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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ㅅㅁ 게임] 황금알 원하는 사회…노년층은 빵·복권 중 ‘이것’ 골랐다

투데이신문 조회수  

전편의 대흥행으로 국내외로 이목을 끌어모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의 첫 화의 제목인 ‘빵과 복권’. 다시 한번 등장한 딱지맨(공유)는 한 손에 빵을, 다른 한 손에 복권을 들고 탑골공원의 노숙자들에게 접근한다.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받은 노숙자들은 망설임없이 복권을 선택하고, 딱지맨은 이에 분노해 그들 앞에서 빵을 팽개치며 비난을 쏟아낸다.

이같이 최근 공개된 「오징어 게임2」는 ‘한탕주의’를 향한 노골적인 비판적 시선을 내보인다. 아울러 주식과 코인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우리 사회에서 ‘빵과 복권’은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에 큰 돈부터 인간성까지 잃어버리는 자본주의적 백일몽을 돌아보게 한다. 한국 사회는 한탕주의의 늪에 빠져 헤어나올 수 없게 된 걸까.

본보는 이 같은 지점을 자문하고 실제 여론을 파악하고자 홍대·강남·광화문·탑골공원에서 20~50대 이상을 대상으로 ‘빵과 복권’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사회·경제·문화·심리 전문가와 함께 그 결과를 분석해 기획 시리즈 ‘ㅇ:운(복권) ㅅ:식사 ㅁ:게임’, [ㅇㅅㅁ 게임]으로 담아봤다.

22일 탑골공원에서 시민들이 빵과 복권을 살펴보고 있다. ⓒ투데이신문
22일 탑골공원에서 시민들이 빵과 복권을 살펴보고 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박효령·권신영 기자】 “이 빵을 버린 것은 선생님들입니다…” 「오징어게임2」 中

지난해 12월 새로 공개된 「오징어 게임2」 시리즈의 첫 화인 ‘빵과 복권’에서 딱지맨(공유)는 이같이 말한다. 그는 작품 속에서 의중을 알 수 없는 얼굴로 빵과 복권을 한아름 사 들고 탑골공원으로 향한다. 노숙인들을 찾은 그는 빵과 복권을 ‘선물’이라며 그들에게 내밀고 한 가지를 선택하게 한다.

그 결과, 단 한 명을 제외한 모든 노숙인이 복권을 선택한다. 이후 가상화폐 투자 등으로 전 재산을 몰수당해 오징어게임에 참여하는 MZ세대가 등장인물로 나오는 「오징어 게임2」 특성상 자연스럽게도 그중 당첨된 이는 없다. 이렇듯 후편으로 공개된 오징어 게임은 전편보다 직설적이게 우리 사회 속 ‘한탕주의’를 비판하는 전개를 보여준다.

딱지맨은 그 모습에 분노하는 듯 혹은 통쾌해 하는 듯 거절당한 빵들을 전부 짓밟으며 ‘빵을 버린 것은 당신들’이라고 언성을 높인다. 그들이 왜 빵을 선택할 수 없었는지, 그들이 어째서 복권을 선택했는지는 뒤로 한 채 불확실한 미래에 현재를 투자한 이들을 맹렬히 비판할 뿐이다.

이에 기자는 직접 딱지맨이 돼 ‘빵과 복권’의 실제 배경이 된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60세 이상 노년층(남성 10명, 여성 7명)을 대상으로 빵과 복권이라는 선택지를 제시했다. 그리고 빵과 복권을 선택한 이들에게 각각 선택에 대한 이유를 경청해 봤다.

앞서 진행한 [ㅇㅅㅁ 게임] 시리즈에서는 60세 이하 응답자들은 전체적으로 빵(27명)을 복권(19명)보다 선호하며, 젊은 남성들과 중년 여성들이 복권을 빵보다 선호하는 점을 확인했다.

자신이 노숙인이라는 가정 아래, 딱지맨(기자)에게 질문받은 노령 응답자 17명 중 8명이 ‘복권’을, 나머지 9명은 ‘빵’을 선택했다. 이로써 복권을 선택한 응답자가 이전 조사 대상이었던 세대들에 비해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년층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번 [ㅇㅅㅁ 게임]은 20대를 대상으로 조사했을 당시와 같이 복권을 선택한 이들이 빵을 선택한 이들과 수치상으로 비등한 결과가 나타났다.

