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 (2020년 12월18일 방송통신위원회 방송정책기획국장)
“(재허가 조건에) 비정규직 부분이 빠진 게 맞다. (비정규직) 국회 등에서 방통위가 왜 개별적인 회사의 노동 조건까지 확인해야 하는 거냐, 과도한 조건이라는 지적들이 있었다.” (2024년 2월1일 방통위 방송정책기획과장)
각각 지상파방송사업자 재허가 조건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 방안 마련’을 넣은 문재인 정부 당시 한상혁 방통위와 ‘비정규직 처우개선 방안 마련’ 조건을 뺀 윤석열 정부 김홍일 방통위 관계자의 발언이다. 지난 정부 때는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방통위에서 관리 감독해야 할 사안으로 여겼으나, 현 정부에선 상반된 판단을 했다. 최근 故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건으로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가 화두가 됐는데, 오히려 감독기구는 관심을 줄여온 것이다.
노동인권단체인 엔딩크레딧의 진재연 집행위원장은 4일 미디어오늘에 “방통위가 얼마나 잘못된 결정을 했는지는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다. 방송사들이 프리랜서 비정규직 고용을 남발하면서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데, 관리 감독해야 할 방통위가 면죄부를 주고 있다. 책임과 역할을 방기한 방통위와 방송사가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건과 같은 비극을 불러온 것”이라며 “방통위는 지금이라도 다시 재허가 심사조건에 ‘비정규직 처우개선 방안’을 넣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2020년 12월18일 한상혁 방통위는 KBS 등 21개 지상파방송사업자 162개 방송국의 재허가를 의결하며 공통 조건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 방안 마련’을 강제했다. 당시 방통위는 △방송사별 비정규직(계약직, 파견직, 프리랜서 등) 인력 현황 및 근로실태 파악을 위한 자료를 매년 4월 말까지 제출할 것 △비정규직 처우개선 방안을 마련해 재허가 이후 6개월 이내에 방통위에 제출하고 그 이행실적을 매년 4월 말까지 방통위에 제출할 것을 공통 조건으로 부여했다.
그러자 노동인권단체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는 성명을 내고 “재허가 조건에 ‘노동 환경’에 대한 문제를 적시한 것은 사상 처음”이라며 “이제라도 방송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과 처우개선을 위해 나선 것에 환영한다”고 밝혔다.
문재인 정부는 방송 비정규직 문제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여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후보 시절인 2017년 7월28일 故박환성·김광일 PD의 빈소를 찾아 독립PD 처우개선 의지를 밝혔다. 두 PD는 EBS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 제작 촬영을 위해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체류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같은 해 방통위 등 관계부처 합동으로 ‘방송프로그램 외주제작시장 불공정관행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 시기 방송사에 적극적인 근로감독이 이뤄진 것도 문재인 정부 차원의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9월3일 ‘방송의 날’ 축사에서 “방송 콘텐츠의 결과물만큼 제작 과정도 중요하다. 제작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현장의 모든 분을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 존중해주시면 좋겠다. 노동이 존중되고, 사람이 먼저인 일터가 되어야 창의력이 넘치는 젊고 우수한 청년들이 마음껏 역량을 펼칠 수 있다”고 방송계 갑질 문제를 강조한 바 있다.
정책이 완벽했던 건 아니다. ‘비정규직 처우개선 방안 마련’을 강제하긴 했으나 구체적인 후속 조치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가운데 조건을 구체화해야 할 다음 재허가 심사 때 조건은 오히려 무력화됐다.
김홍일 위원장과 이상인 부위원장은 2024년 지상파 재허가 조건에서 ‘비정규직 처우개선 방안 마련’ 조건을 삭제했다. 지난해 1월31일 방통위는 34개 지상파방송사(방송국 기준 141곳) 재허가를 의결하면서 ‘비정규직 처우 개선방안 마련 및 자료 제출’ 조건을 부가하지 않고 비정규직 현황 파악만 하도록 했다. 방통위 방송정책기획과장은 미디어오늘에 “국회 등에서 방통위가 왜 개별적인 회사의 노동 조건까지 확인해야 하는 거냐 이런 게 과도한 조건이라는 외부 지적들이 있었다”며 “주무부처로서 비정규직 현황 파악 및 모니터링 필요성 등을 고려해 자료 제출만 받는 것으로 검토된 내용”이라고 밝혔다.
당시 노동인권단체 엔딩크레딧은 “방송사 경영진들로 하여금 방송 비정규직 노동문제가 사내에서 발생하더라도 손 놓고 있겠다는 메시지”라며 “방통위는 ‘과도한 조건’을 운운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제대로 된 방송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했다.
오요안나 기상캐스터 사망 사건 이후 방송 비정규직 문제 개선이 다시 화두가 됐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 3일 “‘무늬만 프리랜서’ 실태를 점검하고, 고용구조 개선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했다. 같은 날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진상규명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기상캐스터를 포함한 방송사 내 비정규직들의 노동 환경 전반을 점검하여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하고 악습이 있다면 도려내야 한다”고 했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 역시 방송사 전반의 ‘프리랜서와 파견’ 등 비정규직 고용형태가 과연 합법적인 것인지 제대로 점검할 것과 제도 개선 등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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