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탄핵 국면의 여러 집회에서 2030여성들의 참여가 조명된 가운데, 이들의 집회 참여를 조명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정치적 의제화해야 한다는 취지의 토론회가 열렸다. 집회 참여도가 높은 집단이지만 정치 세력화는 쉽지 않은 ‘무당파’가 많다는 분석이 앞으로의 과제와도 연결됐다.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정춘생 조국혁신당 의원 주최로 ‘2030 여성 다시 만난 세계’ 토론회가 열렸다. 정춘생 의원은 “광장으로 나온 2030 여성들은 언제나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면서 사회적 발언을 하고 있었는데 정치권은 그들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 정치는 애써 외면해온 것 아닌가 반성했다”며 “탄핵 국면에서 2030 여성들이 왜 집회에 나왔고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그들이 만들고자 하는 사회는 어떤 것인지 소통을 시작하려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 권한대행은 “사회는 2030 여성들의 이번 집회 참여를 ‘새로운 발견’이라 하지만 3·1운동부터 5·18, 6·10, 8년 전 촛불집회 등 집회 최전선에는 언제나 여성 청년들이 있었다”며 “여성들의 참여는 일시적인 열기가 아니며, 여성 혐오와 성폭력 같은 사회문제를 깊이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투쟁해온 노력이 이번 사태에 조명되는 것”이라 의미를 짚었다.
“광장에 나온 여성들, YH노동자 투쟁 등 역사적 계보 이어져 왔다”
발제를 맡은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 여성들은 항상 광장에 있었지만, 이들이 왜 광장에 나왔는지, 이 목소리를 새로운 정책으로 만들 수 있는지 정치적 의제화를 하는데는 소극적이었다”며 “광장에 나온 여자에게는 계보가 있다. 많은 이들이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집회와 촛불 소녀 이야기를 하는데, 박정희의 독재가 무너진 계기인 YH 무역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부터 생각하면 그 역사는 매우 길다”고 말했다.
신경아 교수는 “여성들의 집회 참여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또 여성 이야기를 해야 돼?’라며 ‘여성’을 지우려고 한다. 광우병 집회 당시에도 참여한 여성들에 대해 ‘먹을 거리’, ‘아기들 먹일 것에 대한 걱정’, ‘모성’과 연관해 이야기했고 정치적인 것에서 배제하려는 모습이 있었다. 여성들은 이러한 배제를 계속 저항하고 있는 것”이라 설명했다.
신 교수는 “집회 참여자가 여성들이 많다고 자꾸 이야기를 하는 것이 ‘성별 갈라치기가 아니냐’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며 “이것은 성별 갈라치기가 아니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다고해서 남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곳이 또 필요하고, 여성들의 이야기를 하는 곳이 필요하다.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다고 남성을 배제한다는 그 이분법적인 프레임을 깨뜨려야 한다”고 말했다.
배시은 경향신문 기자는 청년 여성들이 왜 집회에 나오는가에 대해 “2030 여성들은 이전에도 강남역, 혜화역, 딥페이크 시위 등 일상에서 겪은 문제에 대해 집회에 나와 목소리를 낸 경험들이 많았다”며 “자신들이 겪은 문제에 대해 직접 목소리를 내고, 이를 통해 성공도 실패도 겪어봤기 때문에 집회 자체가 낯설지 않은 세대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전한 공간으로 느껴진 광장, 다양한 정체성 가진 시민들 ‘연대의 확장’ 경험
배시은 기자는 이번 집회가 계엄과 탄핵 등 정치적인 이슈뿐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의 시민들이 모인 ‘안전한 집회를 만들어 가자’는 모습도 특이점이었다고 짚었다. 배 기자는 “집회에 나온 여성들을 비판하는 커뮤니티에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선동 당해 나왔다’는 말도 많았다. 그러나 모든 이슈에 대해 빠삭하게 알아야만 집회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엘리트주의적인 시각”이라며 “오히려 광장 정치를 통해 양곡법에 대해 알게되고, 농민 고충에 대해 알게되는 등 집회의 다양한 발언을 통해 여러 의제를 공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배 기자는 이번 집회를 취재하면서 느낀점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점으로 ‘연대의 확장’을 꼽았다. 배 기자는 “집회에 참여한 이들은 남태령 대첩, 전장연, 동덕여대 집회 등 다양한 당사자들의 집단행동에 힘을 보탰다”며 “공개적인 집회 발언에서도 차별금지법, 생활동반자법 등의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언급이 많았다”고 말했다.
남태령 집회에 참여한 신우리씨 역시 “저는 진천군민이고 부모님따라 농민 집회에 자주 참여한 경험이 있는데 이번 집회에서 저와 함께한 농민들은 K팝이 흘러 나오는 모습이나 응원봉 문화를 신기해했다”며 “농민, 여성 청년, 퀴어, 장애인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분들과 남태령을 넘으며 함께 연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집회에서 페미니스트 분이 발언하셨을 때 한 분이 ‘반대해’라고 대놓고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남태령을 함께 넘으면서 그 분이 사과를 하기도 하셨다”며 “퀴어를 잘 모으는 농민들도 ‘퀴어가 뭐냐’라고 물어보셨고, 제가 설명을 해드리자 ‘좋아하는 게 더 많네’라고 이야기하시기도 했다. 평소에 잘 연결되지 않던 사람들이 남태령 집회로 인해 연결된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집회 참여하지만 무당파인 청년 여성도 많아…정치권 신뢰 회복과 의제 반영 필요
다만 집회에 참여한 2030여성들이 제도권 정치에는 반감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의견도 나왔다. 배시은 경향신문 기자는 자신이 만난 집회 참여자들 중 대부분이 당적이 없고, 지지하는 정당이 없는 ‘무당파’가 많았다며 “가능성이자 동시에 한계도 느껴지기도 했다. 집회에 나온 4050 중년들과는 대조적이라고 느낀 부분”이라 말했다.
배 기자는 “이들은 특정 정당이 아니라 의제에 따라 움직이며 정치적 주체로서 더 큰 영향력 행사에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며 “청년 여성들이 기성 정당에 대한 실망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신뢰 회복이 단기간에 이뤄지기는 어려워 보이며, 정당에서 이들의 요구를 반영한 정책을 만드는 데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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