탑골공원에서 빵을 선택한 시민이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탑골공원에서 빵을 선택한 시민이 그 이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빵이 좋아서’가 아니라 ‘운을 믿지 않아서’

바둑판 근처로 삼삼오오 모인 검은 외투, 무료급식소 앞으로 늘어선 대기줄, 식사 이후 여유롭게 산책을 즐기는 일행들. 22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는 각자의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한데 집결해 느긋하고도 재치 있는 풍경을 자아내고 있었다.

탑골공원에 한복판 딱지맨(기자)의 등장에 경계하기도, 흥미를 갖기도 하던 이들은 공통된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빵과 복권, 노숙인이라는 가정 하 당신의 선택은?”

빵을 선택한 은발의 신사숙녀들은 대부분이 콧방귀를 뀌며 자신의 선택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탑골공원 앞에서 자리를 펴놓고 물건을 팔던 상인 김모(85·여)씨는 “당첨되겠다는 생각으로 복권을 사 본 적도 없고 그래야 할 이유도 없다”며 “우선 먹어야 살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탑골공원에서 산책하던 이모(75·여)씨는 “복권 당첨될 확률이 없다고 생각한다”면서 “과거 남산에서 돼지 여러 마리를 우리 안에 몰아넣는 꿈을 꾼 적이 있었는데, 누가봐도 행운을 상징하는 꿈이었지만 결국 당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인을 기다리던 김모(72·남)씨는 “먹고 살아야 하는 게 먼저고 중요하다”며 “당첨되고 안 되고를 떠나 복권 자체를 할 생각이 없다. 여태 복권을 산 적도 없다”고 답했다. 그의 지인 김모(70·남)씨 역시 “누가 당첨된다고 말해주는 것도 아니지 않냐”며 빵을 택했다.

탑골공원 팔각정에서 시간을 보내던 이모(78·남)씨는 “내 인생에 복권 같은 내기는 없다. 99%가 당첨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선택지가 빵”이라며 “복권 같은 것은 인간의 정신을 피폐해지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이유로 총 9명(여 5명·남 4명)이 복권 대신 ‘빵’을 선택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복권을 이미 구매해 본 경험을 기반으로 실패 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모습을 보였다. 빵을 선호하기보다 복권을 불신하기 때문에 반대의 선택지를 고른 셈이었다.

자신의 경험상 복권을 불신한다며 빵을 선택한 시민의 손. ⓒ투데이신문
자신의 경험상 복권을 불신한다며 빵을 선택한 시민의 손. ⓒ투데이신문

어차피 궁지 몰린 삶, 한탕의 꿈을 노린다

복권을 선택하는 이들의 얼굴은 마치 젊은 때로 돌아간 듯 화색이 돌았다. 이들은 선택 이유에 대해 설명할 때 ‘꿈’과 ‘희망’을 언급하는 공통점을 보였고, 일부는 벌써부터 당첨된 기쁨에 도취된 듯한 웃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탑골공원 벤치에 앉아 휴대전화를 하던 이모(76·남)씨는 “만약 당첨되면 부자가 될 수 있지 않나.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얻을 수가 없다”며 “부자가 되는 것은 내 꿈이다. 빵 한번 안 먹고도 배고픔은 견딜 수 있다. 빵에 무슨 꿈을 꿀 수 있겠느냐”고 선택 이유를 밝혔다. 

공원 인근 거리를 산책하던 김모(70·여)씨는 “복권에는 희망이 있다”며 “빵은 먹고 난 즉시 사라져서 허무하다. 허무한 건 싫다”고 말했다. 함께 걷던 김모(70·여)씨도 이에 “빵은 먹고 나면 끝”이라며 적극 동의했다.

노인 빈곤을 언급하는 이들도 있었다. 안모(84·남)씨는 “노인은 돈이 없으니까 돈이 더 필요하다”며 “빵을 먹으면 당연히 배는 부르겠지만 허기짐은 곧 다시 찾아오기 마련”이라고 했다.

