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 또 한 번 온 국민을 경악케 한 사건이 일어났다. 윤석열 대통령 구속영장 발부 소식을 듣고 분노한 군중이 서울서부지방법원에 난입해 폭력을 휘두른 ‘1.19 법원 폭동’이다. 국가기관을 공격하는 무도한 행위를 마다하지 않은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등장하게 됐나. 한국사회는 이 극단의 시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내란의 밤’에서 ‘폭동의 밤’까지 불과 한 달 반 사이 일어난 헌정사 초유의 사건들에 대한 사회학자 세 명의 견해를 들어봤다.
두 번째 인터뷰에 응한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1.19 사태가 일어난 주요 배경으로 ‘시간’을 꼽았다. 비상계엄 직후에는 정파를 떠나 모든 사람이 사건에 대한 평가가 “명료”했다. 그러나 “내란 이후 한 달 넘게 지지부진하게 사태 해결”이 되지 않았고, 그 사이 윤 대통령이 온갖 법 절차를 거부해 “초법적 존재”가 되면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에 전열을 정비할 시간이 주어졌다. 이후 사태 수습을 위한 법적 절차가 진행되면서 그 중심에 선 서부지방법원이 “일종의 전쟁터”가 돼버렸다.
「음모론의 시대」의 저자이기도 한 전 교수에게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전열을 정비하는 동안 음모론이 어떻게 작용했는지 물었다.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통한 자신들만의 ‘대의명분’의 형성, 윤 대통령이 박해받고 있다는 생각으로 이뤄진 ‘피해자 지위 착취’, 더불어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상대방 악마화’ 등 음모론적 정치의 세 가지 특성이 일련의 사태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고 진단했다.
이런 특성이 ‘악마들로부터 윤 대통령을 구하기 위한 세 가지 행동, 즉 “시위 참여, 여론조사 참여, 급기야 폭동”까지 이어지는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전 교수는 지금은 “분석의 시간이 아닌 수사의 시간”이라며, 먼저 폭동과 관련한 현황을 파악하고 불법을 단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불법의 대통령”, “불법의 행정부” 하에서 무너진 법치와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되새기고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래는 사태 발생 이틀 뒤인 지난 21일 전화로 진행한 전 교수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전열 정비의 시간이 주어진 동안 음모론적 정치가 작동했다”
프레시안 : 지난 19일 새벽 윤 대통령의 구속영장 발부 소식에 불만을 품은 군중이 법원에 난입해 기물을 부수는 일이 일어났다. 윤 대통령을 위시한 일부 정치인, 군인, 관료의 이상행동으로 보였던 비상계엄 사태가 군중행동으로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전상진 : 비상계엄 사태가 딱 일어난 직후 아마도 정파나 이런 걸 떠나서 모든 사람이 엄청나게 쇼크를 받은 것은 사실일 것 같다. 첫 반응은 ‘미친 거 아니야’ 이런 어리둥절함이었을 거고, 분노도 섞였을 거다. 그러니까 비교적 비상계엄에 대한 평가가 명료했을 거라 생각한다.
다만 12월 3일 내란 이후 한 달 넘게 지지부진하게 사태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 대통령이 온갖 법 절차를 거부하며 갑자기 초법적 존재가 됐다. 이 사안과 관련해 왕이 된 듯한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한쪽에서는 그에 대해 크게 분노하고 걱정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왕과 같은 우리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라는 식의 생각이 슬금슬금 커졌을 거다.
한 달 이상의 어정쩡한 시간 동안 내란수괴를 끌어내려야 한다는 쪽에는 ‘혹시 탄핵이 안 되면 어떻게 하지’ 두려움이 있었다. 반대쪽은 반격을 준비할 시간을 갖게 됐다. 내부적으로 보수가 결집했고, 외부적으로 주적인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를 공격하기 위한 대오를 정렬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폭동이 인큐베이팅(incubating) 되는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다. 그러면서 내란 사태 수습을 위해 법원에서 필요한 절차가 차곡차곡 진행된 서부지법이라는 곳이 일종의 전쟁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프레시안 : 2014년에 발간한 「음모론의 시대」에서 음모론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을 다루고, 그 정치 전략도 분석했다. 한 달 이상 내란 사태 대응이 정체되는 사이 음모론은 어떻게 작용했나?
전상진 : 어리둥절함에서 벗어나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의 중간 과정에서 전열을 정비하고 집결하는 데 음모론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행동은 폭동과 여론조사 적극 참여, 그리고 시위 참여, 이렇게 세 가지다. 그런 행동에 음모론이, 내 용어로는 음모론적 정치 스타일이 방아쇠이자 땔감이 되었다. 음모론적 정치 스타일은 세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 부정선거 음모론이 자신들의 ‘대의명분’, 더 정확하게는 자신들의 행동에 알리바이 기능을 한 것 같다. ‘입법 독재’라는 말도 안 되는 표현을 쓰지 않나. 부정선거에 의해 국회가 저들의 손에 떨어졌다는 것이 윤석열을 지켜야 한다는 ‘대의명분’ 형성에 중요했던 것 같다.
