에서 소련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것을 포함해 냉전기 동안 미국과 사우디가 공통 전략 목표를 가졌다는 사실은 두 정부 사이의 앙금 해소에 도움이 되었다. 이후 미국 정책결정자들에게 석유가 어느 때보다 중요한 사안이 되면서, 사우디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점점 더 중요한 초당적 목표가 되었다. 1980년대에는 협력이 더욱 확대되었다. 두 나라는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맞서 아프간인과 그 외의 현지 저항세력을 돕는 데 어깨를 맞댔다. 그런 협력은 1990년에서 91년까지의 걸프전에서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는 냉전의 종식과 때를 같이 했고, 양국의 우호관계가 서로에게 유익하다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줬다.
제2단계는 미국 일극체제의 시대로, 소련의 붕괴에서 2010년대 어디쯤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미국은 강대국과 손잡으려는 사우디 같은 나라들에게 유일한 선택이었다. 이 시기에 또 하나의 대위기가 발생했다. 그것은 9.11테러였는데, 사우디의 가장 부유한 가문 중 하나의 핏줄인 오사마 빈 라덴이 계획하고, 사우디 출신 15명(총 19명의 비행기 납치범들 중)이 저지른 사건이었다. 그러나 알카에다가 미국만이 아니라 사우디 왕가도 노렸으므로, 두 나라는 다시 한번 서로를 엮어줄 공동의 적을 찾았다. 이후의 “대테러 전쟁”에서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긴밀한 정보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미국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동맹자였고, 사우디는 비록 미국의 행동이 현명한지에 대해 공공연히 의심을 표명하기도 했지만(특히 2003년의 이라크 전쟁 때) 꾸준히 미국의 행동을 지원했다.
냉전 종식과 팍스 아메리카나의 태동은 상대적으로 급작스러웠고, 일련의 극적인 사건들에 따른 결과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일극체제의 종말은 서서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2020년 무렵엔, 그간 미국이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서 여러 자산과 신뢰성을 허비한 사실, 미국 국내정치의 기능부전과 진영대립의 심화, 중국의 부상, 러시아의 초강대국 복귀 시도 등이 한데 합쳐지면서 새로운 글로벌 세력균형이 나타나게 되었다. 하지만, 앞서 두 시기와 달리 이번에는 공동의 적이 미국과 사우디를 묶어주지 않았다. 바이든 행정부는 러시아와 중국에 맞서 세계를 규합하려 한다. 그러나 사우디는 이 강대국 중 어느 쪽도 적이라 보지 않는다. 지금 중국은 사우디 석유의 최대 수입국이자 최대 무역 상대국이다. 사우디와 중국의 무역은 1990년 5억 달러 미만이던 것이 2021년에는 870억 달러까지 늘었다. 같은 해에 사우디가 중국에 수출한 품목(거의 대부분 원유와 석유제품)의 총액은 미국에 수출한 품목 총액의 3배를 넘으며, 사우디의 수출대상국 2, 3위인 인도와 일본의 경우와 비교해도 거의 2배다. 러시아는 세계 석유 시장을 관리하는 일에서 사우디에 꼭 필요한(때로는 껄끄러울 때도 있지만) 파트너다. OPEC+ 국가들은 매일 약 4천만 배럴의 석유를 생산한다. 사우디와 러시아의 생산량을 합치면 그 절반을 좀 넘는다. 러시아와 사우디가 한 편이 되어야만 OPEC+의 결정이 세계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모든 이유에서, 사우디 지도자들이 글로벌 지정학의 구도를 살폈을 때, 그들은 미국 지도자들이 보는 것과는 크게 다른 그림을 보게 된다. 사우디가 미국을 충실히 지지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던 워싱턴의 엘리트들은 이런 새로운 현실에 충격을 받으며, 따라서 일부 정치인들은 OPEC+의 결정에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런 반응은 중간선거로 가는 길에 유가 문제가 걸림돌로 나타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우디와 미국은 과거에도 유가를 두고 이견을 보인 적이 많다. 이번의 경우가 이전과 다른 점은 지정학적 맥락이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세계질서의 미래를 결정할 변곡점이 되리라고 규정한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다. 사우디에게, 그리고 인도와 이스라엘을 포함하는 다른 많은 나라들에게, 이 전쟁은 단순한 지역전이다.