바로 다음 설문에 참여한 송모(84·남)씨 역시 같은 주장이었다. 그는 “나이가 들면 돈이 부족하다. 돈이 더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기자에게 받은 즉석 복권을 바로 긁어봤지만 모두 당첨되지 않았다.

이모(72·남)씨는 “살기가 거북하고 힘든 현재(노숙인) 상황에서 희망을 걸 것 같다”면서 “빵도 물론 좋지만 복권이 더욱 가치 있다”고 강조했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8명의 응답자들은 희망·꿈과 빈곤·삶의 고난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동시에 논하며 복권을 집어들었다. 특히 이번의 경우 2030 청년 조사 당시와 같이 남성 응답자의 복권 선택률이 높았다. 일회성에 그치는 빵보다 부자가 될 기회에 집중하는 모습에서 일확천금을 향한 이들의 간절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탑골공원 팔각정에 앉아 있던 시민들이 복권을 집어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탑골공원 팔각정에 앉아 있던 시민들이 복권을 집어들고 있다. ⓒ투데이신문

노인 빈곤, 불확실한 미래에 현재를 투자하는 이유

올해 기준 대한민국 사회는 전체 인구 5분의 1이 노인인 ‘초고령사회’에 속하게 됐다. 이에 저출생 해결과 노인 연령 상향이 올해의 국가 과제로 떠오르게 됐는데, 정작 늘어난 노인들에 대한 정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 66살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OECD 37개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OECD 회원국의 평균 노인 빈곤율은 14.2%로 한국(40.4%)의 3분의 1 정도다.

OECD는 한국 노인 중 연금 수령자가 적고 수급액도 부족하다는 점을 높은 노인 빈곤율의 원인으로 꼽았다. 실제로 한국의 76세 이상 ‘후기 노인’의 빈곤율은 52%로 66~75살(31.5%)보다 크게 높았다. 특히 연금 수령액이 적고 기대수명이 긴 여성 노인의 경우 빈곤율이 45.3%에 달해 남성(34%)보다 웃돌았다.

한국 노령층의 경우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계층 간 소득 격차도 큰 편에 속했다. 66세 이상 노인 인구의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0.376으로, OECD 평균(0.306)보다 컸다. 지니계수는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수치가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하다는 뜻이다.

빈곤에는 고독과 질병이 따르고 이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례까지 이르기도 한다. 2021년 6월 보건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주된 이유는 ‘건강(23.7%)’, ‘빈곤(23%)’이었다. 국내 연령대별 노인 자살률은 ▲80세 이상 67.4명(10만명 당) ▲70대 46.2명 ▲60대 33.7명 등 순이었다. 이는 OECD 평균보다 3.1배, 2.8배, 2.2배 높은 수치다.

22일 팔각정이 보이는 탑골공원의 전경. ⓒ투데이신문
22일 팔각정이 보이는 탑골공원의 전경. ⓒ투데이신문

이렇듯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할 수 밖에 없는 노령층은 복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복권의 당첨 확률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인데, 이들이 당장의 허기를 외면하고 복권을 택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서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느끼기에 스스로 빈곤할수록, 연령층이 올라갈수록 심리적으로 복권을 선택할 비율이 높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행동경제학으로도 설명 가능한데, 개인이 안정적인 소득을 벌고 있다면 대부분 확실하게 이익이 보장된 쪽을 선택한다”며 “소득이 없거나 불안정한 삶을 살수록 확률이 낮더라도 많은 금액을 선택한다. 본인들의 위치가 불안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중원대학교 사회문화대학 특임교수이자 김헌식 사회문화평론가도 “복권 당첨 확률이 매우 낮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노년층은 이를 받아들이기보다는 인생 전체를 한 번에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가 상대적으로 강하다”고 진단했다.

이어 “현재와 같은 노후보장이 불안정한 시대 상황에서 노년층은 다른 세대에 비해 위기와 두려움, 공포를 더 크게 느끼고 있는 실정”이라며 “특히 남성은 여성보다 더 큰 대박을 꿈꾸거나 바라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등 성별 간 세계관 차이가 잔재한다”고 강조했다.

투데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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