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국민연금 개혁을 두고 다시 한 번 평행선을 달리는 모습을 보였다. 민주당은 “모수개혁부터 빠르게 하자”라는 입장이지만, 국민의힘은 “모수개혁과 구조개혁을 같이 해야 근본적인 해결책이 된다”라며 맞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23일 국회에서 국민연금법 개정안 공청회를 열고 연금개혁에 대해 논했다.
여야가 논의하는 연금개혁안은 소위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라 장기간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저출생과 고령화가 심화하며 연금재원 고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정치권이 합의를 이뤄야 하지만, 여야의 대립으로 논의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13%로 올리고 소득대체율(가입 기간 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은 42%로 조정하는 걸 골자로 하는 연금개혁안을 제시했다.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내는 돈의 비율인 ‘보험료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합의를 보았으나, 연금을 통해 받는 돈의 비율인 ‘소득대체율’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이고 있다.
◇野 모수개혁 먼저… ‘보험료율 올리고 소득도 보장해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인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대부분 (연금개혁)법안이 보험료율을 13%로 올리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소득대체율에 대해선 42~54% 등 다양한 안이 존재한다”며 “(지난)21대 국회 때 논의했던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기본 입장이다. 모수개혁부터 빠르게 해야 연금개혁을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앞서 여야는 지난 국회에서 소득대체율을 두고 막판까지 논의를 이어간 바 있다. 민주당은 45%, 국민의힘은 43%를 강조하다가 결국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22대 국회로 공이 넘겨졌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문가인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공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은 적정소득 보장이라는 목표를 정확히 해야 한다”며 소득대체율을 50%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급여 수준은 어떤 국제 지표를 봐도 국제 비교 관점에서 최하위에 속한다”며 “평균임금 소득자 기준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31.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42.3%보다 낮다”고 했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작년 국회에서 추진한 연금개혁 공론화 조사 결과 보장성 강화안이 56%의 우세한 지지를 받았다”며 “정부는 국민연금이 매일 800여 억원, 연간 32조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가정에 따라 나온 왜곡된 계산”이라고 주장했다.
여당이 주장한 자동조정장치가 실상은 연금삭감장치라는 비판도 나왔다. 자동조정장치란, 물가상승을 연금액에 그대로 반영하지 않게 하는 장치다. ▲3년 평균 가입자 수 증감률 ▲기대 여명 증감률을 반영해 연금액 인상률을 조정하자는 구상이다. 예를 들어, 연금액이 100만원인 경우 물가상승률 2.3%를 반영하면 102만3000원이 되어야 하지만, 자동조정장치로 인해 실제로 이보다 적게 받을 가능성이 있다. 물가상승률과 연금액 인상률을 분리해 보자는 것이다.
이수진 민주당 의원은 “윤석열 정부가 내건 자동조정장치는 자동삭감장치”라며 “소득대체율 42%를 자동 삭감, 실제로는 35%까지 내리는 인하안”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전진숙 의원도 “윤석열 정부의 자동삭감장치, 보험료율 차등 인상 등 재정 안정에만 방점을 둔 개혁안 발표”라며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與 “상설연금개혁특위 만들고 구조개혁도 함께 해야”
국민의힘 측은 민주당의 모수개혁은 임시방편일 뿐, 근본적으로 연금 재정을 개선하려면 구조개혁을 함께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보험료율·소득대체율만 조정하고 저출생이나 국가재정 등 현실을 고려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명예연구위원은 “국제통화기금(IMF)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 부채는 인구 고령화와 연금 제도로 인해 2070년에 GDP 대비 200%가 된다”며 “국제통화기금(IMF)은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더라도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22.8%로 올려야 국가 부채가 더 늘어나지 않는다고 분석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윤 연구위원은 “일본의 보험료율은 18.3%인데 소득대체율이 32% 전후 수준”이라며 “기대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근로기간을 연장시키고, 기초연금·퇴직연금을 고려한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부와 여당은 자동조정장치 뿐만 아니라 세대별 보험료율 인상 속도를 달리하는 것도 제시했다. 실질적으로 저출생고령화에 따라 돈을 더 내야하지만 받는 돈은 적어지는 청년을 위해 차등을 두자는 것이다. 보험료율을 올리되, 50대 가입자는 매년 1%포인트(p), 40대 0.5%p, 30대 0.33%p, 20대는 0.25%p씩 오르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이 청년·여성 등을 대상으로 소득공백 기간을 가입기간으로 인정해주는 ‘출산·군복무 크레딧’으로 젊은 층의 불만을 줄이겠다는 구상인데, 여당은 예산 추계 어려움·재정 불안정성을 이유로 반대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여야 간 이견차가 유지되자 국민의힘은 특위를 구성해 논의하자고 했다. 복지위 여당 간사인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은 “연금개혁은 제도별로 담당 부처, 상임위가 다양해서 특정 상임위에서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특위신설을 주장했다. 상임위는 교섭단체 소속 의원 수 비율에 따라 구성되지만, 특위는 통상 여야 동수로 구성된다.
안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연금만 가지고는 대한민국의 노후소득 보장·노후 빈곤·국민연금의 재정안정 세 마리 토끼를 다 잡는 건 불가능하다”며 “하루에 800억원의 적자가 매일 쌓이는 만큼 특위를 만들어 구조개혁을 구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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