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와 멕시코, 중국 등을 대상으로 관세 부과를 강행하면서 가전·반도체 등 우리 주력 산업의 수출·투자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멕시코와 캐나다에 생산 기지를 둔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미국 현지 생산 거점을 새로 발굴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멕시코는 저렴한 인건비는 물론 미국·멕시코·캐나다 자유무역협정(USMCA) 혜택을 받을 수 있어 한국 가전 제품의 북미 수출을 위한 최적 요충지였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각)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 추가로 10%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관세는 4일 오전 0시 1분부터 시행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멕시코 케레타로와 티후아나에서 가전 공장과 TV 공장을 운영 중인 삼성전자는 케레타로 공장에서 생산하는 건조기 등 일부 물량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 공장에서 만드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은 (세계에) 공장을 꽤 많이 갖고 있다”며 “어느 한 곳에 집중하지 않고 있는데 이를 잘 활용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콘퍼런스콜에서도 “미국 대선뿐 아니라 다양한 지정학적 환경 변화에 따른 기회와 리스크에 다양한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대비해 왔다”고 밝혔다.
LG전자는 멕시코 레이노사(TV), 몬테레이(냉장고), 라모스(전장) 등 세 곳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LG전자는 냉장고 등 일부 물량을 미국 테네시주 공장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최근 실적발표회에서 “관세 인상의 수준이 본질적인 공급망 구조의 변화를 필요로 할 경우 업계 최고 수준의 스마트 팩토리 구축 역량과 이미 성공적으로 운영 중인 미국 내 생산 시설의 운영 노하우를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사는 앞서 관세 위기 당시에도 미국 현지 생산 강화로 돌파구를 찾았다.
LG전자는 2018년 미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해 세탁기에 고율 관세를 물린 후 오히려 세탁기 현지 생산 체제를 갖춰 미국 시장 지위를 공고히 했다. 삼성전자 역시 세이프가드 발동을 계기로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세탁기 공장 준공 일정을 앞당겨 현지 생산 체제를 안정적으로 구축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주요 수출품인 반도체와 철강 등에도 추가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미 정부가 추가 관세를 매기면 한국산 반도체의 가격이 올라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반도체 주요 고객인 미국 빅테크 기업들의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업계가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1월 한국 전체 수출에서 반도체와 철강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20.6%, 5.4%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 공장을 짓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투자 보조금을 지급하는 반도체 지원법 이행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핵심 광물 생산지인 캐나다 지역에 진출한 LG에너지솔루션과 같은 배터리 기업도 영향권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글로벌 완성차업체 스텔란티스와 합작해 캐나다 온타리오주 원저에 배터리 공장을 건설했다. 올해 배터리셀 양산을 앞뒀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로 캐나다산 배터리 가격이 올라갈 경우 스텔란티스는 미국 내 배터리 생산 비중을 늘릴 방침이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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