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중국·일본 등 각국 정부가 반도체·배터리 산업에 대규모 투자와 규제 완화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도 이런 흐름에 부합한 ‘특별법’ 도입이 시급하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커진다. 이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 자본 유출 방지와 일자리 창출 등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SK하이닉스 반도체 생산라인 / SK하이닉스](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3-0274/image-d11c91bd-e774-4bec-a7a0-1e67dddf7d91.jpeg)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AI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는 미국 엔비디아 직원들은 종종 새벽 1~2시까지 일하며 주 7일 근무를 한다. 대만 TSMC 연구개발팀은 하루 24시간 3교대를 통해 릴레이식으로 연구가 이어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최고의 AI 인재들이 밤낮없이 혁신에 몰두한 결과 세계에 ‘딥시크’ 충격을 안겼다.
미국과 일본이 시행하는 ‘화이트칼라 이그젬션(고연봉 관리·전문직 근로시간 규제 적용 제외)’는 최근 업계의 관심이 높은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다.
미국은 고위관리직·행정직·전문직·컴퓨터직·영업직에 해당하면서 주 684달러 이상을 버는 근로자, 연 10만7432달러(1억5000만원) 이상 고소득 근로자를 근로시간 규제에서 예외로 둔다.
일본은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통해 금융상품 개발·자산 운용·유가증권시장 분석·컨설팅·연구개발(R&D) 등 다섯 가지 업종 근로자 중 근로소득이 연 1075만엔(9750만원) 이상이면 근로시간 및 초과근로수당 등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국민의힘 고동진, 안철수 의원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반도체특별법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뉴스1](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3-0274/image-f896e71d-0361-43d4-a2c6-5ef46a4c8f26.jpeg)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반도체특별법과 관련해 반도체 연구개발 인력의 주52시간 근로제 예외 규정 명시를 두고 여야 의견이 갈리고 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특별법에 이 규정을 담아서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야당은 정부의 세제·재정 지원 등 합의된 내용만 우선 통과시키고 논란이 되는 부분은 추후 논의하자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다. 17일 열리는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에서 반도체특별법에 대한 심사가 이뤄질 예정이지만 이견이 좁혀질 가능성은 미지수다.
‘삼성전자 출신’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반도체 분야같이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분야에선 노동시간 유연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반도체특별법 외면은 AI와 반도체 산업 발목을 잡는 것이며 한국 미래 성장동력에 치명타를 입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LG에너지솔루션 오창공장 전경 / LG에너지솔루션](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3-0274/image-752dde33-7f1d-4d68-be36-cfae19e45cdf.jpeg)
전기차 캐즘(Chasm·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배터리 업계는 ‘한국판 IRA’로 불리는 세액공제 직접환급제 도입 등 적극적 정책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친다. 국가전략기술에 대한 투자세액공제를 기존 법인세 공제 방식에서 직접 현금 환급으로 전환하고 국가전략기술 지정 시점 이후부터 소급 적용하는 것이 골자다.
이상수 LG에너지솔루션 담당은 4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국회연구단체 이차전지포럼 대표) 주최로 열린 ‘이차전지 배터리 직접환급제 도입 토론회’에서 “현재 상황이 어려운 업종이 많지만 배터리 같은 국가전략기술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며 “중장기적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으니 미래 세수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설 투자뿐 아니라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필수 투자인 연구개발(R&D) 투자도 세액 공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미국이나 프랑스, 캐나다 등은 투자금에 대해 현금 환급이나 제3자 양도 등의 방식으로 지원해주고 있다. 프랑스는 1985년부터 R&D 지출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환급형 세액공제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CATL, 비야디(BYD) 등 중국 배터리 업체들도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과 혜택 등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김승태 한국배터리산업협회 실장은 “현재 도입 단계에 있는 이차전지 시장 내 기업은 아직 현금 흐름과 이익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어 현재 세액지원 방식은 실효성이 낮다”며 “수출, 생산, 고용 등 파급 효과가 큰 주력 산업인 만큼 실효적 지원이 적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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