한편 사우디 역시 그 나름의 불만이 있다. 지난 세 명의 미국 대통령들은 미국이 중동에서 시간과 노력을 덜 쓰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고 당선되었다. 이는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예멘 등에서 영향력을 넓히고 있는 이란을 중대한 역내 위협으로 여기는 사우디로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다. 지난 70년 동안 미국이 페르시아만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일은 석유의 원활한 흐름을 유지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란이 2019년 9월에 사우디 석유시설에 미사일 한 발과 드론 공격을 가했을 때(이는 1991년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 유전을 불태운 이래 ‘석유의 원활한 흐름’에 대한 최대의 공격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사우디와의 친밀함을 한껏 과시해 놓고서도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 왕국은 더 이상 미국의 자동적인 파트너가 아니다. 옛날의 편안했던 전략 관계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양국의 국내정치가 계속 시빗거리를 만들더라도 보다 제한된 협력이라면 가능하다.
(제다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16일(현지시간) 제다에서 열린 걸프협력회의(GCC)+3 정상회의에 참석을 하고 있다. (C) AFP=뉴스1 |
물과 기름
사우디는 항상 미국 대통령들이 원하지 않는 높은 유가를 선호하지만, 이 나라는 공급을 늘리고 시장에 더 많은 석유를 풀어달라는 미국 정부의 요청에 때때로 (보통 미국 선거를 앞두고) 응해왔다. 그러나 2022년 10월에는 워싱턴의 그런 요청이 묵살되었다.
사우디는 석유 시대가 끝나기 전에 돈을 벌어들일 마지막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야만 한다. 그것이 왕세자가 야심적인 ?비전 2030?에서 경제 혁신 계획을 내놓으며, 기후변화의 압력과 대체 연료를 찾으려는 움직임, 그 밖의 기술 변화를 앞두고 사우디 경제를 더 다변화하겠다고 한 구상의 전제가 된다. 이 혁신의 완성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이다. 빈살만 왕세자는 사우디 경제의 비석유 부문에 투자할 자금, 그리고 꼭 필요하지만 고통스러운 개혁들, 가령 공공요금(전기, 수도 등)에 주어지던 막대한 보조금을 감축하는 일이나 소비재에 15퍼센트의 부가가치세를 도입하는 일이 가져올 고통을 국민들에게 덜어주는 모든 수단을 확보해야만 한다.
그것이 사우디의 석유 정책이 MBS의 야심적 계획에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만큼, 그러면서도 국제 수요가 붕괴되지 않을 만큼 유가를 유지하도록 하고 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 필요한 일들이 미국의 선거 일정과 늘 부합하지는 않기 마련이다. 미국의 대전략과 사우디의 외교 정책의 접점이 엷어지면서, 사우디 정부는 석유와 관련해 미국 대통령들이 선거에서 재미를 보도록 돕는 일에 전만큼 호의적이지 않다.
양국관계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온 사우디 쪽 사정이 정치경제적인 것인 반면, 미국의 변화 이유는 진영정치에 있다. 미국-사우디 관계는 다른 많은 쟁점들처럼 미국 정치의 심각한 진영논리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과거에는 사우디와의 우호 관계가 일반 대중에게서는 거의 지지 받지 못하더라도 백악관에서는 그 주인이 누가 됐든 이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트럼프는 사우디에 대한, 특히 MBS에 대한 애정을 한껏 과시했다. 그는 예상을 깨고 임기중 처음 방문하는 외국의 수도를 리야드로 정했다. 그는 이 나라와의 무기 거래액을 과장을 섞어 자랑했다. 위험천만하게도 트럼프는 MBS가 자기 사촌이자 이전에 미 정부와 주로 소통해오던 무함마드 빈 나예프와의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고 2017년에 그를 실각시킨 과정에서 트럼프 자신이 MBS를 지지했다는 암시를 공공연히 하기도 했다. 일찍이 미국 대통령은 심지어 간접적이라도 외국의 궁정정치에 공개적으로 개입한 적이 없었다. 트럼프는 MBS가 카슈끄지 암살에 연루되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얼버무렸는데, 왕세자의 지시로 그 범죄가 자행되었다는 상당한 증거 앞에서도 그랬다(“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해 왕세자께서 아셨을지도 모르죠. 어쩌면 알고 있었을 수도 있고,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트럼프는 말했다). 트럼프의 사위이자 선임 보좌관인 재러드 쿠슈너는 정규 외교채널 밖에서 왕세자와 직접적인 유대관계를 맺었다. 쿠슈너와 트럼프의 재무장관이던 스티븐 므누신은 퇴임 후 그들의 사모펀드에 사우디 국부펀드의 거액 투자를 받았다. 그리고 지난 11월, 트럼프 소유 기업은 사우디의 대형 부동산회사가 오만에 세운 수십억 달러의 호화 주거-골프 복합단지에 트럼프의 이름을 빌려주고 로열티를 받기로 했다.
