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이곳은 인천공항에서 1천697㎞ 떨어진 러시아의 영토이자 일제강점기 당시 우리나라 사람 15만여 명이 강제 징용된 섬이다. 사할린섬으로 건너간 그들은 강제 노동을 했고 체벌과 고통 속에서 최소한의 인권도 보장받지 못하며 힘든 생활을 이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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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 해방을 맞이했음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한인들은 60년이 지나서야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그렇게 영주 귀국한 사할린동포 노인들 중 혼자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이들이 머물도록 마련된 곳이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20여 년간 노인들이 잘 정착하고 생활하게끔 돕고 있는 이영은 사무국장을 만났다.
2004년부터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과 함께해 온 이영은 사무국장은 노인들과 매일같이 하루 일과를 함께한다. 식사부터 운동, 진료, 노래교실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노인들 곁에는 언제나 그녀가 있다. 현재 회관에 있는 노인 77명 중 50여 명이 인지가 저하되거나 거동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부분들이 잘 케어되도록 항상 열심인 이 국장을 보며 노인들은 “어느 자식이 이렇게까지 돌봐주냐. 너무 고맙다”고 말한다. 이 국장 그리고 회관 직원들은 노인들에게 있어 타지에 있는 자녀를 대신해 의지할 수 있는 딸 같은 존재다.
이 국장도 초반엔 노인들이 이해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할린에 몇 번 다녀오다 보니 그들의 문화를 느끼게 됐고, 그제야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이 국장을 포함한 직원들과 노인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다.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도 어려움이 있다. 정부 지원금이 줄기도 했고, 코로나를 기점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 코로나 이후 회관이 감염취약시설로 분류돼 외부인이 들어올 수도, 노인들이 나갈 수도 없었다. 자원봉사활동이 중단됐고, 그 영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런 와중에도 꾸준히 식재료를 후원해 주는 이도 있고, 가족봉사단으로 와 간식을 전해 주기도 한다. 이 국장은 “20년이 넘는 기간 꾸준히 정기후원을 해 주시며 사할린동포 어르신들을 응원해 주시는 분들을 보면서 우리도 더욱 힘을 내게 된다. 항상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다. 사할린동포 노인들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의미 있는 해다. 이 국장은 “정부와 지역사회에서 사할린동포 어르신들을 위한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우리가 고국으로 모시고 온 이들이 생의 마지막을 인천사할린동포복지회관에서 따뜻하고 편안하게 보내도록 관심과 사랑이 전해지길 간절히 바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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