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권신구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개헌론이 정치권의 화두로 떠올랐다. 그간 ‘국면 전환용’에 그쳤던 것과는 달리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드러난 만큼, ‘87년 체제’를 종식해야 한다는 데 어느 정도 공감대도 형성됐다. 다만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정치적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향후 논의가 진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대권 잠룡으로 분류되는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한민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과 생존을 위해 개헌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했다. 그는 현행 대통령제가 행정권뿐 아니라 인사·예산·감사권 등을 모두 갖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권한을 분산시킨 ‘4년 중임제’를 도입해 국정 운영의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헌은 그간 정치권에서 꾸준히 거론돼 온 의제 중 하나다. 1987년 개정된 헌법 체제 아래에선 막강한 대통령 권한의 부작용을 막을 수 없고, 이로 인한 정치적 진영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이 그 출발점이다. 그러나 논의는 번번이 좌초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다. 더욱이 정권을 창출한 쪽이 스스로의 권력을 내려놓아야 하는 근본적 한계는 개헌논의에 주된 걸림돌이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는 정치권의 개헌론에 불을 지피는 발화점이 됐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을 피부로 경험케 하면서다. 이러한 인식은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지난달 27일 SBS의 의뢰로 입소스(IPSOS)가 지난달 23일부터 25일까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개헌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와 ‘개헌이 필요하나 충분히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20%, 51%로 나타났다. ‘개헌이 불필요하다’(24%)는 비율을 웃돌았다.
◇ ‘개헌론’에 미온적인 민주당, 왜?
탄핵 국면으로 수세에 몰린 여당은 즉각 개헌론에 힘을 실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19일 국회에서 기자들을 만나 “현 대통령제에 문제가 있어 대부분의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불행한 일을 겪게 됐다”며 “개헌을 해야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비롯해 김태흠 충남도지사, 유승민 전 의원 등 여권 인사들도 거들었다. 국민의힘은 이달 중 자체 ‘개헌특위’를 발족할 것으로도 알려졌다.
야권 내에서도 개헌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김부겸 전 총리는 지난달 31일 MBN ‘뉴스와이드’ 인터뷰에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걷어낼 때가 됐다”고 언급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역시 지난달 13일 오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이제는 제7공화국이 출범해야 한다”고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와 김두관 전 의원 등도 현시점에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다만 정작 열쇠를 쥔 야당 주류는 이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지만, 탄핵 정국이 수습되지 않은 현시점에 여권과 비명계를 중심으로 이러한 주장이 나오는 것이 못마땅하다는 기류가 역력하다. 박지원 민주당 의원은 전날(2일) 광주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개헌논의는 내란에 쏠린 이목을 분산시키는 블랙홀로 전락할 수 있다”고 했다. 앞서 이재명 대표가 지난 23일 기자회견에서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야당 주류가 이번 개헌론 주장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개헌 논의가 진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이와 관련한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는 점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안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이재명 대표께 만남을 제안한다”며 “개헌을 미루는 것은 국민과 미래를 저버리는 것이고 국가를 이끌 지도자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했다. 전직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당 대표 등 여야 원로 정치인들로 구성된 ‘나라를 사랑하는 원로 모임’도 이날 성명서를 내고 “분권형 권력구조에 관한 원포인트 개헌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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