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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르보이스] 나의 슈퍼 바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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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야, 풀시티가 뭐냐?” 전화 너머로 생소한 단어가 익숙한 목소리를 타고 넘어왔다. “몰라. 무슨 풀시티?” 스마트폰 통화를 스피커 모드로 바꾸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구글에 ‘바리스타, 풀시티’를 쳤다. “엄마, 혹시 원두 로스팅 정도에 나오는 풀시티야?”엄마는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바리스타 공부를 시작했다. 평생 전업주부로 살아온 엄마는 어느 날 비밀을 발설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고. 어차피 떨어질 것 같지만 그냥 도전하는 거라면서 엄마는 도전 자체가 부끄러운 일처럼 고백했다. 엄마는 내가 아는 가장 총명한 사람이지만 가정 형편상 대학 진학을 하지 못했고, 잠깐 직장생활 끝에 아빠와 결혼한 후로 줄곧 전업주부로 지냈다. 엄마가 아빠의 월급을 살뜰히 운영해서 아파트도 사고, 가족의 영양과 환경을 책임진 덕분에 아빠는 무사히 정년퇴임을 하고 언니와 나 모두 잘 자랄 수 있었지만, 엄마는 그 모든 성과에 늘 속상하리만큼 겸손했다. 그러는 동안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함께 외출하면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를 메뉴판부터 건물 이름 앞에 엄마는 자주 위축됐다. 엄마가 가족에게조차 어렵게 꺼낸 도전은 단어 그대로 매 순간이 도전이었다. 학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수강생이었던 엄마는 영어에 이탈리아어 폭격이 들려오는 바리스타 수업 앞에서 매일 키오스크 앞 노인이 됐다. 용기 내어 한 질문에 선생님의 핀잔을 한 번 들은 이후, 엄마는 들리는 대로 일단 메모한 후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내게도 생소한 단어를 검색해 엄마에게 설명하면 엄마는 이제야 퍼즐이 맞춰졌다고 기뻐하며 전화를 끊었다. 가끔 집에 놀러 가면 엄마는 식탁에서 돋보기로 책을 보며 공부하거나 유튜브 실기 영상을 트로트 서바이벌보다 열심히 봤다. 매일 봐도 모르겠다고, 그래서 그냥 외운다고 했다.

기출 문제를 정말 달달 외운 엄마는, 필기시험 만점을 받았다. 온라인 응시였던 필기시험에 답을 입력하는 것 자체가 엄마에게는 또 다른 시험이었다는 걸 알게 된 건 그 뒤의 일이다. 실기시험을 앞둔 엄마는 잔뜩 겁을 먹어서 말했다. 손도 떨릴 것 같고 겁이 난다고, 다들 쉽다는데 떨어지면 무슨 망신이냐고. 필기시험과는 달리 보는 눈도 많은 곳에서 출발선에 설 생각을 하니 막막한 모양이었다. 순간 달리기를 못했던 내 학창시절 운동회가 떠올랐다. 초·중·고 12년 내내 꼴찌를 했던 나를 엄마는 늘 결승선에서 기다리다가 안아주면서 격하게 등을 쓰다듬어줬다. “잘했다, 잘했다”만 유난스럽게 반복하면서. 내가 머쓱해서 꼴찌인데 왜 잘했다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말했다. “꼴찌니까 잘한 거지. 못하는데도 끝까지 했으니까 잘한 거야.” 지금 출발선 앞에 선 엄마에게 무조건 붙을 거란 말 대신 엄마가 나를 꼭 안고 했던 말을 돌려줬다. “떨어지면 어때? 못하는 걸 끝까지 한 게 얼마나 멋져?”

엄마는 당당히 합격했다. 엄마는 동료들과 함께 시에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주 2회, 하루 3시간씩 일하는 시니어 바리스타에 지원했다. 엄마를 면접장인 카페에 내려주고, 운전석에 앉은 채 입구로 총총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그 작은 등이 너무 듬직해 보여 눈물이 났다. 지금 엄마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 얘기도 하고, 키오스크 주문을 못 하는 사람들이 답답하다는 농담까지 한다. 커피 메뉴명은 모르지만 늘 같은 걸 먹는 할머니 손님을 센스 있게 응대한 ‘일잘러’ 모멘트를 들려주기도 한다. 가끔 가족여행을 가거나 강아지 돌봄을 부탁하려고 일정을 물었을 때 “그날은 엄마 출근이야”라는데, 나는 그 순간 엄마의 ‘뻐기는’ 표정을 좋아한다. 그건 단순한 보람이라기보다 마치 의자 뺏기 게임에서 승부를 뒤집고 한자리를 꿰찬 자 특유의 정복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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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스타가 된 엄마를 상상하는 것은 내게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연상시킨다. 평행우주를 상상하는 일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스스로 작은 우주를 개척한 엄마가 자랑스럽다. 한편 봤더라면 분명히 큰 감동을 받았을 이 영화를 엄마는 제목조차 무슨 의미인지 잘 알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이 제목을 그대로 한국시장에 내놓은 배급사의 게으름과 오만함에 화가 치민다. 양자경의 ‘에에올’도, 데미 무어의 〈서브스턴스〉도 폐쇄적인 제목이 또 하나의 키오스크가 돼 엄마를 밀어내는 셈이다. 엄마의 도전을 있는 힘껏 응원하는 만큼 엄마가 매번 큰 결심과 용기를 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만들 의무감 또한 느낀다. 나의 슈퍼스타, 슈퍼 바리스타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는 세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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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지

비혼자의 일상을 이야기하는 예능 팟캐스트 〈비혼세〉 진행자이자 출판 레이블 ‘아말페’ 대표. 〈난 슬플 땐 봉춤을 춰〉 등을 썼다. 여성의 몸과 사랑, 관계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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