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 여자친구를 나란히 봉안당에 모시고 돌아온 뒤 그곳에 한 번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을 묻고 온 상황에 정쟁이 무엇인지 저는 모릅니다. 전 아직도 아들이 어떻게 죽어서 병원에 어떻게 갔는지도 몰라요. 봉안당을 가보지도 못하는 부모의 심정을 왜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왜 우리를 길거리에 내모는 건지…. 사과를 받지도 못했는데 왜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합니까.”
10일 서울 중구에서 열린 ‘10·29 이태원 참사 유가족 협의회 창립선언’ 기자회견에서 희생자 고 김현수씨 어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오열했다. 참사 발생 42일 만에야 제대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게 된 희생자 97명의 유가족 170명은, 이날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유가족협의회 활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유족들은 다른 가족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울었고, 몇몇 유족은 눈물을 흘리다가 실신하거나 쓰러져 자리를 끝까지 지키지 못하기도 했다.
정부가 유족들끼리 만날 수 있도록 지원하지 않으면서, 가족들은 알음알음 모인 끝에 스스로 협의회를 꾸렸다. 유가족협의회 대표를 맡은 고 이지한 배우 아버지 이종철씨는 “오늘 처음 만난 가족들 수만 50여명이다. 40여일간 희생자 유족 연락처를 확보하려고 미친듯이 돌아다녔다. 행정안전부와 서울시 등에 몇 번을 말했지만 ‘정신과 치료 받아라’, ‘상담을 받아라’는 것뿐이었다”며 그간의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씨는 이어 “(행안부는) 저희 의견도 물어보지 않고 중앙재난대책안전본부를 해체했다. 그 뒤 유가족 통합지원센터에 전화하니 유가족과 소통할 계획도 없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온 적도 없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어렵게 만난 유가족을 대상으로 ‘막말’에 가까운 정치인의 발언에 유족들은 분노했다. 이날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유가족협의회 출범에 앞서 페이스북에 “세월호처럼 정쟁으로 소비되다가, 시민단체의 횡령수단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며 “정쟁을 넘어 시스템 개선으로 가야 한다. 이태원이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협의회 부대표 이정민씨는 “권성동 의원은 이태원 참사 유가족은 세월호와 같은 길을 가면 안 된다고 한다. 그것은 어떤 길인가. 세월호 유가족도 자식을 잃고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했고, 저희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우리한테 손을 내밀어 줬는가”라며 “왜 벌써부터 갈라치기를 하고 진실을 호도하는 것인가. 이게 정부와 책임있는 여당 책임자가 할 일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이날 가족들은 창립선언문에 △정쟁을 배제한 철저한 국정조사·성역 없는 수사 등 참사 진실규명 활동 촉구 △책임자 강력 처벌 △유가족 소통공간 마련 및 추모공간 설치 △2차 가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등을 선언했다. 이들은 “유가족협의회 구성에 불순한 의도로 그 활동을 방해하려는 시도가 있다면 절대 묵과하지 않겠다. 추모는 유가족들의 권리이며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한다는 약속이 함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장예지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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