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불법승계 의혹 등으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3일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선고 받았다. 그간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에 대부분의 인적 리소스를 쏟아왔던 삼성전자 컨트롤타워가 제 기능을 되찾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서울고법 형사13부(재판장 백강진)는 이날 오후 이 회장의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 사건 항소심 선고 공판을 열고 “원심의 무죄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밝혔다. 1심과 같은 결론이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경영 공백에 대한 우려가 해소됐다는 점에서 한숨을 돌린 분위기다. 검찰이 지난 2020년 9월 기소한 이후 이 회장은 사실상 제대로 된 경영 활동에 집중하지 못했다. 이 회장은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불법승계 의혹으로 총 102회(1심 96회, 항소심 6회)를 출석했다. 책임경영을 강조해온 삼성전자가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 안건을 다루지 않아왔던 것도 이 같은 사법 리스크 때문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 4년 5개월간 발목 잡힌 이재용… ”해외선 찾아볼 수 없는 사례”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 부진과 지난해 4분기 ‘어닝쇼크’에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부진한 시황을 마주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대외 환경은 미국 트럼프 정권 출범과 중국 딥시크의 등장 등 전례 없이 복잡해진 상황이다. 인공지능(AI) 시대 호황을 맞은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에서도 경쟁사보다 뒤처지고 있으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역시 TSMC 대비 열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핵심 계열사들이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이 회장이 2심 선고에서 무죄를 받으면서 위기 극복 동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검찰이 상고하더라도 법률심인 3심에서 항소심 판단이 뒤집힐 확률은 극히 낮기 때문이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와 관련해 “해외에서는 명백한 형법상의 범죄가 아닌 이상 매주 이런 식의 재판이 진행되는 사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변호사 대행 없이 총수가 직접 매주 법원을 드나드는 상황에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이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삼성과 같은 대기업 총수가 무려 4년 5개월간 사법 리스크에 시달렸는데 경영 상황에 영향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며 “심리적 압박뿐만 아니라 해외 출장과 비즈니스 등이 모두 악재로 작용해 왔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김유진 김앤장 변호사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정말 긴 시간이 지났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제는 피고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 AI 대변혁기… 삼성, 컨트롤타워 재건 여부에 이목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를 통한 책임경영 강화와 그룹 컨트롤타워 재건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그룹의 준법 경영을 감시하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감위) 이찬희 위원장도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와 컨트롤타워 재건 필요성을 강조해온 바 있다.
과거 미래전략실과 같은 컨트롤타워 부활 여부도 주목된다. 미래전략실은 국정농단 사태의 창구로 지목되며 2017년 해체된 바 있다. 미전실 해체를 이 회장이 결단했듯, 부활 역시 총수의 의사결정 없이는 쉽지 않다. 삼성과 같은 대규모 기업이 핵심 현안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중장기 사업 전략을 짜기 위해서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경제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으나, 그간 이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발목을 잡아왔다.
한편 이 회장은 지난 2016년 ‘갤럭시 노트7′ 리콜 사태가 불거졌을 때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등기임원에 올라 위기 타개에 나섰으나, 삼성이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이후 2019년 10월 재선임 없이 임기를 마쳤다. 현재 4대 그룹 총수 중 이재용 회장만 미등기임원 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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