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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카테고리에서 스포츠카를 만든다는 포르쉐는 1970년대 초반 스포츠 성능을 원하면서도 고급스럽고 편안한 승차감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고성능 그랜드 투어러 모델 개발에 착수합니다. 지금이야 포르쉐 파나메라가 그런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었지만 파나메라가 등장하기 이전 시대 포르쉐 엔지니어들의 해답은 바로 포르쉐 928이었습니다.

포르쉐 928. 1977년부터 18년간 유럽과 북미 그리고 아시아를 호령한 모델이었습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포르쉐 클래식 모델로 각광을 받고 있는 모델입니다. 그리고 1990년 국내에도 일부 모델이 수입된 바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던 모델입니다. 오늘은 바로 이 포르쉐 928을 소개합니다.

1970년대 초 포르쉐는 911 2세대 격에 해당하는 포르쉐 930은 그야말로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유럽은 물론 북미 그리고 중동 석유 부자들까지 ‘스포츠카 = 포르쉐’라는 공식을 당연하게 여겼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자동차 카테고리는 스포츠카 영역보다 더 넓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수익성이 높은 고성능 그랜드 투어러는 포르쉐에겐 구미가 당기는 영역이었습니다.

넓고 편안한데다 힘도 좋아 먼 거리도 스트레스 없이 달릴 수 있는 그리고 더할 나위 없는 고급감과 압도적인 고성능 포르쉐. 포르쉐 911과 다른 고급차로 새로운 모델이 필요했던 포르쉐 AG는 당시 개발 수장이던 에른스트 푸어만(Ernsts Fuhrmann)을 설득해 새로운 플래그십 모델에 대한 필요성을 설명합니다.

회장이던 페리 포르쉐(Perry Porsche) 역시 북미 소비자들의 인식 그리고 유럽의 수요를 감안할 때 반드시 필요한 모델이라 판단했습니다. 하지만 포르쉐의 플랫폼은 스포츠카에 고정되어 있어 전체 설계를 모두 새로 해야 하는 과제를 직면해야 했습니다. 결국 포르쉐는 전면부 보닛 아래로 엔진을 옮기고 뒷바퀴를 굴리는 FR 구동계로 바꾼 차를 설정합니다.

당시 FR 구동계는 1970년대 거의 모든 브랜드들이 노하우를 갖고 있던 방식으로 포르쉐는 자신들만의 맛을 내기 위한 특별 처방으로 두가지를 제시합니다. 첫번째는 무서울 정도로 조용할 것. 그리고 두번째는 기함급 모델답게 배기량이 큰 엔진을 사용하고자 했습니다. 수없이 많은 연구 끝에 포르쉐 엔지니어들은 1977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포르쉐 928을 선보일 수 있었습니다.

포르쉐 928은 등장과 동시에 돌풍을 일으킵니다. 평단의 큰 호평과 함께 포르쉐는 다음해 유럽 올해의 자동차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립니다. 게다가 포르쉐 928은 시판 중이던 911보다 비싼 가격표를 붙이고 있어 플래그십이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했죠. 심지어 개발 초기부터 이 차의 콘셉트로 분명히 담았던 조용한 포르쉐 그리고 압도적인 성능 모델이라는 강조점은 모터팬들은 물론 자동차가 필요한 부유층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1978년 처음 시판에 돌입했던 포르쉐 928은 4.5L V8 엔진으로 적게는 219마력부터 4.7L V8 엔진으로는 300마력까지 발휘하는 괴물 같은 출력 모델이었습니다. 당시 웬만한 중형차들이 100마력이 채 되지 않던 시대였으니 슈퍼카 영역의 출력을 경험할 수 있는 모델이었죠. 포르쉐 928은 1995년까지 꽤 오랜 기간 시판되었는데 후기형인 1991년식 포르쉐 928의 경우에는 350마력을 뿜어내는 5.4L GTS V8 엔진까지 장착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포르쉐 928 엔진은 다양하게 발전했는데, 배기량을 중심으로 보면 유럽형인 3.3L부터 북미형이 4.5L와 4.7L 그리고 5.0L와 5.4L까지 다양합니다. 하지만 이 마저도 포르쉐 엔지니어들은 아우디의 V10엔진을 사용하고 싶어 끊임없이 문의했다는 후문이 남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포르쉐는 포르쉐 928이 당대 최고의 그랜드 투어러로 기억되길 바랬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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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28은 그만큼 안과 밖 모두 고급스러운 디자인을 내비쳤고, 소재 역시 최고급 소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특히 스포츠카 브랜드답게 경량 구조에 초점을 두었고 공기역학 측면에서도 당시의 기술로는 최고의 실력을 발휘했습니다. 특히 전동식 팝업 헤드라이트는 전개각도가 경쟁자들을 압도했을 뿐 아니라 통유리로 감싼 패스트백 디자인은 B필러 이후 유리창 크기와 어울려 굉장히 독보적인 디자인 감각을 보여주며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자동차 디자인 업계에도 파격적으로 다가와 1980년대 토요타 셀리카나 닷선 300ZX 등을 논할 때 포르쉐 928은 빼놓을 수 없는 차가 되기도 했습니다.

