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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한국… [‘검은 수녀들’]이 쏘아 올린 ‘더러운 영’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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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더러운 영들아, 당장 떠나거라.” 「검은 수녀들」에 관심 갖게 된 건 예고편에서 흘러나온 송혜교 배우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평론가로서 형식적이고 도식적인 해석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음에도 대사에 담긴 ‘더러운 영’의 이미지가 마치 자석처럼 특정 이미지들로 도치되어 상상되었다.

현시대는 안타고니스트를 ‘빌런’으로 호명한다. 「조커」(2019)가 쏘아 올린 빌런에 대한 사회적 담론은 선과 악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절대 악에 서사성을 부여함으로써 논의되었다. 선함으로 시대의 악함을 이길 수 없다면 적극적으로 악마가 되어서라도 세상의 부조리함에 맞서겠다는 딜레마가 빌런의 담론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내가 바로 빌런이다’라는 선언이 K-POP 가사를 통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현실에서 대중 서사 장르인 영화가 정면으로 절대 악을 논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행위일 수 있다. 정답을 제시하는 프로파간다가 아닌, 질문을 던지고 관객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기는 것이 대중 예술의 지향점이라면 「검은 수녀들」이 던진 ‘더러운 영’의 절대 악 이미지는 시대 퇴행적일 수 있다.

하지만 2025년 1월,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어떤 악함을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혼란 속에서 그 악함이 우리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빌런이 아닌 절대 악을 논의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검은 수녀들」의 개봉은 시의적절하다.

▲구마의식을 펼치는 유니아 수녀. ⓒNEW
▲구마의식을 펼치는 유니아 수녀. ⓒNEW

주인공(송혜교)의 세례명 ‘유니아’는 로마서 16장 7절에서 언급된 최초의 여성 사도다. 남성이 주도했던 성서 해석의 역사에서 여성 사도로서의 지위를 빼앗기기도, 되찾기도 하며 기독교 내 여성 인권 인식을 고스란히 새긴 존재다. 「검은 수녀들」이 주인공의 이름을 유니아로 내세운 것은 구마의식을 할 수 있는 권한에 대한 가톨릭 내부의 논쟁을 의식한 결과다. 유니아의 이름에는 구마의식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음에도 여성이기에 인정받지 못한 주인공의 서러움이 각인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영화는 유니아 수녀를 사도라고 주장하진 않는다. 오히려 「검은 수녀들」은 신부와 수녀의 경계를 철저히 계급으로 구분해 유니아 수녀를 더욱 소수자의 위치에 고정해 그녀의 신분적 한계를 부각한다.

그녀는 자신처럼 수녀임에도 영적 능력을 갖춘 자들을 ‘미친년들’이라 칭한다. 같은 해방수녀회 출신 수녀였던, 지금은 무당이 된 동료와 자신을 동등한 위치에 세우고 중요한 것은 의식이 아닌 ‘사람을 살리는 일’임을 강조한다. 유니아 수녀에게 가톨릭이라는 제도로서의 종교, 그 내에서 지켜야 하는 법과 규칙들은 중요하지 않다. “부마자를 방관하는 것도 살인”이라 주장하며 눈앞에 고통받는 어린 소년, 희준(문우진)의 안전과 회복에만 집중할 뿐이다.

유니아 수녀는 희준(문우진)의 몸에 들어간 악마를 “비열하고 저열한 새끼”라며 저주한다. 판단의 근거는 악마가 죄 없는 연약한 아이의 몸에 들어갔다는 사실에 있다. 「경이로운 소문」(2020)의 악귀들이 그러했듯, 악마가 권력 있고 힘 있는 자의 몸에 들어갔다면 세상을 악으로 장악하겠다는 그의 계략은 보다 수월하게 이뤄졌을지도 모른다. 오직 악마가 관심 있는 것은 한 존재에게 극심한 고통을 주는 것, 한 존재를 중심으로 그 주변 모두를 고통에 빠트리는 것임을 유니아 수녀는 간파한다. 12 형상 중 하나로 대표되는 「검은 수녀들」의 악마는 고통에 가장 취약한 이가 바로 소수자임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 희준뿐만 아니라 그에게 구마의식을 행했던 신부와 어머니까지도 파멸로 몰아감으로써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고 더욱 공고히 한다. 「검은 수녀들」의 전편에 속하는 「검은 사제들」(2015)은 12 형상이 어떤 존재인지 정확히 언급한다. “그들은 전쟁과 재난, 모든 참사 가운데” 있으며 “존재를 들키면 인간들이 신을 믿기 때문”에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감춘다. 존재의 드러남 만으로도 선이 실현될 수 있다는 영화적 설정이 악마를 응징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악마와 맞서 싸우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키마엘라 수녀. ⓒNEW
▲악마와 맞서 싸우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키마엘라 수녀. ⓒNEW

