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홍대에 본점을 둔 미쓰족발은 지난해 말 홍콩 최대 번화가인 코즈웨이베이에 첫 해외 지점을 열었다. 이 식당은 개점과 동시에 소셜미디어(SNS)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현지인들이 줄을 서는 인기 맛집이 됐다. 홍콩 미쓰족발을 운영하는 김윤모 LKK Limited 대표는 “최근 홍콩에서 한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특정 한식 메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한식당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내수 경제가 침체의 터널 속에 갇힌 가운데, 음식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홍콩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중앙해장,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가 운영하는 새마을식당, 삼삼뼈국 등이 홍콩에 새롭게 지점을 열었다. 글로벌 부동산 서비스 기업 JLL(존스랑라살)에 따르면 지난해 홍콩에서 새로 문을 연 한국 F&B(식음료) 프랜차이즈 지점 수는 전년 대비 111% 증가했다.
외식 기업들이 홍콩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지난달 25~27일, 지호한방삼계탕, 킹콩부대찌개, 팔각도 등 12개 외식 기업으로 구성된 ‘한국 프랜차이즈 F&B 사절단’이 홍콩경제무역대표부의 후원으로 홍콩투자청을 방문해, 홍콩 외식 기업들과 합작법인(JV) 설립 등을 논의했다. 또 센트럴마켓 등 입점 가능한 현지 마켓도 둘러봤다. 이 중 족발야시장&무청감자탕은 수 개월 내 홍콩에 지점을 열 계획이다.
국내 외식 기업들의 홍콩 진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0년대 드라마 ‘대장금’이 중화권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서라벌 등 한식당들이 홍콩에 문을 열기 시작했다. 2010년대에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의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BHC 등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들이 홍콩에 진출했다. 그러나 많은 기업이 높은 임대료와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결국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외식 업계가 다시 홍콩 시장의 문을 두드리는 이유는 정체된 한국 외식 시장과 달리 홍콩의 성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홍콩의 인구는 750만 명으로 많지 않지만, 외국인 관광객을 포함하면 시장 규모는 5000만 명을 넘어선다. 지난해 홍콩을 방문한 관광객은 약 4500만 명으로, 1600만 명 수준인 한국의 세 배에 달한다.
특히 홍콩은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고 세금 제도가 간단해 시장 진입 장벽이 낮다. 이에 따라 국내 기업들은 홍콩을 테스트 베드(실험장)으로 활용한 뒤, 중국 본토 및 제3국 시장 진출을 고려하고 있다. 홍콩에서는 연간 과세소득이 200만 홍콩달러(약 3억 7000만 원) 이하인 기업에 법인세율 8.2%가 적용되며, 외식 기업에 중요한 부가가치세(VAT), 주류세, 관세 등 각종 세금이 없다.

고속철도와 강주아오대교를 통해 홍콩의 외식 시장이 주변 지역으로 점차 확장되고 있다는 점도 한국 외식 기업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중국 정부는 홍콩, 마카오와 광둥성 내 9개 도시를 하나의 거대한 통합 경제권으로 조성하는 ‘대만구(GBA)’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GBA의 총인구는 8600만 명에 달하며, 1인 당 국내총생산(GDP)이 중국 내에서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이종석 홍콩 한인요식업협회 회장은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제한되면서 외식업, 특히 K컬처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한식당들이 크게 성장했다”면서 “코로나19 이후에는 홍콩과 GBA 내 다른 지역 간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한국 기업들의 활동 무대가 더욱 넓어졌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촌치킨은 지난달 GBA 지역 중 하나인 선전의 신규 쇼핑몰 치엔하이 완샹청에 1호점을 개점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홍콩과 중국 본토 간 체결된 CEPA(중국·홍콩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로 인해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지난해 10월 중국과 홍콩이 2차 개정 협정에 서명한 CEPA에 따라 홍콩 기업이 본토에 회사를 설립할 때 출자 비율 및 업무 범위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며, 홍콩 전문가가 본토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자격 요건도 완화된다. 홍콩에 지점을 보유한 국내 기업들의 중국 본토 진출이 더욱 쉬워지는 것이다.
홍콩 현지 기업들도 국내 기업에 적극적인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홍콩 F&B 기업 THAC 케이터링 그룹의 설립자 벤슨 찬은 “홍콩에서 한국 음식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지만, 홍콩 외식 시장에서 한식당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며 “감자탕 등 홍콩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메뉴를 앞세운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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