민주당 외교팀은 사우디가 이미 진영을 정했다고 보았고, 그에 따라 자신들의 입장도 정했다. 민주당은 카슈끄지 암살과 예멘 내전에 대한 사우디의 개입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2020년 민주당 대선후보 지명전에서, 바이든은 사우디아라비아를 “왕따 국가(pariah state: 미국은 북한 등 적성국가를 두고 이런 표현을 사용하곤 하지만 사우디처럼 오랜 우방국가에 대해 사용하는 일은 매우 이례적이다-역자주)”로 지칭했다. 이는 앞서 미국 부통령이자 상원의원으로서 수십 년 동안 사우디와 상대했고, 항상 민주당 내 외교정책의 좋은 교과서 같은 존재로 여겨져왔던 사람이 한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거친 표현이었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한 뒤 대통령선거 유세중 표시한 사우디에 대한 경멸을 실제 정책에 옮겼다. 바이든은 왕세자의 접견을 거부했고, 그에게 카슈끄지 암살의 책임이 있다는 중앙정보국(CIA)의 보고서를 공개했다. 미국 정부는 예멘에서 군사작전 중이던 사우디에 대한 지원을 제한했으며 사우디에 배치했던 패트리어트 대공 미사일을 철수시켰다. 이 때는 사우디가 예멘의 후티 반군(예멘의 시아파 무장 단체. 2004년 이래의 예멘 내전을 일으켰으며 이란의 지원을 받고 있다-역자주)으로부터 미사일 공격을 받고 있던 때였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 발발과 곧 이은 유가 급등은 바이든 행정부의 입장 재검토를 불러왔다. 사우디를 고립시키는 것이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세계 석유 수요가 감소되었을 때는 가능했다. 그러나 세계경제와 석유 수요가 회복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미국이 러시아의 석유 수출을 제한하려 하게 되자, 미국 정부는 다시 사우디가 필요해졌다. 사우디는 즉시로 더 많은 석유를 퍼올릴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이든의 사우디 방문은 얻은 것은 별로 없이 악감정만 더 많아진 채로 끝났다. 사우디측은 바이든이 왕세자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라 걸프협력회의 국가들과의 다자회담에 참석하러 온 것이라는 미국측 발표에 대해 분노했다. 양측은 바이든이 MBS와의 사적 대화 가운데 카슈끄지 문제를 거론했는지 여부를 놓고 공식적으로 설전을 벌였다. 바이든은 자신이 분명히 거론했다고 말했고, 사우디 측은 바이든이 거론하지 않았다고 맞받았다. 관계를 복원하려 만났던 것이 오히려 상태를 악화시켰다.
바이든은 사우디와의 관계를 서툴게 가져가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의 잘못도 없지 않다. 물론 카슈끄지 암살은 용서받지 못할 범죄다. 그리고 사우디는 트럼프와의 친분을 너무 공공연히 과시했는데, 그의 집권을 요란하게 축하하는가 하면 2020년 실권한 뒤에도 그와 그의 가족 사업에 참여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왔다. 실제로 2019년에 이란이 사우디의 석유시설을 공격했을 때, 트럼프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우디 집권층은 미국 민주당에는 기대할 게 없으며 공화당이 재집권하기만 기다려야 한다고 작정한 듯 보인다. 중간선거 이후 사우디가 OPEC+ 감산 결정을 늦춰달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요청을 다시 한번 거부했을 때, 그것은 사우디 정부가 민주당에 어떤 도움도 줄 생각이 없다는 심증을 굳혔다. 미국의 특정 외국과의 관계가 한 정당에 의해서만 유지될 수는 없는일인데 이러한 진영정치가 미국-사우디 관계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겸 총리와 회담을 마친 후 단독 환담을 나누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2022.11.17/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외양간 고치기
미국의 외교정책이 인권을 중시하고 화석연료를 기피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이라면, 미국-사우디 관계의 퇴조는 전혀 문제로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출범 시작때는 기꺼이 사우디와 거리를 두었던 바이든 행정부라 해도 세계 최대 석유수출국과 협력관계를 설정할 필요성을 곧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아무리 청정에너지에 열의가 있더라도, 석유는 그 방향으로 가는 전환과정 동안에는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중동에서 발을 빼고 싶더라도, 미국 정부로서는 발길을 붙드는 지정학적 할 일들을 이 지역에 가지고 있다. 즉 이란의 핵무장을 막고, 성전을 표방한 테러 활동이 다시 득세하지 못하게 하며, 유럽에 대한 난민 압박을 줄이기 위해 이 지역의 안정을 유지하며,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일 등등이다. 석유와 중동지역이 미국 국익에 조금이라도 중요성을 띠는 한, 사우디와의 협력관계 유지는 필수적이다.