하지만 영화적 설정처럼 존재의 드러남 만으로 악은 종식될 수 있을까? 반대로 존재가 증명되었을 때 악이 지닌 권력의 힘에 유혹당하는 자들 또한 존재하지 않을까? 「검은 수녀들」은 여기까지 질문을 이끌어 내지 않는다. 대신 악의 존재를 세상에 밝히는 것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님을 주장한다. 그리고 악을 악이라 정확히 부르지 않는 이상, 그 악은 어떤 방식으로든 회귀할 수 있다는 점에 더욱 주목한다. 교묘한 말솜씨로 인간의 정신을 휘어잡고 상대를 농락하며 감정을 쥐고 흔드는 악마의 기술이야말로 악의 본질을 흐리는 가장 중요한 방식이다. 상대를 저주하고 자신이 약해질 땐 살려달라 애원하며 사정하는 악마의 언어들 속에서 유니아 수녀는 매번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 위해 눈에 힘을 준다. 악마의 농단을 옅은 비웃음으로 받아넘기며 끝까지 “더러운 영아 당장 떠날지어다” 외치는 그녀의 표정이야말로 「검은 수녀들」이 이 시대에 던지는 중요한 이미지다. 그 어떤 파국적 상황에도 부화뇌동하지 않고 이성적으로 선악을 판단하는 강단 있는 태도. 악이 활개치는 사태 속에서 우리 모두 각인해야 할 이미지다.

▲악마의 농락에도 흔들리지 않는 유니아 수녀. ⓒNEW
▲악마의 농락에도 흔들리지 않는 유니아 수녀. ⓒNEW

유니아 수녀는 가톨릭이 공인한 해방 수녀회 소속 신분임에도 가톨릭이 이단으로 규정한 무속인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한다. 유니아 수녀를 보조하는 미카엘라 수녀(전여빈)는 제도 밖으로 밀려난 영적 능력자들을 ‘괴물’이라 칭한다.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는 뛰어난 능력을 저주로 인식한 미카엘라 수녀의 자기 비하적 발언이었으나 그녀가 선택한 ‘괴물’이란 단어는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로부터 시작하여 윤석열 정부까지, 무속이 권력을 장악하는 순간 어떤 비극적 사태가 발생할 수 있는지 온 국민이 체험했다. 한국의 대중 영화는 이러한 무속의 힘을 통해 절대 악과 맞서 싸우고(「파묘」) 이젠 가톨릭과 결합하여 고통받는 힘없는 존재까지 구원하려 나선다. 서울의 한 개신교 교회에서 무속인을 설교자로 초청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항의를 면치 못했던 십수 년 전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그리고 그보다 더욱 후퇴하고 있는 한국의 종교적 상황을 돌이켜 보면, 영화 속 유니아 수녀의 행동과 선택은 진보적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하고 도전적이다.

괴물, 미친년과 같은 영화 속 자기 비하 표현들은 정상성이란 이데올로기로 공고한 탑을 쌓아 올린 체제 내 시선을 내포한다. 유니아 수녀는 그런 체제 내 시선의 영향 아래에 머무르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에 갇히지 않고 오직 한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에만 집중한다. 만약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종교적 가치가 있다면 바로 이러한 것 아닐까?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목회자가 출교당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과연 진정한 괴물은 누구여야 하는가?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이 아니라는 빛바랜 말들이 지겹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검은 수녀들」 메인포스터. ⓒNEW
▲「검은 수녀들」 메인포스터.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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