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제조사들은 브랜드 정체성을 표현하고 판매량을 높이려는 수단으로 ‘한정판’ 모델을 내놓고 있다. 한정판의 희소성과 자동차를 통해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려는 소비자의 심리를 공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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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시승한 지프 랭글러 투스카데로 에디션(이하 투스카데로 에디션) 역시 그렇다. 지프는 핑크 컬러, 한정판 모델만의 요소를 통해 소비자 공략에 나섰다. 투스카데로 에디션은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을지 시승을 통해 특징을 살펴봤다.
군(軍)에 대한 스토리를 담은 에디션

자동차 제조사는 한정판 모델을 만들면서 스토리를 첨가한다. 특별함을 강조하는 요소를 더하는 것이다. 저마다 다른 스토리를 사용하지만 지프는 유독 ‘군(軍)’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사용한다. 그 이유는 브랜드 설립 근간에 있다.

지프 브랜드는 1941년 탄생한 소형 전술 차량 ‘윌리스 MB’를 시작으로 역사가 시작됐다. 윌리스 MB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이 진행한 경정찰차 제작 공개 입찰에서 표준 차량으로 선정된 윌리스 오버랜드사(Willys-Overland)의 ‘쿼드(Quad)’를 바탕으로 생산된 군용 차량이다. 흔히 ‘지프차‘라 불리는 SUV의 원형이 된 모델이다.

지프는 브랜드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군에 대한 헌사를 담은 한정판 모델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글레디에이터 ‘아미 스타 패키지(Gladiator Army Star Package)’와 미국 육군·해군·공군을 연상시키는 문양을 적용한 헤리티지 에디션 등이다. 최근에는 윌리스 MB를 기념하는 랭글러 ‘41 에디션’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번에 시승한 투스카데로 에디션에도 군에 대한 의미가 숨겨져 있다. 대표적인 건 핑크색 외장 컬러다. 이 컬러의 정식 명칭은 ‘크로마틱 마젠타(고채도의 진한 핑크색)’다. 핑크색은 단순히 시각적인 요소를 자극하기 위한 선택이 아니다. 핑크색은 새벽이나 황혼 시간대에 잘 보이지 않는 특성이 있어 위장색으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한 부대는 핑크색으로 도색한 전술 차량을 전장에 투입한 바 있다.

스텔란티스코리아는 전 세계 6000대만 생산된 투스카데로 에디션을 국내 시장에 21대만 들여왔다. 이 숫자 역시 군에 대한 의미를 담은 것이다. 군이 의전행사에서 경의와 환영을 표현할 때 21발의 예포를 발사하는 것에서 착안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랭글러 루비콘에 더한 투스카데로 에디션

투스카데로 에디션은 랭글러 루비콘 하드톱 모델을 기반으로 완성됐다. 전체적인 디자인은 일반 랭글러와 다르지 않다. 전면에는 7-슬롯 그릴과 원형 헤드램프가 적용됐고 측면에는 ‘트레일 레이티드’ 배지와 지프 랭글러 엠블럼을 더했다. 휠 디자인 역시 일반 모델과 동일하다.

지프는 한정판 모델만의 특별함을 강조하기 위해 크로마틱 마젠타 외장 컬러를 비롯해 스테인리스 스틸 재질의 도어 실가드와 전 좌석 루프쪽에 장착된 그립 핸들, 캐스트 알루미늄 소재의 주유구 등의 순정 액세서리 3종을 적용했다. 또 넘버링 배지를 더해 한정판 모델임을 강조했다.

실내는 다른 점을 찾기 힘들다. 전 좌석 그립 핸들과 도어 실가드를 제외하면 12.3인치 터치스크린과 재설계된 대시보드, 센터페시아의 구성 등 모든 것이 동일하다. 사용성 측면에서는 전혀 불만이 없지만 한정판 모델을 강조하는 요소가 많지 않다는 점은 아쉽다.

차체 크기는 일반 랭글러와 같다. 투스카데로 에디션의 길이와 너비, 높이는 각각 4800밀리미터(㎜), 1940㎜, 1865㎜다. 휠베이스는 3010㎜로 긴 편이지만 비슷한 길의 휠베이스를 가진 모델과 비교하면 실내 공간이 넓은 편은 아니다. 또 2열 시트의 방석 길이는 짧고 등받이 각도가 세워져 있어 장거리 주행 시 다소 불편함이 느껴진다.
도심 주행에서의 불편함, 오프로드서는 즐거움으로

투스카데로 에디션은 2.0리터(ℓ) 직렬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최고출력은 272마력이며 최대토크는 40.8킬로그램미터(㎏·m)다. 엔진과 조합되는 변속기는 8단 자동이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토크가 발휘되는 시점부터 속도는 경쾌하게 올라간다. 가속 시 터보렉이 살짝 느껴지지는 하지만 2.2톤(t)의 차체를 끌기 부족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랭글러는 태생부터 오프로드에 초점을 맞춰 개발된 모델이다. 따라서 일반 도로 주행에서는 안락함을 기대하기 힘들다. 승차감도 투박하고 실내로 유입되는 소음도 큰 편이다. 하지만 부분변경을 거치면서 전천후(AT) 타이어를 적용한 덕분에 이전 대비 소음과 승차감이 개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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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어디까지나 온로드 주행에서만 느껴지는 아쉬움이다. 비포장도로를 만나면 이러한 불만은 눈 녹듯 사라진다. 깊게 패인 웅덩이, 물길, 산길 등 랭글러가 가지 못하는 길은 거의 없다. 특히 최저지상고가 274㎜에 달해 최대 760㎜ 깊이의 물길도 건널 수 있다.

투스카데로 에디션은 4대 1 락-트랙(Rock-Trac) HD 풀타임 사륜구동(4WD) 시스템과 프론트 리어 전자식 디퍼렌셜 잠금장치, 전자식 프론트 스웨이바 분리장치가 탑재됐다. 여기에 오프로드 플러스 기능까지 적용됐다. 랭글러 루비콘과 동일한 구성이다. 시승 당시 발목까지 눈이 쌓인 산길을 주행했는데 트랜스퍼 기어 조작 레버를 4L 바꾸자 단 한 차례도 슬립 없이 주행이 가능했다. 또 스웨이바를 분리한 덕분에 서스펜션 가동 범위가 넓어져 깊게 패인 길에서도 바퀴가 노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8단 자동변속기는 77.2대 1의 크롤비로 힘을 네 바퀴로 전달했다. 크롤비는 높을수록 엔진회전수가 낮은 상태에서 강한 힘을 발휘한다. 높은 높은 크롤비로 인해 엔진회전수를 높이지 않더라도 험로 탈출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참고로 일반 랭글러 사하라의 크롤비는 47.4대 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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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로드 주행 성능은 흠잡을 데가 없지만 연비는 아쉽다. 투스카데로 에디션의 복합 연비는 ℓ당 7.5㎞다. 실제로 시승 당시 계기판에 표시된 연비는 6~7㎞/ℓ로 제원상 복합 연비에는 살짝 못 미쳤다. 각진 차체 디자인과 4WD 시스템, 2185킬로그램(㎏)의 무게를 감안하면 수긍할만한 수준이지만 효율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지프는 랭글러를 통해 특유의 오프로드 성능은 물론이고 브랜드의 근간이 되는 군(軍)에 대한 헌사를 담아내고 있다. 랭글러 투스카데로 에디션은 오프로드 성능에 특별함을 원하는 이들에게 좋은 선택지다.
허인학 기자
ih.heo@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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