그런 관계 유지의 첫걸음은 그 관계의 변화를 인식하는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대전략 사안마다 자동으로 미국 편에 섰던 시절은 지났다. 지금 사우디에게 중국과 러시아는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그것은 사우디가 글로벌 차원에서 미국과 적대하리라는 뜻은 아니다. 단지 사우디가 사안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접근하리라는 뜻이다. 그것은 미국이 개방적이고 조언자 같은 태도를 취하며, 글로벌 사안에서 양국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설득할 대화채널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뜻이다. 사우디를 멀리하는 것은 사우디를 미국 편으로 이끄는 방법이 못 된다.
중동지역의 중요한 사안들에서 미국과 사우디는 이해관계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종래 양국관계의 걸림돌이던 미국-이스라엘 관계는 더 이상 방해물이 되지 않고 있는데, 사우디-이스라엘이 서로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아직 이른바 ‘아브라함 협정(2020년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가 맺은 협정. 시아파-이란의 압박을 우려한 아랍에미리트가 전통적으로 아랍의 적인 이스라엘과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결정한 산물로, 비슷한 처지인 바레인도 뒤따라 가입했다. 유대인과 아랍인의 공동 조상이라는 아브라함의 이름을 땄다 –역주)’을 맺고 바레인, 모로코, 수단, 아랍에미리트의 뒤를 따라 이스라엘과의 관계를 정상화할 준비는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협력하려는 뜻은 점점 키워가고 있다.
사우디와의 긴장을 조성하는 또 다른 이슈는 지금은 갑자기 수그러든 모습인데, 미국이 외교적 교섭을 통해 이란의 핵개발을 억제하려 했을 때 불거진 문제이다. 당시 사우디는 미국이 이란에 여러가지를 양보하고 이것이 이란의 역내 영향력을 굳힐 것을 우려했던 것이다. 2018년에 트럼프가 전격 탈퇴한 이란 핵합의를 되살리려는 그 어떤 노력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에 미국은 이란의 핵보유를 억제 또는 예방하면서 그 지역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을 제한 또는 봉쇄할 새로운 정책을 모색해야만 하게 되었다. 사우디의 이해관계도 이와 일치한다.
비록 오늘날은 테러 문제가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꼽히지 않지만, 미국은 알카에다나 이슬람국가(ISIS) 등의 집단에서 나타나는 폭력적인 이슬람 극단주의 혁명 사상 살라피 지하디즘(Salafi jihadism)의 재부상을 예방해야 한다는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MBS 치하에서,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 지역의 그런 집단에 맞서왔을 뿐만 아니라 자국 내 살라피 교단의 영향력을 감소시켰다. 사우디가 보다 관용적이고 개방적인 이슬람 해석을 후원할 때, 살라피 지하디즘의 매력은 반감될 것이다.
