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실. ⓒ연합뉴스](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3-0179/image-8fe250c9-5e49-4064-b85d-7bb95323eaac.jpeg)
“경비원인 저희 아빠 좀 도와주세요.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고 계십니다.”
5년 전 봄에 도착한 제보 메일 내용이 그랬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 동네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아빠 얘길 들어 달라는 거였다. 자식들 만류에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했다. 가장이라며, 그러니 어떻게든 도움이 되겠다며.
딸이 소상히 적은 내용은 기막혔다. 소문이 나쁜 입주민 한 명에게, 부친이 잦은 폭언과 협박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새벽에 출근해 옷을 갈아입고 있는 아빠를 찾아와, 무자비하게 폭행했단다. 경비원은 좁은 경비실 안에서 겁에 질려 문을 잠갔다. 목과 얼굴이 퉁퉁 부었고, 마음을 찢은 상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딸들은 아빠의 모습을 보며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억울한 이를 항변해줄 곳은 없었다. 경비업체도 관리사무소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했다. 아무래도 자세히 취재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답장을 보냈다. 찾아뵙고 섬세히 잘 담아보겠다고.
며칠 뒤 뜻밖의 답이 와 놀랐다. 제보자인 딸은 안타까워하며, 이리 말했다.
“아빠가 취재하지 않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걱정하시는 것 같아요. 혹여나 일자릴 잃을까 봐….”
입주민의 갑질과 회사의 무심한 외면보다 더 무서운 게, 노년에 일자리를 잃는 일일 수 있단 걸 차마 상상하지 못했다. 초단기 계약을 반복해 연장하는 일, 몇 개월마다 잘릴 수 있는 불안한 일자리. 그래서 그는 겁을 먹으면서도 어떻게든 출근하는 길을 택했다. 딸에게 알겠다고 답한 뒤 할 말을 잃었다.
그런 뒤 경비노동자의 삶을 취재하려 동분서주 애를 썼었다. 예상했던 대로 섭외조차 쉽지 않아 무려 1년이나 걸렸다. 힘든 노동 환경이란 걸 조각을 모으듯 취재했으나, 누구도 전면에 나서서 말하려 하지 않았다. 경비원 정 아무개 씨가 용기를 내어준 덕분에, 하루 내내 경비원의 삶을 체험할 수 있었다.
당장 잘 곳조차 마땅찮아 좁다란 경비초소에 쪼그린 채 새우잠을 잤다. 휴게실은 없냐는 물음에, 정 씨가 데리고 향한 곳이 있었다. 후미진 지하에 마련된 화장실과 방. 곰팡이 내음이 진동했고, 밤이면 쥐가 나와 배를 타고 다닌다는 말에 경악해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정 씨가 꿈꾸었던 노년의 삶은 이런 모습은 아녔다고 했다. 쭈그리고 앉아 담뱃불을 붙여 후, 하고 길게 숨을 내뿜으며 그가 이리 말했다.
“글을 쓰고 싶기도 했고, 도서관에서 일하고 싶기도 했어요. 고상한 생각이었지. 이력서를 수도 없이 냈는데, 20곳 넘게 떨어졌나 그랬어요. 깨달았지요. 유일하게 받아주는 데가 경비원뿐이구나. 아니지, 이것도 운이 좋아야 해요. 할 사람이 줄을 섰다니까요.”
3개월짜리 초단기 계약을 이어간다고 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불안이 찾아오고, 안도하며 다시 일을 이어간다고 했다. 관리실 직원들은 대놓고 “너 말고도 일할 사람 많다”고 으름장을 놓는단다. 을 사이에서도 이간질이 심하다고 했다. 저 인간은 잘라야 한다고. 서글픈 생존 경쟁이 이랬다.
![▲ 2023년 3월17일, 관리자의 ‘갑질’을 폭로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 선택을 한 경비원이 일했던 강남구 대치동 아파트 앞에서 아파트노동자 서울공동사업단,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 서울본부 관계자 등이 추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https://contents-cdn.viewus.co.kr/image/2025/02/CP-2023-0179/image-5b5ebbeb-06e6-4ef1-9bea-a9ad0ae0ac8b.jpeg)
3개월마다 잘릴지도 모른단 삶은 대체 어떤 건가. 새해 첫날, 한 경비노동자의 부고 소식이 전해져 잊고 있던 문제를 상기하게 했다. 고(故) 김호동 씨 얘기다. 그는 2018년부터 경남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일하다 ‘쪼개기 계약’에 항의하며 스스로 생을 등졌다. 발견된 곳은 하역주차장 인근이었다. 유서엔 이리 적혀 있었던 걸로 전해졌다.
‘3개월짜리 시한부 고용 승계에 무력감을 느낀다.’
계속 일하고 싶단 김 씨에게, 회사가 제시한 기한이 그랬단다. 하는 거에 따라서 연장 여부를 고민하겠다고. 사계절도 보장받을 수 없단 생각에, 그는 12월 마지막 날 밤에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에 대해선 다른 경비원 최 아무개씨에게 들었던 말로 짐작해보면 어떨까 싶다. 함께 생각해봤으면 하는 말이다. 그가 이리 말했었다.
“나중엔 내가 폐품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 하도 깨지니까. 세상이 나를 몰라주네, 그랬어요. 그런데 나를 몰라도 내 나이는 알더라고. 끝난 거지요.”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