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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中눈치 안 봤다면 어땠을까”…세계 방역관제탑 WHO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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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이 2020년 3월 11일 코로나19 팬데믹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사진=AFP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이 2020년 3월 11일 코로나19 팬데믹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장에서 안경을 고쳐 쓰고 있다. /사진=AFP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의 한 수산시장에서 시작된 정체를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감염돼 죽어 나가고 있다는 소식이 삽시간에 퍼졌다. 중국 당국이 언론 보도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검열한다고 숨겨질 일이 아니었다. 급기야 2020년 1월에는 인구 1100만명의 우한시 전체가 봉쇄됐다. 그렇게 전 세계를 위기에 빠뜨린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됐다.

중국이 우한시에 빗장을 걸었을 때 유엔 산하 전문기구이자 글로벌 방역 관제탑인 세계보건기구(WHO)가 기민하게 대처했다면 어땠을까. 국제사회가 ‘팬데믹의 덫’에 걸려 3년을 잃어버리는 대참사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실제 WHO 코로나19 독립조사위원회가 발간한 보고서는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하기 직전인 2020년 2월을 ‘잃어버린 한 달’로 표현했다. 그리고 이 같은 반성도 담겨 있다. ‘팬데믹을 막을 수 있었지만 초기 대응이 늦어져 기회를 놓쳤다.’

“이런 WHO를 봤나”…세계는 할 말을 잃었다

전 세계가 역대 최악의 팬데믹을 경험했다. 사진은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내린 승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는 모습. /사진=뉴스1
전 세계가 역대 최악의 팬데믹을 경험했다. 사진은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에서 내린 승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이동하는 모습. /사진=뉴스1

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포한 것은 2020년 3월 11일이다. 이는 1948년 WHO가 설립된 이후 1968년 홍콩독감,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신종플루·A형독감 H1N1)에 이어 세 번째 팬데믹 선포였다. 신종플루 사태 이후 11년 만에 찾아온 위기 상황에 WHO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바이러스 집단감염 사태를 숨기던 중국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WHO에 보고를 한 지 70여일이 지나서야 팬데믹 결정을 내렸다. 이때는 이미 세계 118개국에서 12만명 이상이 감염돼 4300여명이 사망한 뒤였다. 갑작스런 팬데믹에 대처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던 세계 각국이 WHO만 바라보고 있는데 그 어떤 것도 매끄럽지 않았다.

팬데믹 늦장 선포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마스크 착용 여부, 무증상 전파 이유, 부스터샷 효과, 팬데믹 종식 등 같은 사안을 놓고도 입장이 계속 달라졌다. WHO 사무국에는 팬데믹 대응을 경험했거나 선제적으로 판단할 전문가가 부족했다. 2017년 취임 후 처음으로 마주한 팬데믹 대응에 서툰 모습을 보인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의 리더십도 도마에 올랐다.

중국 눈치 볼 수밖에 없었던 WHO의 속사정

“중국의 전염병은 국제적인 비상사태는 아니다”, “중국의 조처에 국제사회가 감사와 존경을 보내야 한다”, “중국 시진핑 주석의 빠른 판단이 바이러스의 해외 확산을 막았다”…. 국제사회가 팬데믹 선포 여부에 촉각을 세우고 있던 2020년 1~2월 WHO 사무총장이 쏟아낸 발언들이다. 이는 WHO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국제기구로서 팬데믹 초기 대응을 해야 할 중요한 시기를 놓쳤다는 비판을 자초한 배경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WHO 지원금 중단 선언을 했을 정도다.

코로나19 기원을 찾는 데 실패한 것은 지금까지도 WHO의 발목을 잡고 있다. 팬데믹 기원 조사팀을 우한에 파견하고도 의미 있는 결과를 내놓지 못해 학계와 의료계의 공분을 샀다. 의기양양해진 중국이 WHO에 코로나19 바이러스의 미국 포틀랜드 육군연구소에서 바이러스가 퍼졌다고 주장하며 미국 기원설을 조사해 달라고 수차례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WHO의 예산 구조를 들여다보면 왜 특정 국가의 입김에 휘둘려 중심을 잡지 못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WHO는 각 회원국이 내는 의무분담금과 자발적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전체 예산의 80%가 자발적인 기부금으로 이뤄지는데 대부분 특정한 용처를 정한 지정기부금이어서 예산 운용 폭이 좁다. 의무분담금 역시 강제력이 없어 특정 국가가 자금 집행을 하지 않아도 손쓸 방법이 없다.

그동안 WHO에 가장 많은 금액을 지원해 온 국가는 미국이었다. 그런데도 코로나19 초기 노골적으로 중국 편들기에 나선 것은 앞으로 10년간 600억위안(약 11조3000억원)을 WHO에 기부하겠다는 중국의 약속 때문이었다는 해석이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020년 4월 WHO를 탈퇴하고 기부금도 끊겠다고 선언�g다./AFP=뉴스1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코로나19 발생 초기인 2020년 4월 WHO를 탈퇴하고 기부금도 끊겠다고 선언�g다./AFP=뉴스1
2020년 1월 2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이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C) AFP=뉴스1
2020년 1월 28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이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C) AFP=뉴스1

‘포스트 코로나’ 시대 WHO의 조건은

3년간의 팬데믹을 겪으며 WHO의 한계가 드러났다. 일각에선 세계 보건 비상사태에 대비할 새 보건기구 창설이 필요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새로운 기구를 만들기보다는 WHO의 조직·예산·인력 등 구조 개편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예산이 부족해 특정 국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힘 없는 리더십 구조를 만들어 놓고 지적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강제력 있는 국제조약을 통해 WHO에 힘을 실어주고 또 다시 찾아올 팬데믹에 철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조언도 있다. 코로나19는 이제 엔데믹으로의 전환을 앞두고 있지만 또 다른 팬데믹이 찾아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WHO 각 회원국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제언도 있다. 차지호 카이스트 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입은 피해액의 10%만 선제적으로 투자했어도 최악의 팬데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세계 각국이 글로벌 보건에 대한 기여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머니투데이
content@www.newsbe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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