공기역학 측면에서도 포르쉐 928은 이 분야의 교과서와 같은 모델입니다. 매끈한 라인을 보면 누구라도 감탄을 자아낼 정도로 절묘한 볼륨감을 자랑합니다. 특히 리어 엔드의 범퍼와 후면 펜더 부분은 트렁크 파팅라인과 어울리며 아찔한 맛을 자아낼 정도에요. 출시 후 2년이 지나선 전면과 후면 모두에 스포일러까지 추가되며 더욱 공격적인 공력성능을 내기도 했습니다.

기술 측면에서도 상당한 진일보를 이루기도 했는데 주목할 점은 리어 액슬입니다. 포르쉐가 독자적으로 튜닝해 928에 처음 장착한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은 토인(To – In) 안정화 효과가 워낙 뛰어나 ‘바이삭 액슬’로 불릴 정도로 뛰어났습니다. 바이삭 액슬은 무게 분산을 감안해 후방으로 옮긴 변속기를 리어 액슬 앞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해결하며 등장했습니다. 절묘한 튜닝과 과감한 성능 개선은 지금도 이 바이삭 액슬에 대한 찬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포르쉐 차체 개발부의 책임자 만프레드 하러(Manfred Harrer)는 바이삭 액슬이 그 당시 차체 시장에 혁명을 가져왔으며, 현재까지도 포르쉐 차체 개발의 근간이 된다고 말할 정도죠.

브레이크 시스템 역시 포르쉐로선 가장 먼저 고정식 4피스톤 브레이크 시스템을 장착했고 배기 파이프 역시 정직하게 뒤로 빼던 것을 리어 엔드 좌측 끝단으로 배치해 점잖고 중후한 맛을 내도록 바꿨습니다.

소재 부문에서도 포르쉐 928은 특별했습니다. 4.0L나 5.0L처럼 배기량이 큰 엔진을 쓰면서도 엔진블록은 두꺼운 알루미늄으로 만든 실리콘 알로이 엔진블록으로 크기 대비 무게가 가벼웠습니다. 아울러 강철은 대부분 아연처리로 내구성을 끌어올리고 문과 전면 펜더 그리고 보닛 등은 알루미늄으로 당시로선 혁신적인 면모를 발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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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928은 지금도 여전히 파나메라 이전의 강력한 그랜드 투어러 그리고 플래그십 모델로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이 차를 되살리는 것 아니냐는 루머가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 여전히 포르쉐 928의 명성은 대단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죠. 무엇보다 포르쉐 928은 1977년부터 1995년 단종되기까지 무려 18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을 포르쉐 그랜드 투어러로 자리매김했던 모델입니다. 그래서인지 그 역사만큼 다양한 튜너들의 화려한 도전들도 이어지기도 했어요. 지금은 파나메라에 자리를 물려줬지만 당시 벤틀리 컨티넨탈이나 BMW 8시리즈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포르쉐 928.

오늘날에는 이런 역사적인 포르쉐 928을 만나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만 새로운 전동화 시대 더 화려하고 강력한 GT카들이 수두룩하죠. 오늘 만나본 포르쉐 928은 이런 GT카의 계보를 시작했던 모델로 지금도 각광받기에 충분한 모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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