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1시 서울 성수동.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立春)을 맞았지만 이날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거리는 한산했다. 하지만 지난달 문을 연 브랜디멜빌 플래그십 스토어 매장 안은 북적이는 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 브랜드는 Z세대(2000년 이후 출생자) 사이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브랜디멜빌은 케이(K)팝 아이돌 블랙핑크의 제니가 입은 것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브랜드다. 특히 오로지 딱 한 사이즈만 나오는 ‘원 사이즈’ 정책으로 미국 등지에서 인기를 끌었다. 성수동 매장은 단독 3층 건물로, 제품이 진열된 1층에서 옷을 고른 사람들은 피팅룸이 있는 2층에 가려고 긴 대기 줄을 섰다. 일부 매장 직원들이 한국어에 서툴러 영어로 접객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팝업스토어 성지’로 불리는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국내외 주요 패션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잇달아 문을 열고 있다. 잠시 임시 매장을 운영하기보다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하는 상징적인 매장을 운영하는 것이다.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 정체성을 나타내고 특별한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운영하는 주력 매장이다.
일례로 한섬은 미국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키스와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맺고 지난해 5월 성수동에 국내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이는 캐나다 토론토,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일본 도쿄에 이은 다섯 번째 글로벌 매장이다.
이랜드월드에서 전개하는 뉴발란스 역시 지난해 10월 성수동에 228평 규모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냈다. 뉴발란스는 성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는 프리미엄 라벨 ‘메이드(MADE)’ 라인 상품을 국내 최대 규모로 만나볼 수 있다. 익스클루시브(독점) 제품도 구매할 수 있다. 성수동에는 삼성물산 패션 부문의 비이커 플래그십 스토어, 아더에러의 플래그십 스토어와 무신사가 운영하는 매장도 있다.
아디다스도 조만간 성수동 디올 플래그십 인근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 계획이다. MZ세대 사이에서 ‘일본판 탬버린즈’로 알려진 뷰티 브랜드 ‘시로(SHIRO)’도 조만간 첫 플래그십 매장을 연다.
패션 브랜드들이 성수동을 주목하는 것은 성수동이 ‘힙한 동네’로 자리 잡아서다. 성수동은 지난해 영국 여행 잡지 ‘타임아웃’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동네 38곳’ 중 4위에 올랐다. 동네 명성이 올라감에 따라 성수동은 초창기엔 개성 강한 로컬 브랜드들이 팝업을 여는 장소였지만, 점차 국내외 유명 브랜드들의 테스트베드(시험대)가 됐다.
특히 럭셔리 브랜드인 디올 등이 성수동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연 후 이곳은 해외 관광객에 명소로 떠올랐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작년 한 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1633만명으로 1년 전(1099만명)보다 48% 늘었다. 2023년 기준 서울 시내에서 외국인 관광객의 방문 비율을 보면, 성수동은 13.5%로 전년(1.9%)에 비해 크게 늘었다.
팝업이 아닌 플래그십으로의 트렌드 변화는 지속가능성과 성수동의 가치 상승 등을 반영한 결과다. 기업들이 장기적인 거점 확보에 나선 것이다. 또 팝업은 단기적인 이슈몰이에 효과적이지만, 한정된 시간 동안만 운영되므로 브랜드의 깊은 스토리텔링이 어렵다. 반면,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 철학을 지속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성수동은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해외 관광객까지 찾는 대표적인 트렌드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며 “팝업 스토어를 통해 브랜드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이제는 장기적인 전략으로 정식 매장을 운영하며 충성 고객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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