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구리가 시려지면 떠오르는 그곳…일본의 겨울엔
낮에는 한 발 디딜 때마다 움푹 들어간 흰 발자국이 쫓아온다. 밤에는 두 눈이 머무는 곳마다 환상적인 야경이 펼쳐진다. 하루 종일 겨울만의 풍광을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낭만의 정점을 누릴 수 있는 그곳, 바로 일본이다.
물론 일본의 모든 지역이 겨울에 올인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로 치면 제주도 같은 존재인 오키나와는 국내 프로 스포츠팀이 동계훈련지로 자주 선택할 정도로 포근한 겨울을 자랑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겨울 느낌을 풍기는 도시가 훨씬 많다는 점에 일본의 겨울은 즐길만하다.
일본의 겨울 날씨는 지역에 따라 크게 다르다. 규슈와 같은 남쪽 지역은 연중 내내 홋카이도 보다 따뜻하다. 동계올림픽 개최지였던 나가노와 니가타같이 추운 지역은 상당 기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
대표적인 여행지 도쿄의 경우 맑은 날은 따뜻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약 500km 거리의 교토는 놀라울 정도로 춥다. 하지만 어디서든 맑은 날엔 상쾌하고 청명한 겨울 하늘이 산 뒤로 펼쳐져 푸른 배경이 된다. 날씨만으로 풍경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혹자는 일본의 겨울을 일컬어 ‘은빛으로 물드는 계절’이라고 부른다. 은빛이라 부를 만큼 아름답다는 방증일 테다. 연말이 다가오면 여러 곳에서 반짝이는 겨울 일루미네이션을 볼 수 있고 스키장의 흰 눈 또한 반긴다. 특히 눈, 설경에 있어 일본의 겨울은 둘째가라하면 서럽다.
일단 눈이 다르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스키장 개장 초반에 큰 눈이 오지 않는 이상 인공설을 뿌린다. 다만 한 겨울에 다다를수록 눈이 많이 내리다 보니 딱딱한 인공설과 부드러운 자연설이 섞여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기에 최적의 설질을 보인다.
일본 스키장의 또 다른 매력은 온천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스키 등을 탄 뒤 피곤해진 몸을 뜨거운 온천욕으로 풀면 실로 개운하다. 혹시 스키 등을 즐기지 않더라도 온천만 이용하는 것으로도 가치가 있다. 나가노의 하쿠바와 시가 코겐, 니가타의 에치고유자와와 묘코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의 여름이 불꽃놀이로 반짝인다면, 겨울은 호화로운 조명으로 빛난다. 바로 겨울 일루미네이션이다. 11월 중순에 시작해 겨울 내내 이어지는 수많은 조명 전시물이 쌀쌀한 도시의 밤에 특별한 전율을 더한다.
으뜸으로 꼽는 곳은 도쿄이다. 도시 전역에서 대형 전시물을 볼 수 있다. 여유가 있다면 야마노테선을 타고 도시를 돌며 구경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신바시역에서 짧은 도보 거리에 있는 카레타 일루미네이션 전시를 볼 수 있다. 롯폰기역 근처 미드타운 크리스마스 행사는 12월 25일까지 짧게 운영한다.
이밖에 가나가와의 사가미코 일루미리온, 센다이 빛의 페이전트, 도치기의 빛의 정원 플라워 판타지, 미에의 나바나노사토 일루미네이션, 오사카 빛의 르네상스 등이 있다. 1995년 한신 대지진을 기리는 고베 루미나리에 역시 인상적인 전시로 특별히 주목할 만하다.
구정이 아닌 신정을 쇠는 일본은 12월 말에 오쇼가쓰 연휴 기간에 접어든다. 날짜에 따라 변동이 있지만 통상적으로 12월 29일부터 1월 3일까지 연휴를 갖는다. 25일 크리스마스까지 있어 이 즈음엔 일본 열도 전역이 이벤트 분위기로 달아오른다.
오쇼가쓰 연휴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12월 31일과 1월 1일 사이이다. 이날 많은 신사에서 새해맞이 행사를 연다. 이때 일본을 여행 중이라면 가까운 신사에서 현지인처럼 새해를 맞아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 될 듯 하다. 우리나라 새해 일출 행사에서는 떡국을 나눠먹곤 하지만 일본에서는 따뜻한 사케와 메밀국수인 도시코시 소바, 돼지고기국 등을 맛볼 수 있다.
혹시 연인과 낭만적인 저녁을 즐기려 도쿄를 찾았다면 긴자나 도쿄역 주변 마루노우치 지역 등 중심가에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화려한 도심 지역은 호화로운 저녁 식사와 축제의 불빛을 즐기기 최적의 장소이다.
보다 이색적인 경험을 하고 싶다면 오사카 라멘 박람회 방문도 좋다. 12월 중 4주간 열리는 이 행사는 입장료 없이 누구나 즐길 수 있다. 약 40개 라면 업체가 개성 강한 라멘을 선보여 보고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고베 차이나타운의 난킨마치 등불 축제도 빼놓을 수 없다. 12월 초부터 말까지 열리는 이 축제는 다채로운 색상과 정취로 사람들을 끌어 모은다. 나마하게 행사도 눈여겨볼 만하다. 새해 전날 아키타현 오가시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곳곳을 다니며 액운을 씻어주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신인 나마하게로 분장한 공연자들이 연신 춤을 추며 거리의 관중과 호흡한다.
이처럼 일본의 겨울엔 낭만이 녹아 있다.
재미도, 활기도, 힐링도 함께 누릴 수 있다.
겨울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나아가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면 일본은 좋은 대안으로 손색없다.
일본행 ‘겨울 왈츠’를 추고 싶은 분은 손을 꼭 잡아주시길. 꼬옥.
장주영 여행+ 기자
댓글 많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