국제 유가에 대한 이견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아직 중요한 쪽에서 일치하고 있다. 그들 모두 미국 달러화의 지배체제를 유지하는 게 이익인 것이다. 사우디는 석유를 달러로 판매하고 있고, 따라서 석유 소비국들이 필요한 에너지를 구입하려면 달러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므로 달러의 세계 기축통화로서의 위상을 뒷받침해준다.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같은 미국에 비우호적인 산유국들은 가끔 다른 통화로 석유 거래를 추진한다. 사우디는 매번 그런 거래 제안을 거부했는데, 달러 중심체제에 금이 가는 만큼 사우디가 보유하고 있는 달러 표시 자산들의 가치가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 시장의 사우디 금융자산(대량의 미국 국채와 미국 기업들에 투입한 투자 등)의 막대한 규모를 생각할 때, 심각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미국과 사우디는 군사 및 정보 사안에 대해 계속해서 협력해 나갈 공동 이해관계가 있다. 사우디의 경우, 중국도 러시아도 미국이 제공할 만한 수준의 안보 협력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1990~91년의 걸프전에서 나타난 것처럼, 오직 미국만이 페르시아만 지역에 막강한 군사력을 투사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 역시 그런 협력에서 이익을 볼 수 있다. 사우디의 무기 구입은 미국 무기 생산의 단위당 비용을 줄여주며, 두 나라의 군대를 연계시킨다. 그리하여 장기적 협력관계를 양성한다. 이란과의 핵협상이 실패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미국과 이란의 대립 가능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군사적 우발사태에 있어서 사우디와의 협력은 이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효율성을 높일 것이며, 따라서 그 자체가 이란에 대한 억제력이 된다.
글로벌 세력균형 판도를 뒤집거나, 사우디가 석유에서 빨리 자금을 뽑아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줄여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그러나 미국과 사우디 양국은 각자가 상대방의 국내정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다면 양국 관계를 다시 강화시킬 수 있다. 사우디는 미국의 양당 중 하나는 자국을 적대하며 다른 하나는 자국과 한 편이라는 스스로에 해가 되는 생각을 버려야만 한다. 한쪽 당을 돕기 위해 미국 정치에 영향을 주려는 노력은 양당체제라는 구도가 있는 한 장기적으론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의 야당이 언젠가는 여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미국 민주당 수뇌부에게 사우디 정부가 공화당만이 아니라 미국 자체와 좋은 관계를 추구하려 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그것은 일단 2024년의 정권복귀를 도와달라는(간접적인 자금지원이나 바이든 행정부를 약화시키는 정책적 행보를 통해서) 트럼프측의 요청을 외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는 또한 사우디가 자국을 비판하는 워싱턴의 민주당 사람들과 대화할 필요성도 제기한다. 이 민주당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우디가 미국 국내정치에 개입할지 모른다는 그들의 우려는 불식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은 MBS가 십중팔구 사우디의 다음 왕이 될 것이며 앞으로 오래 통치하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를 고립시키거나 그를 제거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이는 인권옹호자들의 입맛에는 맞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 외교관들과 관리들이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주석,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대표나 그 밖에 자국민이나 여타 사람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정부들의 대표들과 교섭할 수 있다면, MBS를 상대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실 새로운 글로벌 구도에서 미국은 사우디와 더 많이 만나야 하며, 이 왕국이 여러 사안에서 미국의 시각에 동조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앤터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사우디를 단 한 번, 2022년 7월 바이든의 사우디 순방 수행차 방문했을 뿐이다. 미국-사우디의 전략 회담은 2년 동안 열리지 못하고 있다. 사우디는 이런 일들을 지켜보고 있다.
미국과 사우디 사이의 지속적 협력을 이루는 요소들은 아직 건재하다. 그러나 두 나라는 각자의 비현실적인 꿈, 즉 상대방의 국내정치 판도를 뒤바꾸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망상을 접어야만 한다. 양측 모두 서로를 있는 그대로, 즉 각자의 바람대로가 아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거래에 나서는 방법을 익혀야 한다.
F. 그레고리 고즈 3세는 텍사스A&M대학교 부시스쿨의 국제관계학 교수이며 저서로 <페르시아 걸프의 국제관계>, <석유 왕정: 아랍 걸프 국가의 대내적, 안보적 난관> 등이 있다.
역자 함규진은 서울교육대학교 교수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고 저서로 <조약으로 보는 세계사 강의>, <개와 늑대들의 정치학>, <세계사 평행이론> 등, 역서로 <공정하다는 착각>, <피에 젖은 땅>, <대통령의 결단> 등이 있다.
– 원문: The Kingdom and the Power (Foreign Affairs) ©2023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publisher of Foreign Affairs. All rights reserved. Distributed by Tribune Content Agency, LLC.
– 번역: 함규진, 편집: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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