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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이 1400원을 넘어서서 오랫동안 내려올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부 고위 당국자로부터 그 수준이 뉴노멀(new normal)일 수 있다는 언급이 있었다. 환율을 둘러싼 여건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선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미국이 상대적으로 견고한 실물경제를 기반으로 통화정책이 여타국과 차별화될 수밖에 없다. 금리격차만 보면 미 달러화 강세는 명확하다. 게다가 트럼프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것이라는 불확실한 전망이 선제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상황을 더하면 미 달러화의 강세에 대비한 원화 약세는 더욱 선명해진다. 경제성장 전망치는 하향 수정을 반복해 왔고 올해도 내국인들의 해외투자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이후 불거진 정치적 사건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가라앉기에 아직 시간이 꽤 남아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5년의 시작과 더불어 그동안의 원·달러 환율에 대한 일방적인 전망에 자그마한 균열이 느껴지고 있다. 뭔가 터널 끝이 나타날 것 같은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한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예상보다 양호하게 유지되고 있다. 지난 연말 휘몰아치던 원화 약세 추세에서 외환보유액을 많이 소진했을지 모른다고 우려했었다. 연초 발표된 통계를 통해 우리는 환율의 상당부분이 시장의 자율적 수급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데 고무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 외환시장의 향상된 자생력에 놀라면서 한편으로 우리 외환당국의 시장을 운영하는 발전된 자세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둘째,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 헤지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이는 한국은행과의 통화스왑과 더불어 환 헤지와 연계된 해외투자 규모가 증가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적극적인 외환공급 요인은 아니더라도 환율 상승을 야기하는 수요 형태의 변화라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다.
셋째, 트럼프 2기의 관세부과와 관련한 우려가 일단은 당초보다 완화되었다. 실제 트럼프 취임 이후 예상보다 소프트한 스탠스를 보이고 있고 시장은 일단 과격한 말잔치보다는 실제 집행 여부를 지켜보자는 분위기이다. 당초 신임 재무장관 베센트가 관세정책이 불공정 무역관행 협상용 도구라고 언급했던 것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넷째, 미국의 대(對)중국 관세부과와 관련해서 양국 간에 환율조정(currency adjustment) 이슈가 대두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제2의 플라자 합의까지는 아니더라도 미국이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이 보복적인 통화절하로 대응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피하기 위해 경제적 협의 가능성이 아직 상존한다고 본다.
다섯째, 이른 감이 있지만 유로지역 경제가 바닥을 다지는 느낌이다. 정치적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더디지만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경기회복세가 예상되고 특히 독일이 2월 총선 이후 재정준칙을 완화할 경우 재정확대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유럽기업들의 실적 개선과 저평가된 주가의 회복도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은 법치의 테두리 하에서 앞으로의 정치 일정이 보다 투명해진다면 국가신용등급을 우려할 이슈로 확대되지 않을 것이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더 이상 국내 정치상황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상과 같은 희망 섞인 논리에도 불구하고 당장은 글로벌 미 달러화 가치가 하락세로 돌아서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1월 말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서에서 고용시장이 여전히 견조하고 인플레이션도 여전히 다소 높다고 수정이 이루어지고 트럼프의 정책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미 연방준비제도(Feb·연준)가 금리 인하를 서두르지 않을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외환시장의 속성상 한쪽으로 기대의 쏠림이 순간적으로 약화되면 군집적 행동을 유발하게 돼 더 큰 변동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2022년 11월 11일 하루 만에 원·달러 환율이 약 60원 하락한 적이 있다. 그날도 특별한 이벤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이어지던 상승 동력이 일순간 약화되면서 시장 참가자들이 거의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결과였다. 그게 시장이다. 2025년 환율의 뉴노멀은 수준(level)이 아니라 높은 변동성(volatility)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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