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석도와 비도는 온통 잿빛이었다. 검은빛의 가마우지와 순백의 저어새와 노랑부리백로, 여기에다 그 둘을 포갠 듯 회색의 괭이갈매기까지…,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못할 두 쪽의 바위섬은 희귀 새들의 낙원이었다.
우뚝 솟은 바위 꼭대기에는 세상을 내려다보듯 햇살을 탐하는 한량파 놈들, 바지런히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둥지를 틀며 산란준비를 하는 개미파 녀석들, 애써 지은 남의 집에 엉덩이를 들이밀었다가 집주인의 호된 반격에 힘에 부친 듯 냉큼 지푸라기 한 가닥을 물고 꽁무니를 빼는 얌체족, 그곳도 인간사와 크게 다를 것이 없는 새들의 세상사 한 부분이었다.
인천시 강화군 서도면 말도리 산 89의 비도(2천380㎡)와 리(里)만 다를 뿐 바로 옆인 서도면 주문1리 산 3의 석도. 역시 1999년 남한에서 처음 확인된 저어새의 번식지다웠다.
문화재청이 지정한 천연기념물 205호이자 세계적으로 1천200마리밖에 없어 환경부가 멸종위기야생동물로 지정한 저어새가 그곳에서는 얼마든지 흔히 볼 수 있다. 그곳의 저어새는 참새나 양비둘기 등 ‘잡새’만큼이나 수두룩했다. 괭이갈매기는 얼마나 많던지, 남해안의 대표적인 괭이갈매기 번식지로 천연기념물 제335호로 지정된 홍도를 이곳에 옮겨놓은 듯했다.
2007년 5월 자연환경조사에서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은 비도에서 저어새 150쌍이 번식하는 사실을 확인했다. 세계 최대 규모라는 게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의 얘기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국내 최대 저어새 번식지는 경기도 김포시와 북한 개풍군 사이의 비무장지대 ‘유도’(留島)로 알려져 있었다.
전문가들은 저어새가 잦은 홍수로 서식환경이 떨어진 유도를 떠나 강화도 서도면 일대의 무인도로 날아든 것으로 추정했다. 실제 2007년 4월에 이어 2008년 4월에도 수리봉(강화군 서도면 아차도리 산50)에서 저어새 8마리가 서식하는 것이 확인됐다.
희귀조류가 빚어낸 별천지, 석·비도를 지켜보면 볼수록 더해가는 궁금증에 참을 수 없었다. ‘저 건너편이 바로 북한 땅인데, 그곳에는 노랑부리백로, 괭이갈매기의 집단 서식지가 없을까?’ 날개 달린 짐승일진대, 서식 여건도 북한 해주의 갯벌과 별반 다른 게 없을 터인데, 필시 북녘에도 이 희귀조류들의 터전이 있으리라!
분단 60년은 짐작만 할 뿐 당최 알 길이 없는 ‘불통(不通)’의 장막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남북한 간 소통의 수단으로 인천만 접경 연안이 등장한 것은 2000년대 초로 진작부터 있었던 일이다. 그 매개는 민족공동 자산인 건강한 생태계와 뛰어난 환경상태를 품고 있는 서해 연안 접경지대였다.
사실 이곳의 환경과 자원을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함부로 출입할 수 없는 금단의 지대인 데다가 북한이 연안 환경상태에 대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환경성을 분석하는 잣대도 남북이 서로 달랐다. 남한은 다목적으로 이용 가능한 수질을 화학적 산소요구량(COD) 기준으로 리터당 1~2㎎을 설정하고 있지만, 북한은 남한의 항만용수에 해당하는 3~4㎎으로 잡고 있다. 여기에 남북은 서로 다른 법과 제도를 들이대며 인천만 접경 연안을 관리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남북이 서로 만나 대화할 수 있는 계기로 삼을 수 있는 ‘징검다리’들이었다. 다행히 북한도 1963년 국제자연보호연합(IUCN)을 비롯해 13개의 국제환경협약에 가입했다. 국제기구를 활용한다면 소통의 틈은 충분하다.
남북한의 환경자료와 생태계 현황, 보호구역지정현황, 수산자료 생산량 등을 종합할 때 인천만 접경 연안은 해양관광과 레저, 수산자원 생산단지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남북이 상생의 길을 모색할 수 있는 ‘희망의 바다’인 셈이다.
세계사는 일찍이 경험했다. 갈등과 분쟁을 넘어 평화와 협력으로 승화시킨 요르단과 이스라엘 접경 연안이 그것이다.
/박정환 선임기자 hi21@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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