둘째, 희생자 또는 피해자 지위 착취다. 윤석열 변호인들이 ‘대통령은 고립된 약자’라고 한다. 그런 표현이 피해자 지위, 희생자 지위를 착취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보여준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대통령이 관저에서 꼼짝 못 하는 상황이라는 거다. ‘우리 대통령이 적들에 의해 포위되었다’는 생각은 ‘그 양반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의 빌미가 된다.
피해자 지위 착취는 음모론적 정치 스타일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권하는 동안 윤석열이 계속 느낀 게 뭐냐면, ‘왜 착하고 똑똑하고 유능한 내 아내를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거야?’라는 식의 박해망상, 피해망상, 편집증이다.
편집증은 음모론을 문화적으로 은유할 때 많이 쓴다. 그만큼 전형적인 증상이다. ‘나처럼 착하고 선한 사람이 왜 이런 고통을 겪지? 사악한 누군가가 나를 박해하고 있는 건가?’ 이런 생각이 결국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음모집단이 활약하고 있다’는 음모론적 세계관과 연결된다.
음모론적 정치 스타일의 마지막 요소는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이 있고 나서 플래카드를 전국적으로 붙였다. 어떤 문구였나.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됩니다”였다. 마치 ‘악마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 애국 세력은 모두 죽는다’, 그래서 결국 ‘대한민국이 망한다’는 식의 논리다.
이렇게 음모론적 정치 스타일의 삼위일체가 이뤄진다. 부정선거 음모론으로 대의명분을 확보하고, 피해자 지위를 착취함으로써 우리 편을 결집하고, 게다가 우리를 안 좋은 상황으로 몰아친 악마들로부터 대통령과 우리를 지켜야 한다. 그러려면 시위도 해야 하고, 여론조사 참여도 해야 한다. 급기야 폭동이라도 일으켜야 한다.
“사회경제적 불만은 모든 시위의 상수…인터넷 정보의 특성도 영향”
프레시안 : 이번 폭동에 사회경제적 요인이 작용했다고 볼 수는 없을까? 예컨대 유럽 극우의 발흥을 두고 불평등의 심화와 이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가 영향을 준다는 식의 분석을 많이 한다.
전상진 : 그건 상수다.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 상황과 관련해 현재 만족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이건 정치적 진영과도 상관없다. 모두 불만족이다. 시위에 나오는 건 불만의 표출이다. 불만이 뭘까 따지면 거시적인 부분도 있을 거다. 그 부분은 상수이긴 하다. 하지만 지금 일어난 폭동이나 시위의 직접 트리거(trigger)는 아닌 것 같다.
프레시안 : 음모론의 확산에 유튜브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영향도 강해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상진 :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다. 다들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나는 작년까지만 해도 거의 유튜브를 안 보던 사람이다. 그런데 지난 한 달 사이 유튜브 소비를 보면 그 전의 10배는 되는 것 같다.
유튜브나 인터넷이라는 매체 혹은 플랫폼이 갖는 독특한 지점이 있다. 비유하자면, 방문하기 쉽고 값싸고 맛있지만 영양학적으로나 위생적으로 문제 있는 음식으로 가득한 뷔페 같다고 할까.
유튜브나 인터넷은 스마트폰으로 바로 볼 수 있다. 내가 원하는 정보에 접근하기 너무 쉽다. 기성매체는 그렇게 못한다. 기성매체에 만족을 못하니, 인터넷을 통해 흘러 다니는 정보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 그런데 그 정보는 기성언론이 하는 팩트체크나 데스킹이 이뤄지지 않은 정보들이다. 영양적으로나 위생적으로 문제 있는 정보를 섭취할 위험이 크다 할 수 있다.
“특정 집단 집중은 위험…폭동에 명확하게 초점 맞춰야”
프레시안 : 1.19 법원 폭동에서 체포된 현행범의 절반이 20~30대라고 한다. 기록된 영상에 비춰보면 대부분 남성일 것 같다. 왜 그랬을까?
전상진 : 그 부분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지점이 있다. 나는 세대사회학자이기도 하다. 음모론뿐 아니라 세대 공부도 열심히 하는데, 이른바 ‘이대남 현상’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꺼림직함이 컸다.
그 이유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더라도, 미디어나 연구자들이 특정 집단에 이름 붙이고 부르기 시작하면 픽션(fiction)이 논픽션(non-fiction)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남 현상에도 그런 위험성이 있을 수 있어서 많은 매체가 의견을 물었지만 이야기하는 게 조심스러웠다. 지금은 어느 정도 실체화됐다는 지점에서 출발해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긴 하는데….
