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가 금값인데 15개 선물 세트를 4만5000원에 샀다. 비슷한 크기로 포장된 선물 세트를 대형마트에서 알아봤을 때 7만~8만원 정도 했다. 아침부터 발품을 판 보람이 있다.”
지난 22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동대문구청 앞에 열린 직거래장터를 찾은 주부 이영란(67)씨는 “올해 사과가 너무 비싸서 남편한테 올 설에만 제사를 지내지 말자고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씨는 선물 세트 배송지를 적은 뒤 1만원짜리 알밤 1㎏ 한 꾸러미도 구매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물가가 급등하면서 거주 지역 직거래장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직거래장터는 고물가 시대에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자체 차원에서 운영하는 임시(부정기) 시장이다. 서울의 경우 지역구별 자매결연을 맺은 지역 특산품 또는 해당 지역 농가(업체) 상품을 직접 거래하는 방식으로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상품을 제공하고 있다.
직거래장터를 찾는 발길이 늘어난 이유는 물가가 오른 상황에서 전통시장·대형마트를 가도 소비자 체감상 싼 편이 아닌 탓이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신선식품 지수는 전년보다 9.8% 올랐다. 신선식품 지수는 계절 및 기상 조건에 따라 가격 변동이 큰 55개 품목으로 구성한 소비자물가지수다. 이 중 과일류는 16.9% 상승했는데 사과는 30.2% 상승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배는 71.9%, 귤은 46.2%, 감은 36.6% 올랐다. 배추는 소매가격 기준 전년 대비 51.8% 올랐고, 무 소매가격은 99.1% 올랐다.
동대문구 직거래장터에서 배를 판매한 30대 상인 김 모씨는 “오늘 준비한 제수용 배는 개장한 지 30분 만에 동났다”며 “오랜만에 설 명절을 앞둔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배도 잘 팔려서 기분이 좋았다. 가정용으로 배 3개를 1만원에 묶어서 내놨는데, 2시간 만에 다 팔리고 없다”고 했다. 김씨의 배 선물 세트를 산 최형식(72)씨는 “배 8개가 들어있는데 비슷한 구성으로 마트에선 8만원 정도 달라고 했다”며 “4만7000원이면 괜찮은 가격대”라고 했다.
특히 대추와 시금치가 저렴하다는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 지역 주민들도 있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대추 가격은 지난 설 대비 14.8% 올랐고, 같은 기간 시금치도 24.3% 가격이 오른 상태였다. 마포구 주민 박혜미(50)씨는 “망원시장도 싼 편인데, 아들 친구 엄마가 여기서 국내산 대추 400g을 8000원에 판다고 귀뜸해줘서 사러 왔다. 망원시장보다 1000~2000원 정도 싼 편”이라며 “제수용으로 쓰고 남은 대추는 겨울용 차로 끓여 먹을 생각”이라고 했다.
송파구 주민 김소혜(33)씨는 “시금치(포항초)가 정말 비싼데 한 근(400g)에 6000~8000원 한다”며 “그런데 직거래장터에선 4000원이면 살 수 있다는 얘기를 우리 동네 부녀회장이 말해줘서 왔다”고 말했다. 이어 “한 근은 제수용 나물 무칠 때 쓰고, 나머지 한 근은 오늘 저녁 때 반찬으로 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김씨는 이날 남은 시금치를 모두 사갔다.
전문가들은 직거래장터 오픈런(개장 직후 구매)·조기 품절 현상은 설 명절을 앞두고 오른 고물가 시대를 반영한 사회상이라고 본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물가가 오른 만큼 실질적인 소득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며 “명절을 앞두고 지출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최대한 지출을 아끼기 위한 행동”이라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절을 책임지는 주부의 눈으로 봤을 때 좋지 못한 제품이라면 사지 않았을 것”이라며 “가족과 함께하는 명절인 만큼 가족들 입에 들어가는 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사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직거래장터란?
지자체 차원에서 운영하는 임시(부정기) 농·축·수산물 시장. 지자체별 자매결연을 맺은 지역 특산품 또는 해당 지역 농가 상품을 직접 거래하는 방식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저렴한 가격대의 상품을 선보인다. 주로 설 또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지역 주민들의 장바구니 물가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짧게는 이틀, 길게는 일주일가량 열린다.
현재 금천구·강서구·서대문구·강남구·종로구 일대 직거래장터는 이미 끝난 상태다. 23일 기준 동대문구·마포구·송파구·서초구 일대 직거래장터는 진행 중이다. 서울 외에도 전국 시·군·구를 중심으로 설 맞이 직거래장터가 운영되고 있다. 지자체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직거래장터 개장 일시와 장소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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