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재선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멕시코, 캐나다, 중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공식화했다. 관세 여파로 미국 물가가 오를 수 있다는 지적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감내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장 멕시코에서 수입해 미국 전역에서 판매되는 아보카도나 방울토마토 등 신선 농산물은 가격 상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소비자 가격을 올리지 않으면 관련 업체의 순이익은 감소한다.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중국 간의 총성 없는 관세 전쟁에 불이 붙자 3일 국내 식품사들의 주가도 일제히 떨어졌다.
해태제과식품은 직전 거래일 대비 3.43% 떨어진 5630원, 동원산업은 2.82% 떨어진 2만9600원에 각각 거래를 마쳤다. 롯데웰푸드(2.43%)나 동서(1.94%)도 2% 안팎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대상과 오뚜기도 1%대 하락률을 기록했다.
국내 식품사는 SK하이닉스나 현대차 같은 대표 수출기업은 아니다. 그런데도 주가가 떨어진 것은 수출로 먹고사는 국내 경제에 대한 우려에 따라 투자자들이 한국 주식을 매도한 영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국내 식품사 주가에 해외 수출에 대한 기대감에 반영돼 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지난해부터 수출 가능성이 높은 식품사 목표주가를 산정하면서 주가수익배율(PER)을 종전 대비 높게 반영했다. 불닭볶음면 수출로 주가에 날개를 단 삼양식품 사례를 학습한 데 따른 것이다.
하인환 KB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보고서에서 “아직 산업 전체의 변화로 볼 수는 없지만 이미 일부 식품 기업들은 성장주로 전환하고 있다”며 “수출 비중 확대에 따른 자기자본이익률 개선으로 밸류에이션도 재평가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영훈 NH투자증권 연구원도 지난해 “해외 매출 비중이 확대되고 있는 기업들은 높은 매출 증가율을 기록 중일 뿐 아니라 한정적인 내수시장 규모라는 문제점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가치평가(밸류에이션) 상승까지 기대된다”고 했다.
주가는 원래 일희일비하는 것이고 당장은 수출 물량에 큰 문제가 없다는 식품사들도 속내는 편치 않다. 미국을 포함한 북미 시장에서의 사업 성과가 한 해 실적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인데 악재가 터진 셈인 탓이다. 만약 국내 식품에도 고관세가 매겨지면 현지 제조공장을 찾는 등 우회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국내 식품사 중에서 미국 현지에 생산시설을 이미 갖춘 곳은 많지 않다. CJ제일제당과 풀무원, 농심뿐이다. CJ제일제당은 캘리포니아, 미네소타, 펜실베이니아, 텍사스, 뉴욕 등 미국 내 20곳에 현지 설비 공장을 가지고 있다.
농심은 2005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지은 제1공장에 이어 지난 2022년 5월 제2공장 가동을 시작했다. 풀무원은 2021년과 2023년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풀러튼 공장의 두부 생산라인과 길로이 공장의 생면 생산라인을 각각 증설해 가동하고 있다.
이는 최근 몇 년 새 국내 식품의 해외 수출이 늘었지만, 그에 걸맞은 설비투자에 나서기엔 시간과 자본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수출 물량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설비만 무턱대고 늘렸다가는 투자비 부담이 재무적으로 커질 수 있다.
보수적으로 경영을 하기로 알려진 허인철 오리온 부회장은 지난해 열린 최고경영자 간담회에서 미국 시장에서의 설비투자 등에 대해 언급하면서 “단일 품목 매출이 연 300억~400억을 웃돌면 제조 공장 건설을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증권가에서는 관세 전쟁이 식품사들의 옥석 가리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틱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타고 국경을 넘나들며 식품의 수출길이 터지고 있지만, 이를 지속하기 위해선 홍보·마케팅에 힘을 써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일정 이상의 안정적인 물량 공급이 필요해서다. 한국에서 제조하고 항공·해상 물류에 의존해 공급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안착을 위해선 현지 설비시설이나 글로벌 거점 설비 시설을 갖춰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해외 수출 시장에 오랫동안 공들여 온 회사들은 CJ제일제당과 농심, 풀무원이다. 당장 수익이 나건 말건 길을 닦아왔고 설비 투자 때문에 재무적으로 곤욕을 치룬 적도 다들 한 번쯤은 있다”라며 “이런 회사들이 관세전쟁으로 말미암아 빛을 낼 수 있는 때가 오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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