그럼에도 위험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이런 것이다. 탄핵 촉구 촛불집회에 청년 여성이 많이 참여한다. 그건 확실한 것 같다. 그 반대편에 지금까지는 노령층이 주로 있으면서 젊은 남성을 장식처럼 이용했다. 하지만 아스팔트 극우 집회에 젊은 남성이 참여하는 정도가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젊은 남녀가 정파적으로 갈려 싸움을 벌인다? 언론이나 유튜버 입장에서는 맛있는 먹거리다. 이를 강조하다 보면, 없던 갈등도 생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폭동과 2030 남성을 연결하기는 조심스럽다.
프레시안 : 그렇다면 이번 폭동의 성격을 어떻게 봐야 할까?
전상진 : 서부지법 폭동을 이야기할 때는 폭동이라는 부분으로 초점을 좁혀서 이야기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폭동을 이야기할 때 잊어서는 안 되는 건 TPO(Time, Place, Occasion)다. 일단 폭동이 일어난 시간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새벽 3시 이후였다. 그 시간까지 시위나 폭동에 참여할 수 있는 ‘건강한’ 노령층이 얼마나 될까. 게다가 격렬한 활동이다. 담을 넘어야 되고, 위험하게 유리창을 깼다.
TPO 이야기는 안 하고 특정 세대만 부각하는 건 내가 볼 때는 과장이다. 세대 게임, 세대 프레임을 만들어 ‘젊은 사람들이 본색을 드러냈다’거나 ‘그들이 드디어 십자군이 됐다’는 식으로 접근하면, 현실을 조작하는 땔감을 제공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모든 폭동은 젊은이들이 활약하기 마련이다. 시위에서 폭동으로 발전하는 경우가 많은 유럽이나 미국을 보면, 폭동을 벌이는 사람 중 젊은이가 많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
“지금은 분석 아닌 수사의 시간…’법치’와 ‘민주공화국’ 되새기고 파괴된 것 복원해야”
프레시안 : 이번 폭동과 관련해 또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전상진 : 이 부분도 지적하고 싶다. 폭동과 관련해서 지금은 분석의 시간은 아닌 것 같다. 현황을 파악하는 시간, 수사의 시간이다.
우리가 10년 넘게 시위 문화와 관련해 시위자들은 시위자 나름대로 덜 과격하고 덜 폭력적으로 의사표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과정을 거쳤다. 반대편의 공권력은 과잉 진압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의식적·무의식적인 합의에 의해 비폭력적 시위 문화가 자리 잡았다. 나름 그게 역사적인 성과였다. 그런데 일부가 폭동을 일으켜서 이걸 후퇴시키고 있다.
이러면 안 된다. 비상계엄은 명백한 불법이다. 폭동은 그러한 불법을 옹호하는 불법적 행동이었다. 폭동이라는 불법적 행동이 자연적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서 더 화나고 안타깝다. 사회 질서와 법을 지키는 데 있어 가장 앞서서 행동하고 활약해야 할 대통령부터 시작해 집권 여당의 국회의원, 대통령 권한대행 같은 관료들, 특정 언론들에 이르기까지 비상계엄을 지지하거나 판단을 유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런 모호한 태도가 폭동의 빌미를 제공했다.
윤 대통령의 표현대로 하면 ‘불법의 불법의 불법’의 결과인 이 폭동을 보는 관점을 또렷이 해야 한다. 그것이 모든 불법의 종합선물 세트라는데 초점을 맞춰서 섣부른 분석을 경계하고 수사를 통해 이들이 왜 그랬는지, 배후가 있는지 없는지도 따지고, 불법을 저지르면 혼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한국이 법치로 굴러가는 민주사회라는 걸 보여주고, 굉장히 아프고 힘들고 화나고 부끄러운 이 사건을 말 그대로 박제하고 역사화해서 아주 오랫동안 우리가 반성하고 되새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프레시안 : 1.19 사태와 같은 일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전상진 : 한국에서는 법을 안 지키면 큰 손해를 보고 처벌받는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한국 사회 온갖 곳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표절해도 학위를 받고, 증권 사기를 쳐도 처벌을 안 받고, 고속도로를 돌려도 상관없고…. 하여튼 온갖 곳에서 불법을 자행했다. 불법의 대통령일 뿐 아니라 불법의 행정부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건 앞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이 법에 따른 통치가 이뤄지는 민주공화국이라는 걸 되새기는 것이다. 법을 어기면 혼나고 법을 지키면서 착하게 살면 그래도 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앞으로 윤석열이 남긴 나쁜 유산과 씨름을 벌여야 할 것이다. 더러워진 걸 깨끗이 닦고, 파괴된 것을 복원하고, 무엇보다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니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③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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